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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ul 23. 2023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하는 일상 #2. 초록잎

작은 수고, 싱그러운 기운, 화분 가꾸던 엄마의 마음

방 두개, 주 부엌, 앞 뒤베란다가 전부인 열일곱평 남짓한 연립주택 106호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 나 다섯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106호에 살고있던건 우리 다섯명만이 아니었답니다. 다른 생명체들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온 집안을 다섯개로 쪼갰을 때 그중 한 개는 족히 될만큼 넓은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던 화분들이었습니다.



로에, 행운목, 산수유, 고무나무, 군자란 같은 커다란 화분도 몇개나 됐고요. 바이올렛, 돌나물, 선인장, 베고니아, 채송화, 이름모를 난초들까지 올망졸망 작은 화분은 셀 수도 없었습니다.


알로에라고 한두가지만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베라, 사포나리아, 아보레센스... 엄마가 매일 이름을 불러서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 기억나는 다수의 알로에들이 종류별로 새끼를 쳐서 또 몇개의 화분을 점렴하고 있었습니다.



30여년전 사진입니다.


공작 선인장에 꽃이 피면 엄마는 큰 소리로 우리를 불렀어요.  

"야, 이거 봐라. 색깔봐라. 큼직하게 핀거 봐라."

흥분해서 난리를 피우는 엄마에게 진짜 예쁘다고 맞장구를 쳐줬지만요. 고백하자면 저는 공작선인장이 예쁘지 않았어요.


동기 시대에 출토된 비파형 동검같이 생긴 이파리도 별로 였고, 납작한 몸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크고 강렬한 꽃은 가분수 같았거든요. 미안한 말이지만 뻘건 입을 쩍 벌린 괴물같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너무 좋아해서 어린 나이에도 그 꽃 괴물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끔 바이올렛에 물을 주라는 심부름도 했습니다.

바이올렛 이파리는 절대로 물이 닿으면 안된대요. 물이 닿으면 그 자리가 타들가듯이 말라버리기 때문에 꼭 흙에만 물을 줘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들었습니다.


그럼 그에 알맞게 물줄기가 작은 주전자라던가 작고 앙등맞은 입구를 가진 물조리개를 이용해야 할 거 아닙니까?

우리 집 물조리개는 물 나오는 입구가 바이올렛 화분만했다고요. 그걸로 물을 주는데 어떻게 잎에 물이 닿지않을수가 있겠어요?


초등학생에게 꽃의 몸통보다 훨씬 큰 물조리개 주둥이로 쏟아지는 물을 꽃잎과 화분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흘려넣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시나 내가 물을 텀벙 부어버려서 바이올렛 잎이 다 타죽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이렇게 하면 되는거냐고 엄마에게 물었는데 엄마는 그냥 조심해서 잘 주라는 시큰둥한 말만 했습니다. 지금생각하니 야속하군요.


어느 날 베란다 청소를 하던 엄마가 화분이 총 몇개나 되는지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같이 셌는데 정말 올망졸망한 작은것 까지 합해서 백개가 넘었었어요.

우리 베란다는 그야말로 작았는게 그게 어떻게 다 들어갈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겨울이면 그 화분들이 대부분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걸  안방으로 옮길 때마다 온 식구가 다 출동하는 대대적인 작업이었고 그때마다 저는 지긋지긋했어요.

대체 사람이 살기도 작은 이 집에 왜 화분이 백개도 넘게 있어야 하는지 울화가 치밀기도 했답니다.

심지어 엄마는 화분값이 아까워서 조악한 플라스틱 화분에만 꽃을 심었던 탓인지 예뻐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후로 이사를 하면서 꽃은 많이 처분되었지만 이사한 집 베란다에도 철재로 짜 넣은 화단에 화분이 그득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결혼을 한 후, 엄마가 키우기 가장 쉬운거라고 하면서 산세베리아를 나눠줬는데요. 그걸 초 단시간에 죽여버렸어요. 물론 일부러 그런건 아니고 최선을 다해 돌봤지만 어느 날 회사에서 돌아와보니 누워있더라고요.

우리 집 습도에 비해 과했는지 물을 너무 줘서 썪은 거라고 합니다.


열흘에 한번 쯤 주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흙을 봐가면서 줬어야 한다는 타박을 듣고 억울할 뿐이었습니다.




그 후로 몇 년간 식물 기르기는 포기하고 살았는데요. 초록잎 인테리어가 유행하면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기념일 선물로 화분을 준다길래 금전수를 선택했습니다. 마침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스킨 답서스, 선물 받은 녹보수. 이렇게 세개의 식물이 손에 들어와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들은  왠만해서는 죽이기 힘든거라고 하더라고요. 원목가구들 옆에 초록 화분이 있으니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죽이지 않기로 하고 물 주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스킨답서스는 물만주면 하루가 다르게 길이가 길어져 선반위에 올려놓은 것이 바닥까지 늘어졌습니다. 녹보수는 중앙에 새싹이 쉬지 않고 돋아나 키가 한 뼘도 넘게 자랐고요.  금전수도 정신없이 새 순이 돋아 너무 긴 것들은 가끔 잘라줬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물 주기 조차 귀찮았던 저는 식물들을 잘라서 물꽂이를 하고, 때에 맞춰 분갈이까지 해 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에 있는 소주잔, 유리잔, 이빨이 나간 머그잔을 다 끄집어내서 금전수와 스킨답서스 2세들을 길러내고 있습니다.


스킨 답서스는 뿌리가 나오는 부분을 물에 담그기만 하면 며칠 내에 뿌리를 내려줍니다. 금전수도 줄기나 이파리를 잘라서 물컵에 담가두고 기다리기만 하면 뿌리를 내고, 시간이 지나면 동그란 뿌리 덩어리까지 생겨나 오래 두고 볼수 있어요.




최근에는 엄마가 물려 준 고무나무에 새 순이 돋는 걸 관찰하고 있습니다.

엄마도 기운이 빠지는지 그렇게 평생 끼고 있던 화분 갯수를 자꾸 줄여가려고 하네요.



청소도 게을리하면서 얘들은 매일 들여다봅니다.


전에는 화분에 물을 며칠에 한번씩 줘야 하느냐, 햇볕에 마만에 한번씩 내놔야 하느냐, 딱 규칙을 알고싶었는데요. 이제 보니 화분은 그렇게 키우는게 아니더라고요.


흙이 말랐는지 봐줘야 하고, 싹이 난 자리에 가지가 너무 많으면 좀 잘라줘야 하고요.

이파리가 시들시들한지 물이 빵빵하게 차 있는지 만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들이 생각보다 재밌어지면서 삼십여년 전에 그 좁은 집에서 화분을 가득히 키우던 엄마 마음이 다르게 여겨졌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낮이면 공장에 나가면서 아침 저녁 밥을 해 대던 엄마는 그 바쁜 중에도 화분 백개를 키웠던 거예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열심히 철마다 분갈이 해주던 엄마는 그게 취미이자 힐링이었을겁니다.


매일 이놈에 화분좀 줄이라고  했던 큰 딸은 이제와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 사느라 바빠진 저는 열심히 화분을 돌봅니다. 엄마 만큼은 아니지만 엄마가 왜 맨날 꽃들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적어도 2,3주에 한번씩 화분을 욕실로 모두 모아놓고 샤워기로 물을 뿌려줍니다. 이파리에 앉은 먼지를 하나씩 닦아줄 여유가 없어서 하는 짓인데요. 정원에 물을 주는 것 같은 행위라서 싱그럽고 행복합니다.



2023.7.22 춘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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