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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Oct 05. 2024

간다 큰 거 또 한 방

4장 저녁 식사(6)






“합가 하면, 우린 다 죽을 거야. 그치? 친구들아.”


“뭐여, 저것이? 이런 우라질! 너 시방 여태꺼졍 조용히 처자빠져 있었던 것이 다 요럴라고 헌 것이었냐? 이거 완전히 미치갱이구마잉!?”


파랑색 원앙이 큰소리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걱정마라. 또 한 방 남았으니까.”


“선배애, 무섭게 왜 그러세요. 네?”     


뭐라고 빽 소리를 지른 원앙 인형을 옆에 두고서 스투키 화분이 겁에 질려 리모컨을 말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발 리모컨이 다들 보라는 식의 허풍을 치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가 말한 한 방이 진짜라면, 아니, 진짜라는 걸 자신이 정확히 인지하게 된다면, 자신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탱탱한 선인장을 전부 다 터트려버릴지도 몰랐다.


“리모컨아.”


두려움에 떠는 화분의 심정을 아는 것인지, 느슨하게 희주의 몸을 감싸고 있는 가죽 소파가 리모컨을 불렀다.


“네가 이러는 이유야 알겠지만 너 답지는 않다. 성준이 형도 좀 무리하는 거 같고.”


“그래요. 다들 진정 좀 해야 해요. 사실 지금 성진이 언니가 하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닌데…… 성준이 오빠가 너무 자극 받은 거 같아요.”


“그렇지. 남매니까. 언니는 못하는 걸 그냥 인정하라고 하는 거고, 오빠는 그걸 굳이 인정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고, 뭔가 몰아세워지는 느낌이라 기분까지 상한 거지. 이래저래 자존심 싸움 중인 거야.”


가족 사진 액자가 어린 성진과 성준을 담고서 낯설지 않은 광경이란 듯 얘기했다. 그렇지만 스투키 화분은 그걸로는 이 불안감이 절대 풀리지 않을 걸 알았다.


“저…… 그래도요. 원앙 인형 선배님들, 지금이라도 그냥 리모컨 선배님한테 사과해주실 수 없나요?”


“허허, 뭐라? 야, 아야. 너 지금 니가 머라 허는지 알고 씨부리냐아? 아니, 우덜이 왜 사과를 해불까? 저것이 지가 성치를 못해서 쫄링께 앞서서 저 지럴을 떠는 것인디이, 잉!”


“아니이……. 그래도 계속 도발은 하셨잖아요. 그냥 제 말은 이번 한 번만 먼저 좀 숙이시면 낫지 않을까 해서…….”


“야! 너 정신차려야. 헐 소리가 있고 못 헐 소리가 있제. 너 지금 우덜더러 쩌것 밑으로 겨 들어가서 대가리 박고 있으라는 소리여? 고것도 여그서 쩨일 새파렇게 어린 것이 하늘 거튼 슨배들을 가르칠라고오. 아야, 너, 너 어디서 그른 버르장머리를 배워 먹었냐? 시방 너도 쟤만치 미쳐부렀써?”


“오메에, 나가 오래 살긴 혔는가. 요런 꼬락서니는 또 첨이네. 아야, 잘 들어라. 애기 너가 잘 몰른다고 내 가정을 허고 찬찬히 말을 다시 허께. 우덜은 징말로 참말로 읎는 말은 못 혀. 잉? 알긋제. 그니께. 입조심 하그라. 잉? 확 조사불기 전에에?”


시뻘겋게 눈알을 부라리는 파란 원앙 인형을 본 스투키는 또 다른 이유로 겁에 질렸다.


“전…… 전 그냥…… 이러다가 진짜 다 죽을 거 같으니깐 그랬죠오. 히잉…….”


의기소침하게 대답하던 스투키 화분은 끝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잉야. 우덜이 죽긴 왜 죽어? 그런 걱정은 허덜 말어. 우덜이 이렇게 아부지를 두고 양쪽에 앉아서 떡 지키고 있간데 뭐시 걱정잉가아?”


