제2부 만악의 근원 판도라

제4장 판도라의 고백

by 김하녹 Ha Nok Kim



“어리석은 판도라.

내가 늘 의심하지 말라고 했거늘.

결국 나의 뜻을 거스르고,

나를 의심하여 대가를 치르는구나.”

그러나 한 번 고개를 든 의심은,
똬리를 틀고 거침없이 내게 속삭여왔다.

‘판도라, 의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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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신들의 왕이자,

위대한 지도자인

나 제우스의 명령을 거스르고,

내 뜻을 의심하려 할 때마다,

네 몸은 깨어지고 부서져

결국 파멸에 이를 것이니-.

너는 목숨이 아깝다면,

한 번뿐인 이 생을 더 살아가고 싶다면,

나를 대신하여 그 상자를 열어라.”

판도라의 몸이 굳어졌다.

‘역시 함정이었구나.’

제우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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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게 그 하찮은

계집들을 바쳐라.

나를 대신하여 이 땅에 재앙을 초래할,

만악의 근원 판도라여.

너는 결코 이 덫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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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는 균열을 감추기 위해

창고 안으로 숨어들었고,

며칠간 두문불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는 다시 천둥과 번개를 내려쳐

여인들이 겨우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두 번째 침략이었다.

‘평화를 위해

싸울 때가 왔구나.’

에피메테우스는 직감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침략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마지막 결전,

예언 속의 이야기,

최후의 전쟁 <라크나뢰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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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소란스럽구나.’

나는 인간을 피하며 균열을 감춰왔지만,
때아닌 소란에 밖으로 나왔다.

제우스가 마을을 다시 침략했다.

나는 직감했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이 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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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상자를 열지 않으면,

계속해서 당신을 의심하면,

인간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이라 하셨지요.”

판도라는 상자를 들고 제우스를 향해 나아갔다.

판도라의 모습을 본 에피메테우스와 여인들의
눈빛이 놀라움과 걱정으로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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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당신 뜻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나는,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부서지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상자를 열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을 해칠 수 있는 ‘재앙’을

세상에 내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판도라의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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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파괴하는 법밖에 모르는 적 앞에서,

이것만이 내가 유일하게

당신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길을 택하겠습니다.’

“제우스,
이건 당신은 평생 받아본 적도,
받아볼 수도 없는 마음입니다.”

판도라의 시선이

여인들과 에피메테우스에게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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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여러분, 이 자리를 빌어서,

나의 마지막 염원을 담아서,

나는 고백합니다.

세상이 우리의 관계를 참으로 쉽게 깎아내립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야-

그럼에도 나는 그대들을 바라보고, 듣고,

그대들도 나를 마주하고, 안아주니,

우리의 견고한 자매애를, 사랑을, 우정을

누가 침범할 수 있을까요.

그대들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나는 칠흑같이 어둡고

끝없는 공허 속에서 태어난 자.

나의 그 작고도 좁은 세상에

그대들이라는 균열이 생겨서 행복했습니다.”


---

바람이 불어왔다.

마음이 일렁이던,
여름날의 푸른 바람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간지럽고,

맞잡은 두 손의 온기가 저릿하도록 따뜻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대지와 바람의 향기를

함께 느끼던 나날들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어떤 찰나는 영원과 같다더니,

당신들과 함께한 찰나가, 매 순간이,

내게는 영원입니다.

그러니 이대로, 의심의 대가로,

제우스의 명을 거스른 벌로,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것입니다.”


---

그 순간, 에피메테우스가 판도라에게 다가왔다.

“판도라, 우리 함께

이 상자를 열자.”

“…”

“우리는 함께

이 상자를 열어서,

누구나 기억할,

빌어먹을 이 세계를 뒤엎을

끔찍한 재앙이 되어주자.

모두가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만류하던 그 상자를,

바로, 지금 여기서, 우리 함께 열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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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재앙을 초래한다 해도,

우리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굳게 닫혔던 상자의 문을,

판도라와 여인들이 함께 여는 바로 그 순간.

수많은 목소리가 상자의 틈새 사이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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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는가!”

"문이 열렸어! 드디어 문이 열렸다고!”

웅성이는 목소리는 곧 눈부신 빛으로,

흐릿한 형체로,

뚜렷한 형상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오기 위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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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영겁의 시간을 지나오며,

너를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상자 안에 봉인되었던

타르타로스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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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우리의 육신을 가두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영혼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저 머물러 때를 기다렸을 뿐.

너는 우리가 미쳐있다고

세상으로부터의 격리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사실 너는, 우리가 두려웠던 것이 아니었느냐?”

티탄족의 원한이 상자 밖 세상까지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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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너를,

타르타로스라는 끝없는 공허 속에 처박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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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상자 속 세상에서,

타르타로스에서,

그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려왔다.

자신의 손으로 가뒀던 형제들을 다시 마주한 순간,

제우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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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네 두려움,

공포, 불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 그 자체.

그러나 우리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오랜 시간을 상자 속에

갇혀 있었던 존재들이,

강렬한 빛과 함께

상자 밖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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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와 여인들이 함께 상자를 열자,

그 안에 갇혀 있던 고대의 신들이 깨어나,

제우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최후의 결전 ‘라크나뢰크’가 도래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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