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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Jun 27. 2020

독일은 의대를 왜 개편할까?

실무 위주 통합은 탁상정책인가?

학문의 꽃을 피우는 흙은 엉덩이살이다. 오래 앉아야 하니까.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 단번에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내용들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교과과정이 전달과 이해를 목적으로 짜인 것이라면 논문은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때가 많다. (이과, 문과의 차이가 좀 있다.) 주체적으로 학문을 읽고 새로 기여할 영역을 농작한다는 것은 아주 길고 짙은 답답한 안개를 걸어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더 그런지는 몰라도 정책에 대한 기사나 견해를 읽을 때 나는 이중으로 반응한다. 한 편으로는 나도 사람이니까 격정적으로 잘 쓰인 글이거나 나의 관심분야를 건드렸을 때 즉각으로 반응하는 "피"다.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알 수 없는 차원에 있는 정책의 복잡함을 이성적으로 예측하는 "뇌"다. 특정 정책을 열정적으로 변호한다고 해서 뇌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해당 정책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반응이 이렇다는 뜻이다.


정책을 이념적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상이 강해지고 있다. 비단 한국의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념적 이유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념이라는 것은 본래 기나긴 시간을 걸쳐서 실패도 해보고 시도도 해보며 범인류적 "개발"을 거쳐온 미완성 결과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것 중 최고의 참고자료이다. 이런 걸 참고하지 않으면 무엇을 참고할 것인가. 감성? 감정? 즉각적인 피의 반응? 문제는 지구의 많은 곳에서 오늘날의 이념이라는 것은 진정한 이념이 아니오, 이념인 척하는 혐오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을 다루는 뉴스를 "읽는 방법"을 우리는 갖추어야 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강박이 있기는 하다. 어디서 온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발발한 사건은 안다. 때는 내가 금융도시 런던에서 유학하던 중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지구 종말의 분위기가 도래하던 2008년도인데, 그때부터 감성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공감하면서 동시에는, 혹은 안타깝기에 더욱더, 과연 정치인들이 소리치며 주장하는 개혁안들이 효과적인 해결책인지, 아니면 이때다 싶은 기회주의적 위치 선점을 위한 공갈빵인지, 합리적인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힘이 생기면 부패하기 때문이다. 증거가 필요하면 그냥 세상만사를 둘러보거나 역사 다큐를 틀거나 책, 영화, 성경을 봐라. 물론 모든 선한 의도가 부패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자신의 부패를 예방하는 세밀한 조치가 새로 얻는 힘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런던의 그 계기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다른 곳으로 떠내려 왔다. 여하튼, 그때 발달된 신념이 지금도 확고하다.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변수에 따른 미래를 볼 수 없는 마당에. 그래서 정책의 동기와 배경, 의도를 본다.


우리 모두가 그러길 나는 내심 바라지만, 똑같은 사람만 모여 있으면 지구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정책은 분야에 따라서 매우 전문적이라서 남의 견해를 골고루 들어야 할 때가 많다. 연습용으로, 그리고 그냥 읽기 재밌어서, 오늘의 기사는 독일의 일간지 FAZ에서 프랑크푸르트 의대의 교수 두 명 (약학 및 독물학, 해부학)이 기고한 것을 가지고 왔다.


과학위원회가 독일 전국의 의대에 개혁안을 제안했다. 10년 간 매년 2억 유로 (한화로 약 3억 원)에 추가로 9억 유로 (한화로 약 1조 원)을 지원하는 대신에 "마스터플랜 2020"을 실행하는 조건이다. 이미 작은 규모의 모델 의대 과정은 여러 곳에 준비되어 있지만, 기존의 의대 형식보다 좋은 결과를 배출하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을뿐더러, 국가고시 성적만 비교한다면 틀렸다. 다른 비교 방법은 아직은 없다.


하지만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개혁자들은 못을 박는다. 의사면허법을 새로 정해서 모든 의대에게 적용하자고 한다. 개편된 법안 커리큘럼을 참조해서 의사가 어떤 역량들을 확보해야 하는지,  끝까지 꾸역꾸역 정의한다. 중점은 실무 역량이다. 실무 적용, 환자 소통, 사례 중심, 문제의식, 통합 수업을  학기부터 다루라는 것이다.  바람에 희생되는 것은 예과와 본과의 구분과, 이론과 실습 과목의 구분이다. 의대 과정을 결과 중심으로 개편해서 실무자 배출을 지향하고, 시골 의사면 제일 좋다는 사상이다.


이렇게만 보면 훌륭한 취지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가 여전히 치명적이다. 실무 중심으로 교육한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실무를 수행할 때 과연 기존 교육 과정을 거친 실무자들보다 성공을 거둘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독자가 현재 몸을 맡기는 의사는 아직 기존 교육 과정의 산물이다. 당신의 의사는 실무가 서투른 것처럼 보이는가?