“허! 아직도 상황 파악 못하고 허세나 떨고 있는 것 봐. 선배랍시고 어린애 겁이나 주는 너희들을 보고 있으니 나야말로 오래 살아 별꼴이다. 합가 하게 되면 당연히 며느리 취향으로 집을 꾸미지 무슨 지금처럼 지들이 한자리 차지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줄 아네? 하여튼 새대가리들.”


돼지토끼 알람 시계가 조곤조곤하게 반박했다.


“얼레? 저 뒷방 늙은이가 또 나와서 옘병을 떠네. 암만혀도 저것부터 조사부러야겄다. 안 긍가, 부잉?”


“아이, 보소. 서방님. 나가 지금 쪼깨 생각이 바껴부럿어라.”


“뭐? 뭐시 달라져?”


“에잉, 나가 보니께, 그…… 거시기…… 뭐다냐, 사과를, 쪼까 허불면 어땨요? 아니이, 우덜이 손해볼 것도 없자냬애. 기양 맘을 우덜이 쫌 넓게 함븐 써브면 쓰것는디.”


“아니. 이 여편네가. 약을 처먹었나. 시방 뭐라 하는가? 사과는 무신 놈의 사과여! 사과가! 우라질!”


파란 원앙은 분을 참지 못하고 꽥꽥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내 계획에 차질이 안 생기지.”


스투키 화분은 여전히 성진의 손에 쥐어진 채로 나긋하게 혼잣말을 뱉고 있는 리모컨을 보며 서늘해졌다. 성진은 열이 오를대로 올라서 고요한 거실을 둘러보다가 손에 들고 있는 리모컨을 더 바짝 움켜쥐고 입을 열었다. 엄마. 희주가 그에게 시선을 뒀다. 그러자 성진은 입을 한 번 꾹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 성준이한테 큰아빠가 돈 달라고 계속 연락해. 성준은 누나의 원기옥 한방에 돌겠다는 얼굴을 하고 쳐다봤다. 누나 진짜 왜 그래! 엄마한테! 성준이 못 참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성진은 자신 앞으로 진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고개를 양껏 들어올려 그를 쳐다봤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네가 어쩔테냐 하는 눈빛이었다. 희주는 남매가 옥신각신하는 광경을 아무런 말도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점차 핏기가 사라져 갔다.


“저러시다가 혈압 올라 쓰러지시면 큰일인데……, 줄초상 치르겠네.”


희주 바로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가족 사진 액자가 우려스러워 했다. 그의 말처럼 희주의 몸이 눈에 띄게 부르르 떨렸다.


“서방님, 을른 사과허셔라. 아이, 참말로 집안 분위기란 게 은근허게 또 사람헌티 영향을 주잖소. 우덜부터 살살 풀어야 또, 아이 인제 밥 먹을 때가 됐어라. 얼른 미안허다 허쇼.”


“아따, 나가 왜 사과허냐니께? 난 사과헐 께 읎서어!”


“오메에, 대장부가 와 그리 쇠고집이랑가요오이잉. 한 번만 져불제에! 분위기 좀 바서어!”


그때, 서 있는 성준의 주머니에서 옅은 빛이 새어나왔다. 네모진 걸 보니 전화가 오는 게 분명했다. 성진이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희주를 살폈다. 희주도 성준의 주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성준은 크게 망설였고, 성진은 리모컨을 붙잡고 있는 손이 서서히 차가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받아 봐라. 희주의 갈라진 음성에 얼음땡이 된 듯 성준의 손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폰을 꺼내자마자 전화가 끊겼다. 성준은 참았던 숨을 뱉었다. 정말이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가 겨우 자리에 다시 앉으려던 순간, 부엌 쪽에서 요란한 화음벨 소리가 울리며 모두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았다.


“언니 나 파랑이 쪽으로 던져버리고 달려!”


성진은 동물적인 반응 속도로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식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연자주색 폰 케이스를 열어 희주의 폰을 귀에 가져대는 순간, 리모컨의 몸체가 파랑 원앙 목각 인형 머리 위로 떨어졌다. 목각 인형은 속절 없이 굴러 떨어져서 바닥에 부리를 부닥쳤다. 반이나 부러져 튕겨 나간 부리 조각이 핑그르르르 거실 방바닥 위를 횡단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돌발 상황에 모두들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괴성을 냈다. 어쨌거나 아수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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