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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Sep 12. 2021

엄마, 계단에 쥐가 있어

요즘 세상에 웬 쥐 소동

저녁에 이모부와 사촌 동생과 놀이터에서 놀다 온 아들이 현관에 들어서면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 쥐가 있어."

"엉? 어디!!!"

"계단에 쥐가 있어."

아, 나는 고양이도 무서워하지만 그 못지않게 쥐도 무서워한다. 쥐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소스라치는 엄마를 보고 아들이 덩달아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처음엔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이더니 내 반응 때문인지 점점 무서워하는 얼굴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눈물까지 그렁하려고 한다.

아니,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괜찮아. 쥐는 금방 도망가. 근데 쥐가 컸어? 어디 있었어?"

"저기 3층이랑 우리 집 사이에. 이모부도 봤어. 이모부가 사진도 찍었어. 이만해."

자기 손을 가리키는 데 손바닥을 넘어 손목까지 짚는 것을 보니 크긴 큰 놈을 봤나 보다.

동생네는 우리 집 바로 아래층인 3층이다. 아마도 같이 올라오다가 제부와 함께 쥐를 목격한 것 같다.

의연한 척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깨를 움츠릴 만큼 나도 무서웠다.

곧이어 같이 쥐를 봤다던 제부로부터 가족 단톡방으로 메시지가 왔다.

'계단에 쥐있어요. 대박'

나는 다급히 답장을 보냈다.

'사진 보내지 마'


남편과 나는 놀란 듯한 아들을 달래려고 별 것 아니라는 듯 계속 안심을 시켰다.

"괜찮아, 아빠 어렸을 때는 한옥에 살아서 천장에서 쥐 뛰어다니는 소리도 나고, 쥐 덫 안에 쥐 있는 것도 보고 그랬어."

아니, 저걸 지금 안심하라고 하는 소린가? 나도 상상돼서 무섭구만.


"무서워, 샤워 못하겠어. 쥐 나올 것 같애. 타노스 컨틀렛 있었으면 좋겠어. 손가락 한번 튕겨서 세상에 쥐 다 없애고 싶어."

응? 이 와중에 이건 또 웬 황당한 희망사항이냐.

그런 그렇고, 좀 심각하게 무서워하는걸. 나도 어렸을 때 마당에서 죽은 쥐를 한번 밟은 후로 쥐에 대한 공포가 아직까지 있는 것 같은데 나처럼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모할머니는 참새도 막 손으로 잡고 그런단 말이야."

얼마 전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가 들어왔는데 우리 이모가 손으로 새를 훅 밀어서 내보낸 것을 봤던 것이 기억났나 보다.

"야, 괜찮아. 아빠가 가서 쫓아버릴게. 그럼 되지?"

호기롭게 남편이 중문을 열고 신발을 신는다.

아들은 뭔가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는 그조차도 영 불안했다. 사실 남편도 나 못지않게 쥐를 무서워할 것이 뻔했다. 집에 바퀴벌레가 나와도 나와 아들이 잡는데 남편이 쥐를 잡겠다고? 그래도 두려워하는 아들에게 뭔가 보호해 주는 아빠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었나 보다.


잠시 후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허겁지겁 빗자루를 찾았다.

"안 도망가네. 빗자루로 밀어서 보내야겠어. 야, 그리고 조그맣더구만, 완전 작은 새끼 쥐야. 걔도 무서워서 꼼짝도 못 하고 있어."

너무 겁이 나서 엄청 크게 보였나 보다.

"그래, 준아. 걔는 얼마나 무섭겠냐. 자기보다 몇십 배 큰 사람들이 막 지나다니는데 걔가 더 무서울 거야. 그러니까 불쌍하게 생각하자."

뭐 이런 말을 해준다고 나아질리는 없겠지.


우리 집은 지은 지 꽤 오래된 빌라인데 가끔 바퀴벌레가 나오긴 하지만 쥐는 본 적이 없었다. 두 개 동으로 만들어진 빌라로, 터가 넓어서 앞동과 뒷동 사이에 주민들이 가꾸는 채마밭이 있고, 건물 앞에도 나무가 심어져 있는 흙바닥이 있다. 요즘 빌라와는 달리 지하 주차장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고, 한편에 자전거를 여러 대 쌓아놓을 수 있는 크기의 창고와 같은 공간이 있으니. 이 모든 구조가 쥐와 고양이가 숨어 살기 딱 좋은 조건이기는 하다.

우리는 좀 오래되긴 했지만 넓게 지어진 이 집이 좋았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생네 부부도 아래층으로 이사를 와서 꽤 만족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청천벽력 같은 쥐 소동이란 말인가.


남편은 빗자루를 들고 왜구라도 무찌를 기세로 계단으로 내려갔고, 아래층에서는 제부가 소식을 듣고 같이 쥐를 물리치러 나섰다. (사실 제부도 벌레 무서워서 못 잡는데? 둘이 잘할까?)

집 안에서 들어보니 탕탕탕탕 소리가 난다. 계단 철재 난간을 두드리는 소리다.

쳇, 큰소리치고 나가더니 가까이 가서 몰 자신은 없고 두드려서 쫓아버리고 있구만.

"갔어. 갔어. 아빠랑 이모부가 쫓아 버렸어. 근데 엄청 빨라. 계단 난간 위로 그 동그란 데로 떨어지지도 않고 빨리 도망가 버리더라. 야, 쥐는 진짜 좁은 데로도 잘 다니고 막 위아래로 봉을 타고 다닌다. 아무튼 보냈어. 걱정하지 마!"