상관없어하는 듯하다. 생각 따위보다 중요한  취지니까 말이다.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는 전문가 위원회니까 근거 없이도 전문 견해를 내려도 된다. 그들은 무조건 통합 교육을 권장한다. 그러면  학기에 해부학 교수가 골절을 설명하고 정형학과 교수는  박기를 가르친다. 그러다가 고학년이 되면 해부학 교수와 신경외과 교수의 수업 내용이 엇갈린다. 해부학은 머릿속에 이미 뚫린 구멍을 하나하나 모두 알고 있지만 (정말 많다), 역으로 외과 전문의가 꿰매야 하거나 신경외과 전문의가 톱으로 썰어야 하는 들은 하나도 모른다. 이럴 때는 무척 실무적이지 않은 지식들의 상호 간섭구간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세부 전문 분야를 깊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의대는 학문으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후대는 어떻게 모집하고, 지식은 누가 정리하나?  엎어 버리자는 뜻이다. 세부 과목을 버리 결국 사라질 것이다. 세부적일수록, 예과 영역일수록, 이론적일수록 먼저 멸종 것이다. 아주 세부적인 과목들은 편된 커리큘럼에서 이미 배제되었다. 의학의 역사? 도덕? 그런  그냥 통합적으로 가르쳐서, 그때그때 사례에 따라서 필요할 때마다 다루자는 .


통합 교육은 과목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 그냥 대충 하는 교육 아닌가. 대충이라고 하는 이유는 의학 교육학이 전문이라는 자들 본인의 원래 과목을 떠나온  오래이고, 과목은 물론이며 자기 자신을 통합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각종 위원회, 학장직, 감독, 그리고 후한 보수를 약속하는 장기 평가 절차와 개편이라는 비즈니스가 마스터플랜의 필요사항이니까.


의학 교육자들이 결정권을 잡은 곳에서는 역량의 연막탄을 터트리기 마련이다. 과거에 전문 지식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상황이 요구하는 실력 유치로서의 역량"이라는  논하고 그걸 위해 교육 커리큘럼을 " 분쇄"하자고 하는데,   전문 지식을 희석하자는 얘기다. 이런 일은 역시 의학 교육자들이 전문이다. 혹시 모르니까 개편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위원회에서 정치 관련자들과 자신들이 과반수를 이루어야 한다고 미리 요구하고 있다.


다이어트시킨 지식 전달 대신, 지도 관계는 살찌워진다. 환자 중심으로 소그룹에서 가르치는 통합 수업은 많은 인원을 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수업 방식은 기획과, 장소와, 시설에  부담이고 환자 본인들도 굳이 혁신을 자신 가지고 해야 하는지 의아할 것도 당연하다.


 하나의 새로운 발상은 12주간 학문을 가르쳐서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이다. 모두가 해야 하지만 비단 "주체적인 연구 성과" 아니어도 된단다. 다행이다. 고수도 그런  3개월마다 해치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논문을 "작성"하게 되는데, 그냥 종이 위에 글을 쓰는 수준이면 되며, 지난 선배들에 의해 쌓여온 식상한 주제의 자료를 성의껏 복사해서 재창조한다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뛰어나고 수준 높은 작문들을 그럼 누가 (당연히 보수를 받으며) 읽고 평가해야 할까?


결국  계획은 아주 비싸진다는 뜻이다. 위에 언급한 금액의 정당성은 전문 위원회 보고서의 주석에 숨어있다. 9 유로의 추가 금액은 게다가 개편 비용이 아니라 건설 비용이다. 많은 돈이지만 동시에 예수를 은화에 팔아넘긴 유다의 삯과도 같다. 우리의 영혼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 우리의 전문 지식, 우리의 이론을. 우리의 헌법적으로 보장된 수업의 자유까지 의사면허법 앞에서 굽혀야 한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데도 의대 입학 정원은   자리도 늘어나지 않는다.


개혁의 장점은 의례 지원금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도 생소한 상황에 처해서 국가의 재정부와 같은 편에 서는 지경이 이르렀다.  많은 돈을 쓰지 말고,  유다의 삯을 우리에게 주지 말아라! 그만한 가치가 없다. 몰론 받고 싶은 돈이기는 하지만, 이런  말고 의미 있는 곳에다 사용하고 싶다.


내 분야가 아니니까 뭐라 하기 어렵지만 참 재미있게 쓴 글이다. 앞으로 웬만한 칼럼니스트보다 의사가 쓴 글을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되는 부분들은 있지만 위험한 착각일 수도 있다. 독자에게는 목석같은 이미지의 독일인이 발휘하는 의외의 신날함을 엿보는 기회면 좋겠다. 풍자를 의도했다기보다는 본인들의 의견이 하도 확고하니까 비꼬아도 글이 가벼워지지 않는 것이다.


왠지 개혁을 막는 데에는 소용이 없을 듯한 예상이 들지만 말이다. 수술하듯 정확하게 전달한 의견과 논리임에는 한치의 의심이 없지만 글을 보니까 이미 개혁 세력이 대세를 잡은  싶다. 그렇게 되면 뛰어난 반론이 정치적 흐름에 묻힌다. 빛나는 갈대와 농업 트랙터의 관계쯤 되지 않을까 싶다.  빛나는 갈대련만, 이미 갈대끼리의 싸움이 아닌 것이다. 본인들이 나보다   것이기에, 이것이 좋은 싸움이라면 독일 의대들은  싸우고 이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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