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고된 일정이었다. 영하로 쭉쭉 내리 꽂히는 날씨 속에서 꼬마의 에너지를 탕진하기 위해 머리를 좀 굴렸다. 만만하니 택한 곳은 역시나 키즈까페로 오늘 새롭게 가보는 곳이다. 우당탕탕 차를 달려 도착하니 10시, 이제 막 문을 연 모양이다. 그럼 이게 오픈런인가? 이제 내 인생 이렇게 된 건가? 싶었다.
야무지게 놀고 점심도 먹고 나와 카시트에 태우니 주차장을 나서기도 전 눈을 감는 꼬마다. 나는 꼬마가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영하의 거리를 누빈다. 특별히 마음에 든 곳은 2호선 지상철 구간의 선로 그늘 아래다. 적당히 그늘이 지는 데다 철컹철컹 2호선의 소음이 최적의 낮잠 코스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도 지겨워질 무렵엔 서울숲을 열 번쯤 돌았던 것 같다. 꼬마는 두 시간 반을 내리 잤다. 고로 꼬마의 체력만 탕진한 것이 아니다. 키즈까페 입장료와 점심값, 두 시간 반 치의 기름값, 그리고 내 체력까지 거덜나고 말았다. 우리 아빠라면 '엥꼬' 났다고 했을 테다.
잠에서 깬 꼬마를 달에게 인계한 후 무작정 거리로 나왔다. 모자 푹 눌러쓰고 두 손 주머니에 꾹 찔러 넣고 한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목욕탕에 가자. 그래, 찜질방이 있는 목욕탕에 가자. 그곳에서 내 낡은 육신을 누이고 적시고 다독여 새 사람으로 태어나자. 그러니까 이게 얼마 만인지? 코로나 시대와 임신 기간을 합쳐 거슬러 올라가니 아득하게 먼 과거에 도착한다. 이건 그냥 과거가 아니라 '대과거'에 가깝다. 이렇게 오래 목욕탕에 안 갔단 말이지? 문득 한 발 한 발 걷고 있는 게 신기하다. 이 정도면 그냥 한 떨기 미술용 지우개란 말인데.
검색을 통해 찾아간 목욕탕의 외관은 아주 멀쩡했다. 이거 참, 호화롭군! 하며 들어서자 놀랍도록 노후한 시설이 펼쳐졌다. 그 괴리에 놀랐으나 침착하게 찜질 1명이요, 라고 말하며 신발을 벗었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게 표정관리와 동시에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찜질복과 수건, 락커키를 받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음, 아주 전통적인 목욕탕의 모습이다. 그 익숙함에 나는 쉽게 쉽게 옷을 갈아입은 다음, 화살표를 주의 깊게 살피며 찜질방을 찾는다. 실내는 한산하다. 티비 앞에 하나둘, 저기 자리 깔고 누워있는 무리 얼마. 동전 넣는 안마의자에 동전 없이 그냥 앉아있는 사람 둘. 코너엔 작은 매점도 있다. 원래는 식사메뉴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이제는 많이 단출해졌다. 코로나 시기를 버티느라 그랬나 보다. 식혜와 미숫가루, 커피 사이에서 잠시 저울질하다 미숫가루로 정했다. 한 잔 아니 한 통에 3,000원. 그득 들어찬 얼음 사이로 빨대를 찔러 넣고 한 입 먹자 너무 잘 알고 있는 그 맛, 달고 진하고 구수한 미숫가루 맛이다. 흡족한 얼굴로 나는 소금방에 들어선다.
입구의 온도계는 60도라 쓰여있었지만 내가 만난 것은 따스한 훈기다. 커다란 이글루처럼 생긴 실내의 가운데엔 벽돌로 쌓은 화로가 있다. 무엇이 소금이라는 것인지? 싶지만 이 아늑한 더위에 나는 주춤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앉아서 미숫가루 한 입 쪽 빨아먹다가 낡은 목침을 발견하곤 눕고야 만다. 좋다, 좋아. 몸은 녹아들고 입은 달콤하고 눈은 별 의미 없는 인터넷 사이트를 건너 다닌다. 이게 진짜 휴식이지 싶다. 활활 타오르는 불도 없고, 숨이 턱 막히는 것도 없는데 어느새 땀이 줄줄 난다. 불쾌한 땀이 아니다. 이제야 찜질방의 참맛을 알 것 같아, 하며 엉덩이를 떼지 못한다. 소금방 안엔 창문은 물론 시계도 없어 나는 백화점을 맴도는 쇼핑객처럼 소금방에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한다. 이러니 두 시간이 다 뭐야, 세 시간도 그냥 흐른다. 미숫가루는 이미 비운 지 오래. 통을 흔들어 조금 남은 얼음물을 털어먹고 드디어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또 다른 즐거움이 남아있는 걸 알기에.
