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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an 18. 2022

11. 어서 와! 우리 구면이지?

면회를 위해 대기하던 중 벽에 걸린 기사 하나가 눈에 띄게 들어왔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에게 캥거루 케어를 하면서 건강한 아이로 자라난다는 아주 기쁜 소식들 이였다. 그만큼 살과 살이 맞닿는다는 것과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힘을 주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집으로 온 나와 데이지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는 다신 면회를 간다면 울지 않고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다는 것과 데이지는 나오지 않는 초유를 어떡해서든 먹이겠다는 것이다.

나오지 않는 초유를 쥐어짜 내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속상했다. 데이지도 엄마가 됐으니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출산한 지 3일도 채 안됐으니 체력이 따라올 수 없었다.

정말 힘들게 한 모금도 안 되는 초유를 짜냈다. 피와 함께 섞인 그 초유를 냉동실에 얼려놓고 마음의 위안을 조금은 얻었다. 첫째님이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에도 힘들었지만 잘 이겨냈으니 지금 상황 역시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은 있었다.

두 번째 면회 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 전 병원으로 향했다. 꽁꽁 얼린 초유를 녹지 않게 아이스팩에 묶어두고 대기실로 향했고 문이 열리면서 차례를 지킨 채 침묵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부모님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무리에 나 역시 이끌리듯 들어가서 첫째님의 인큐베이터 앞에 도착하여 기도를 했다. 많이 사랑한다고, 어서 여기서 나와 집으로 가자고, 그리고 아빤 더 이상의 후회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전달했다. 눈을 뜨고 첫째님의 모습을 보니 주삿바늘 자국은 점점 더 커져갔고 마음속 아픔 또한 비례하여 커져갔다. 대기실에서 봤던 기사를 머릿속에 되뇌었다. 그런 미숙아도 부모가 의지만 잃지 않는다면 건강하게 자라나는 그 희망찬 소식에 나도 첫째님의 아픔보단 퇴원해서 우리와 함께 할 그날의 기쁨에 더 집중했다.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어렵게 짜낸 초유를 건네며 꼭 한 방울이라도 먹여달라는 부탁을 했고 면회가 끝난 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약해지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회사생활은 아프지 않은 듯, 큰 무리 없는 듯 지냈다. 여기저기서 아이의 상태를 묻는 말엔 곧 퇴원할 것이라고 , 이미 예상했던 결과라고 덤덤하게 말은 했지만 마음속은 참 많이 아팠다. 본인의 아이도 태어날 때 케어실에 들어갔던 경험이 있는 직원분의 아들은 야구선수가 될 정도로 튼튼해졌다고 했다. 그만 좀 컸으면 이란 농담할 날이 올 테니 너무 걱정 말라는 그 말이 같은 아픔을 겪고 있던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됐다.


데이지는 점점 모유 양이 늘어났고 냉동실에 잘 얼려놔서 면회 때마다 첫째님에게 줄 수 있는 모유가 늘어나 기뻤고 첫째님을 만날 때마다 희망찬 단어로 짧은 30분을 알차게 보냈다. 그렇게 10일 정도가 지나면서 점점 첫째님의 상태가 호전됐다. 황달 기도, 요로감염도 사라졌고 맥박, 산소포화도 역시도 정상수치에 들어갔다. 퇴원할 수 있다는 병원의 전화를 받고 10일이라는 짧으면 짧은 그 기간 맘 졸였던 모든 것들이 해방됐다.

11일째 되는 토요일에 첫째님의 퇴원 소식을 병원에서 듣고 부모님은 우리 집으로, 우리 부부는 병원으로 향했다. 면회 갈 때마다 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스르려고 즐거운 상상만 했던 그 길이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웠다.

도착한 대기실엔 여전히도 아이의 면회를 위해 침묵으로 위로하며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속 응원을 했다. 우리 부부는 너무 기뻤지만 그 자리에서 기뻐할 수 없었다. 그 아픔을 알고 있으니 더 기뻐할 수 없이 조용히 옆방으로 들어갔다.

블라인드가 거치고 첫째님이 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봤다. 내 기억으로는 그날따라 병원이 너무 하얗고 눈부시게 깨끗했다. 창문도 없는데 햇살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밝았다.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입구를 찾아 나왔을 때 눈부신 햇살이 반가운 것처럼 유리창 넘어의 첫째님을 보면서 참 많이 그리웠고 반가웠다. 그리고 첫째님을 겉싸개에 싸고 안았을 때 비로소 출산 때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행여 누군가 우리 차를 들이받지 않을까, 내가 속도를 내면 데이지와 첫째님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며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출산하러 갈 땐 이성의 끈을 놓쳐버려서 광란의 질주를 했다면 집으로 갈 땐 너무도 천천히 가는 데에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부모님은 첫째님을 보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첫째님의 장애 사실을 알았을 때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고 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첫 손녀를 위해 시를 쓰고 현수막을 만들 정도로 들떠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나마 그래도 출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어머니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갓난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기억하지 못했지만 산모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본인의 경험, 아이를 기르는 경험은 잊었어도 본인이 겪었던, 여자만 겪을 수 있었던 그 기쁨과 아픔, 힘듬의 경험은 머리로는 잊어도 몸은 기억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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