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한 글자 (8)
새롭게 등재된 거래는 직거래라고들 했다. 말 그대로 중개인을 거치지 않은 거래. 개인 간의 거래라는 거다. 이는 사적인 거래, 즉 가족 안에서 증여하는 대신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거래한 물건이라는 추측을 자아냈다. 이런 경우 일정 비율 이하 금액으로 양도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거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승장에 종언을 고하는 듯 훅 떨어진 금액에 대해 여기저기서 말이 돌았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이건 '특수 거래'이니 평균 시세와는 거리가 있다 했고, 집값이 더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제 비정상적 시장이 끝나가고 있다 말했다. 이제 세계경제정책은 긴축으로 돌아섰으며, 금리를 높여 여태 뿌린 돈을 거둬들일 거라고. 집값에 잔뜩 낀 거품도 사그라들 때가 왔다고.
아직 상승장이라고 판단하는 이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이건 거품이 아니다. 이른바 뉴-노멀이다. 통화의 팽창은 필연적인 일이며, 자본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물가 상승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10년 전 짜장면 값으로 돌아가지 않듯 주택도 10년 전 가격으로 구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거품을 담담히 그리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면 이게 거품이 아님을 알게 될 거란 논리였다.
맥주를 사랑하는 이로서 거품이 마뜩잖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붓는 이는 속도 조절 없이 콸콸 따르고 받는 이는 직각으로 잔을 세우면 맥주잔엔 맥주보다 거품이 많이 찬다. 마셔도 헛배만 부르는 상태가 된다. 반대로 거품 하나 없이 멀건 잔은 김이 빠져 미지근하고 밍밍하다는 것을 뜻했다. 도제에 가까운 엄격한 수련을 통해 나는 적당량의 거품만 제조할 수 있도록 거듭났다. 봉긋하게 잔 위로 부푼 거품 아래로 작은 기포가 올라오는, 겉면에 물기가 살짝 서리기 시작한 그런 잔. 보기에도 훌륭하고 맛은 더 좋은 그런 잔을 수없이 만들어내며 깨달았다. 적당한 것이 좋다. 중용은 가장 큰 미덕이다.
불확실성은 혼란을 야기한다. 예측불가능한 시장은 기회와 동시에 몰락을 양산한다. 나는 높은 파고를 원하지 않았다. 그 바다에서 순풍을 등에 달고 나아가기보다 내려꽂힐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었다. 적당량의 거품은 경제가 나아질 거란 조심스러운 낙관, 가계가 윤택해질 거란 여린 희망을 의미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안정적인 각도의 우상향 그래프를 약속해 주었다. 지금 그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세가 상승한다한들 팔아야 수익인 것처럼, 반대로 하락한다한들 안 팔면 손해가 확정나는 것은 아니다. 섣부르게 매도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 일, 다시 말하면 깔고 뭉개면 될 일이었다. 그건 이 상품이 집이라서 가능했다. 원금과 이자를 제때 상환하기만 하면 부도날 일은 없으니. 하지만 누군가의 농담처럼 '우리 단지 시세는 대출상환능력이 가장 간당간당한 이가 정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았다. 둑의 가장 약한 부분이 터져나가듯, 고리의 가장 약한 부분이 끊어지듯 그렇게 하한가가 정해지기도 하는 거였다. 세상은 소란하고 기대와 절망이 교차했다. 눈 감고 귀 닫고 나는 꾸역꾸역 대출금을 갚아나갔다. 그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였다.
이자의 비중이 높았으므로 원금의 앞자리는 굼뜨게 움직였다. 잊을만하면 앞자리가 툭 떨어지곤 했다. 대출의 만기일은 2055년. 비현실적인 숫자에 웃음이 났다. 물론 더 비현실적인 것은 액수였지만 어쨌거나 줄어들고 있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2055년까지 느리고 성실하게 갚아나가기만 한다면 그때는 늠름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현관만 내 거고 나머진 다 은행 거야.' 대신 '이 집의 모든 구역이 다 내 거야!'라고. 마치 '청소를 마쳤습니다.'라고 말하는 로봇청소기럼. 까마득한 시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겠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동네를 떠나게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지만 예상보다 그날은 빨리 찾아왔다.
멀리, 조금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