이제 탕에 들어갈 시간이다. 즉흥적으로 목욕탕에 왔으니 뭐라도 좀 사야 한다. '칫솔 하나 주세요.' 하니 500원이라 말하는 아줌마. 되게 싼 것처럼 느껴진다. 맨 몸에 칫솔 하나 들고 목욕탕에 들어선다. 양치와 샤워를 마친 뒤 세신하는 곳을 살핀다. 세신 베드는 세 개, 세신사 선생님도 세 명. 모두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조심스레 예약을 하고 탕에 들어가 몸을 불린다. 찜질방처럼 낡고 오래된 목욕탕이다. 그래서 정감이 간다. 할머니 몇, 아주머니들 몇, 그리고 꼬마 아이 둘이 있다. 아이들 엄마는 순서가 되었는지 세신을 받으러 가는데, 가면서도 아이 특히나 작은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언니더러 동생 좀 잘 봐주라고 이야기를 마치고 때를 밀러 가는 아이들 엄마다. 무슨 마음인지 너무 잘 알기에 나는 부탁받지도 않았으나 함께 애들을 지켜봐 줄 요량으로 눈을 떼지 않는다. 작은 아이는 귀엽게도 미끄럼방지 양말을 신고 있다. 슬쩍 물어보니 4살과 8살이란다. 둘은 작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가져온다. 뭔가 자기들만의 놀이 규칙이 있는 모양이다. 동생이 뒤뚱뒤뚱 물 채운 바가지를 들고 어디에 놓으면 언니가 그건 아니야, 저 쪽이야. 하고 가리킨다. 그럼 동생은 다시 바가지를 들고 걸어간다. 아이들을 지켜보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언니, 이 쪽으로 와. 부르심을 받고 나는 순순히 베드에 누우려는데 베드 가운데 잘 접은 수건 하나가 놓여있다. 단감 색의 수건엔 조금 더 진한 주황글씨로
훔친수건
이란 문구가 있다. 이런 게 있다고 말로만 들었는데 실존하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내가 거기에 등을 깔고 누울 줄은 또 몰랐다. 나는 졸지에 훔친수건 위에 누운 자가 되어 천장만 말똥말똥 바라본다. 목욕탕의 습기가 모여 이슬처럼 매달려있다. 세신사 선생님은 짧은 내 머리를 솜씨껏 묶어준 다음,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내 양 팔다리와 상체 전부를 덮는다. 그리고 오목하게 모은 손으로 팡팡 소리를 내며 내 몸 곳곳을 두드린다. 아직 훔친수건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터라 현행범이 되어 멍석말이라도 당하는 느낌이다.
