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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y 21. 2023

우리의 역사는 쪽팔림에서 탄생한다!

과거의 나에게 관대한 사람들은 좀 쿨하고 멋있어 보인다. 어릴 적 싸이월드에 올린 중2병적인 게시물을 허허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지우지도 고치지도 않는 사람들은 멋지다 못해 소름 돋는다. 그렇게 쓰인 과거 위에 내가 만들어졌대도 비대한 나의 자아는 내가 저랬을 리 없다며 모든 걸 부정하고 삭제하고 수정하고만 싶다.


'뭐쓰모(뭐라도 쓰는 모임으로, 일주일에 한 번 브런치에 글 올리는 모임이다)'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과거에 연연하는 구질스러운 사람인지 새롭게 알았다. 내가 쓴 글은 왜 하루이틀만 지나도 별로여 보이는지. 그게 미치도록 신경 쓰여 새로 읽을 때마다 사소한 표현 하나하나를 고치곤 했다(그래서 내 브런치 글들은 대부분 N차 발행본이다).  분명 글이 아니라 딴 거라면 이렇게까지 안 했다. 늘 '그래도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인데!'로 생각이 미치는 바람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글들이 쪽팔려서 견딜 수 없는 거였다. 내가 글쟁이가 아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수치스러워하는 건 서툰 글쓰기 실력보다도 영글지 않은 생각과 미숙한 감정, 그러니까 과거의 나 그 자체다.


천재가 아닌 이상 치기 어린 마음만 앞서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걸 텐데. 그 시절의 날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 쪽팔릴 게 싫어서 채 열지 못한 문들이란 또 얼마나 많은지. 애석하게도 영재가 아닌 난 새로운 문 앞에서 어떤 해결책이 필요했다. 의외로 답은 멀지 않은 데 있었다. 굳이 찾으려고 한 건 아닌데 친구 K와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졌다. 꿈이라는 단어를 좀 부끄러워하면서 꺼내는 내게, "네가 쓰는 글들을 늘 기다리고 있어. 어떤 꿈도 버리지 마"라며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그 순간에.


나의 못난 점을 찾아내 점수를 매기는 객관의 세계는 이들의 바깥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 세계의 기준에 끝없이 나를 비춰보고 미달된 수준이 쪽팔려 숨곤 하지만, 그런 나를 꺼내어 새로운 문 앞에 서게 하는 건 이런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나의 모든 시도를 응원해주고 내놓는 결과물을 눈 감고도 추켜세워주는 사람들. '이런 다정한 마음을 곁에 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좀 우쭐해진다. 그리하여 내가 좀 덜 쪽팔려지는 것이고 기어이 새로운 문을 열 수도 있다. 요즘에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너무 많이 나누는 바람에 폭주하듯이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등을 떠밀어준 사람들이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걸 이어가는 건 이젠 내 몫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역사는 쪽팔림을 이겨내는 것에서부터 탄생할 것이다. 이 글도 언젠가는 더없이 부끄러운 이력이 되겠지만 늘 따뜻한 시선으로 이걸 읽어줄 친구들을 나는 안다. 그런 마음들이 있는 이상 이 글은 새로운 길을 향해 켜켜이 쌓여가는 걸음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탄생한 역사에서 내가 또 쪽팔리게 굴더라도 다정한 말들을 해줄 사람들이 있으니 별로 무서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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