 

나중에 알고 보니 제부는 벌레는 무서워하지만 털 달린 동물들에게는 거부감이 없고 쥐는 약간 귀여워하는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워낙 대차게 앞장서는 탓에 뒤에서 슬슬 따라만 다녔다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제부한테 그냥 쫓아달라고 해도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의지할 수 없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당찬 척을 했다고 한다. 참, 나, 듣다가 웃긴 했지만 전혀 무섭지 않은 척 연기를 했던 나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남편과 제부가 합심하여 쥐를 아래층 건물 밖으로 내려보냈고, 양쪽 가족들은 그날 밤 안심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아니, 아들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이제 밤에 혼자 나가려니 계단에, 문 앞에 쥐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고, 이 집에서 사는 한 이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없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발로 문을 툭툭 차는 못난 짓도 꼭 하고 나간다.

어쩌지? 쥐 한번 나왔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그래도 날 닮아 겁 많은 아들이 아침저녁으로 같이 다니자고 하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 될 테니 두려움을 꾹 참고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열심히 생각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날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도 한바탕 화젯거리가 되었다.

계단에 쥐가 있었다는 얘기는 역시나 할머니들과 할아버지에게는 한번 웃고 넘어가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무심하게,

"어, 너네 건물 쥐 있어. 주차장에서 본 적 있어."

라는 말로 간신히 눌렀던 내 가슴이 다시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평생 겪어왔던 쥐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이어졌다.

"얘들아, 할머니 젊었을 때 방 한 칸에 할머니들이랑 삼촌 할아버지들이랑 같이 살았거든. 근데 그 집은 지붕 밑에 쥐가 후다다닥 돌아다니는 집이었어. 그래서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서 쥐 돌아다니는 소리가 나고 그랬는데, 어느 날은 천장 한쪽에서 쥐 한 마리가 툭 떨어진 거야. 그래서 이불 옆으로 막 돌아다녀. 그래서 할머니가 저걸 어쩌냐고 소리를 질렀더니, 둘째 삼촌 할아버지가 연탄집게를 들고 와서 쥐를 탁! 때려잡아서 들고나갔지." 

"죽었어요?"

"그러엄, 피가 톡톡 떨어져서 징그러웠지."

장단 맞추는 이모가 한 술 더 뜬다. 아니, 이 할머니들이.

깔깔거리며 말씀하시는 할머니 얘기에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재밌어했는데 정작 나는 공포 영화 스토리를 듣듯이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할머니 옛날에는 학교에서 쥐 잡아오라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쥐꼬리 잘라가야 되는데 쥐 없으면 오징어 다리 가져갔다가 막 선생님한테 혼나고 그랬다면서요."

"어! 네가 그거 어떻게 아냐?"

"검정 고무신에서 나왔어요."

"아~ 검정고무신? 흐흐흐흐흐. 그래, 그때는 쥐 엄청 많았어. 천장에서 소리 나서 시끄럽고 그랬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계단에서 쥐를 본 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겠지만 저 아이들이 커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꽤 재밌는 에피소드가 될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집 앞에 쥐가 있어서 아빠와 이모부가 빗자루를 들고나가 쥐를 쫓아냈다는 이야기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손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겠지.

"얘들아. 할아버지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놀고 돌아오는데 계단에 쥐 한 마리가 있는 거야. 그래서 할아버지네 아빠하고 이모부가 빗자루를 들고 쫓아 나가서 쥐를 막 계단으로 내려보냈지. 근데 그 쥐가 막 도망 다니다가 계단 난간 손잡이 위로 조르르 달려 내려갔대. 쥐는 좁은 길로도 엄청 잘 다닌다. 위로도 타고 올라가.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할아버지네 아빠도 쥐 무서웠는데 할아버지 때문에 안 무서운 척했대.

그 담부터 할아버지가 집에 갈 때 혹시 집 앞에 쥐가 있을까 없을까 걱정이 돼서 맨날 무서워하면서 다녔다. 그때 할아버지 사촌동생, 할머니 알지? 그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맨날 무서워서 발발 떨면서 다녔어."


요즘 세상에 쥐라니, 오래된 건물인 데다가 구석구석 채마밭까지 있는 복잡한 골목이라 도둑고양이에 쥐 같은 것들까지 있는 건 아닐까, 아파트에 살면 쥐 없지 않을까? 이사 갈까? 당장 이사를 어떻게 가?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집값 비싼 동네가 아니니까 이렇게 원하는 대로 모여서 살 수도 있고, 부모님과 이모에게 아이들 맡기고 맘 편하게 직장 생활할 수도 있고, 동생과 붙어살아서 서로 아이들도 봐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든 시기에 아이들도 위 아랫집에 붙어살면서 친 남매처럼 지내는 덕에  외동아이들임에도 외롭지 않게 잘 자라는 것도 감사하잖아? 서울인데도 아침에 창 밖에서 새소리가 산속처럼 들리고, 집 바로 뒷산에서 봄이면 아카시아 냄새도 풍겨오는 이 생활환경도 변두리 동네가 주는 장점이다.


아무튼 아직도 또 쥐가 올라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한숨은 나오지만, 걔들도 잘 들여다보면 귀여운 데가 있다고 백번 천 번 중얼거리면서 한적한 동네의 장점을 곱씹어 보기로 한다.

어디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하나, 이놈에 겁은 나이 많으면 좀 줄어들려나 싶은데 어째 갈수록 더해간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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