곧이어 거친 때수건으로 초벌 밀기가 시작된다. 때수건이라기보다 대패와 같은 강도라 나는 꼼짝없이 붙들려 서걱서걱 썰려나간다. 마치 가쓰오부시가 된 것만 같다. 온몸을 그리 밀고 나서는 조금 부드러운 때수건으로 바꿔 2차 밀기가 시작된다.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나는 하염없이 밀고 밀리느라 혼곤해지는데 그럴 때 기습적으로 천장의 물기가 뚝 떨어진다. 잠시 깜박이는 정신. 옅은 노란빛의 전등 아래 내 몸의 구석구석이 드러난다. 어쩔 수없이 사소하고 사사로운 컴플렉스들이 떠오르며 신경이 쓰이는데 세신사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당연한 일이다. 한낱 가쓰오부시의 멋쩍음은 선생님에게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다. 우리 사이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제로. 호피무늬의 작업복-브라와 팬티-를 입은 선생님은 종횡무진 내 몸 위를 누빈다. 허벅지를 탕! 하고 두드리면 자세를 바꾸라는 말이다. 두 어번 자세를 고치고 나니 이제 재깍재깍 타이밍 맞게 돌아눕게 되었다. 때는 다 밀었고 바디워시로 뽀득뽀득 헹궜으니 이제 마사지 타임이다. 여기서
침 꿀꺽
한다. 이제 탕 안과 밖의 재잘거림, 물을 퍼서 끼얹은 소리, 가끔 터지는 깔깔깔 하는 웃음소리는 내 귀를 간지럽히지 못한다. 멘톨 기운이 강한 바디오일이 나를 감싼다. 뒷목부터 등을 지나 허벅지와 종아리, 발바닥까지를 강한 압력의 무엇으로 훑고 나간다. 느낌상 문어발 모양의 지압기 같다. 아주 시원하고 좋다. 그러나 돌아누우며 흘깃 훔쳐보니 선생님의 손엔 아무것도 없다. 그건 오직 맨손의 요령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첫 시간 배워보는 손 모양, 부드럽게 계란을 쥔 모양의 그 손으로 도드라진 손가락 관절에 힘을 주어 몸을 문지르는 거였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도 옆 베드 위로 새로운 손님이 들고 난다. 예약이 엉키지 않도록 조율하기도 하고 세신 비용의 정산에 관해서도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한 푼 지닌 것 없이 누워있고 내 락커키는 선생님이 가지고 있으므로 더욱 얌전해진다. 오직 믿음만이 지탱하는 알몸의 상거래 현장이다.
시원하게 감겨주는 샴푸와 요플레 마사지를 받고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락커키를 받아 들고 핸드폰을 가져온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계좌이체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감사해요, 잘 가요. 상냥한 인사를 받고 다시 탕을 나온 나는 여유롭게 물기를 닦고 옷을 입는다. 젖은 머리를 털며 거울 앞에 가는데 드라이기를 쓰기 위해선 동전을 넣어야 한다고 쓰여있다. 200원을 넣어야 작동이 되나 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친절하게 붙어있는 동전교환기를 지나쳐 나는 당당하게 선풍기를 틀고 머리를 턴다. 툴툴툴 머리를 말리며 이 고색창연한 여탕 매점을 구경한다.
매점에는 정말 많은 물건들이 있다. 각종 음료수부터 때밀이 수건, 발각질 제거용 스크럽, 바디워시나 오일은 당연하다. 브라 팬티 세트도 뭐 아주 낯설지는 않다. 그런데 9,500원까지 다시마 간장과 10,000원짜리 누룽지(시식 가능이라 쓰여있다.), 3킬로에 60,000원하는 시골된장은 기대하지 않은 품목이다. 나는 이것들의 가격이 싼 지 비싼 지조차 알 수 없다. 한 포대 가득 놓인 김부각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다 누빔 솜바지도 팔고 아크릴 수세미도 판다. 시장용 바구니와 머릿수건, 실내용 천 슬리퍼를 지나 방수천으로 만든 작은 앞치마도 판다. 살 필요도 마음도 없으면서 나는 그것들을 차례차례 관찰한다. 우리도 나이를 더 먹으면 이런 곳에서 이런 물건들을 사게 될까? 노곤해진 몸에 로션을 바르고 200원 넣고 사치스럽게 머리도 말리다가 '언니, 그럼 나도 그거 하나 줘요.' 하고 척척 된장이며 김부각을 주렁주렁 사들고 집에 가게 될까? 뭐 맛이야 좋다면야 하고 생각의 끝을 흐리며 머리를 마저 털었다. 덜 마른 머리를 하고서 락커키를 반납하고 영하의 거리로 다시 나섰다. 이미 어둠이 내린 지 오래. 소금방에서, 온탕에서 지지고 끓이던 기억은 빠르게 식는다. 주머니 속 손을 폈다 접었다 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하아하아 퍼지는 입김 사이로 굳게 결심한다. 또 와야지, 매 달 와야지. 그래서 새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오고 말지.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그곳이 그립다. 땀을 뚝뚝 흘리며 찬 미숫가루를 마시고, 탕 안에 들어가 허어 하는 알 듯 말 듯한 소리를 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롭게 태어나는 거. 싸고 손 쉬운 거듭남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