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저녁 식사(7)
어쨌거나 아수라장이었다.
제필 특유의 유들거리는 인사가 비집고 나오려는 틈에 성진이 딱 잘라, 됐고요. 라고 본론을 시작했다. 다신 이 번호로 전화 하지마시라. 줄 돈 한 푼도 없고, 줄 마음은 더더욱 없으니 그렇게 아셔라. 성진의 꾹꾹 누른 한마디 한마디가 더해질 때마다, 그걸 보는 성준이 안절부절 못했다.
“그래. 우리집 장녀 말 한 번 잘한다. 그렇게 해야 더는 만만하게 못 보지.”
원목 도마가 흥을 내서 성진을 응원했다.
“근데 이제 다들 식사해야 하지 않나? 시간이 그럴텐데.”
스텐리스 들통이 깨끗하게 씻긴 몸을 거꾸로 뒤집고 점잖게 말했다.
“맞아. 음식 다 식겠다. 아까 전에 진짜 냄새 좋았는데, 벌써 많이 옅어졌어.”
뜰채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성진이 온 힘을 다 끌어모아 악을 내질렀다. 내가 경고하는데, 큰아버지고 뭐고,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으니 이젠 볼 일도 없고! 그 만큼 우리 엄마 반 평생 넘게 부려 먹었으면 됐으니까! 내 동생이랑 우리 올케 건들기만 해 봐 아주. 가만 안 둬요! 알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집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씩씩거리는 성진의 옆에서 희주가 폰 케이스 뚜껑을 닫았다.
“하…… 이제 좀 살 거 같아.”
스마트 폰이 터질 것 같았던 몸체의 열을 가라앉히며 화면을 껐다. 밥이나 먹게 앉아. 다들. 희주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껏 분을 삯히며 말했다. 두 남매, 아니 현재 같이 있는 모두가 지금 저녁 밥을 먹어서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누구 하나 군소리 없이 의자를 빼서 식탁에 앉았다. 희주는 가스불을 세게 켰다. 먹을 만큼만 미리 덜어 작은 스텐리스 냄비에 둔 미역국이 잔열이 있었던 덕에 빨리 끓었다. 엄마, 밥은 제가 풀게요. 성준이 일어나려 했으나, 희주가 그냥 앉아 있어. 하고 낮게 명령했다. 그는 밥주걱을 빼들고 밥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성진과 성준은 과거 식사를 할 때면 늘 앉던 그 자리에 앉아서 마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시선을 철저히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서 싸움이 더 일면 아마도 이제는 정말 희주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폭풍 전야가 따로 없네. 어째 누가 밥상이라도 엎겠어.”
“에이—, 그런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나면 안 되죠. 어머니가 밥상머리 교육을 얼마나 철저하게 시키셨는데.”
과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희주가 밥을 퍼서 상에 올렸다. 성진과 성준은 희주의 밥을 먼저 챙겨 그가 앉을 자리 앞에 놓고, 자신들의 밥도 각각 챙겨 앞으로 옮겨 놨다. 살짝 푸른 기가 느껴지는 흰 쌀밥이 아주 고슬하게 광택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많이 안 진거 같은데?”
“딱 먹어보면 안다. 약간 쫀딕하게 달라 붙을 기다.”
“이러나 저러나, 나는 쟤들 저러고 있는 거 보니까. 왜 자꾸 옛날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네. 맨날 어무이 뒤에서 서로 발로 차고 싸우고, 어린 성준이는 성진이한테 맨날 밀려서 벌건 눈을 하고 눈물이 그렁그렁거리고.”
도마는 오랜만에 남매가 한 상에 앉은 것이 감격스러운지 약간 상기되어 말했다.
“그러게요. 근데 이제는 다들 커서 가정도 있고 그런다고, 그렇게까지 유치하게 싸우거나 하지는 하네요.”
과도가 그 포인트가 또 다른 흥미를 일으킨다는 투로 응했다.
“어때? 양념들은? 뭐 간 짜고 싱거운 건 없는 거 같지?”
한 끼 밥을 퍼서 전자레인지용 뚜껑 있는 밥그릇에 소분하는 희주를 보던 밥솥이 임무를 완수한 기쁨에 취해 경쾌히 물었다.
“후후. 미역국 냄새 맡는 순간, 이미 끝났지. 다른 것들도 너무 완벽해.”
꽃소금 통이 자신감에 차 답했다.
희주가 국을 퍼서 작은 쟁반에 담아 바로 옆 성진에게 건넸다. 성진은 희주가 자리에 앉기 전에 얼른 국 대접을 나눠 옮기고, 희주가 앉을 자리에 의자를 꺼내주었다. 희주가 와서 의자를 끌어 당겨 식탁 앞으로 앉았다. 그가 먼저 숟가락을 들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성진과 성준이 각각 수저를 맞춰 들었다. 후루룩—, 하는 세 사람의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 맛이 어떤지는 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아이, 진짜. 저기서 어떻게 감탄사가 한 번을 안 나오냐?”
도마가 아까 전과 다르게 볼멘소리를 냈다.
“나오면 약간 면이 상하죠. 진 거 같잖아.”
“그래도 본능이란 게 다 있지 않나? 나는 저렇게는 안 될 거 같은데?”
스텐리스 들통이 도마의 의견에 넌지시 동조했다.
“맞아. 어떻게 이 냄새, 이 온도, 이 습도를 느끼면서도 저렇게 아무런 반응이 없을 수 있어? 이상해! 우리 엄마가 낸 손맛인데!”
희주는 남매가 내는 우중충하고 꽉 막힌 분위기에 마음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미역국에 밥을 말았다. 한 입 크게 푹 떠서 입안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던 그는 김장 김치 줄기 중 가장 커다란 부분을 집어 넣어서 입에 넣고 아삭아삭 소리를 냈다. 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도 먹는 둥 마는 둥 다른 생각을 했고, 성준은 희주가 어떤 상태인지 살피다가 멍한 표정의 성진을 보며 인상을 썼다.
“쟤들 저, 서로 좋아하는 반찬이 하필이면 저렇게 반대편에 놓여 있냐?”
도마가 깊이 탄식했다. 성진의 잡채는 성준의 바로 앞에, 성준의 가지찜은 성진의 바로 앞에서 주인 잘못 만난 값을 톡톡히 치루고 있었다.
“아이, 둘이 설마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저기에다가 대고 내외하는 거예요? 왜, 먹지를 않고, 아니, 그냥 팔을 좀 뻗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거, 먹던지 하지. 저게 다 뭐야아…… 엄마 진짜 속상하시게 정말.”
스텐리스 뜰채가 거의 울먹이다시피 실망을 표했다. 그러자 결국 원목 도마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이이! 호랑말코 같은 녀석들아! 우리 어무이 오늘 오후 반나절을 너희들 먹인다고 음식하셨다! 어?!”
그러나 아무리 야단을 치고 나무라도 남매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희주는 밥을 다 먹고도 허전한지 밥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남매의 밥이 얼마나 남았는지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아이, 저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천불이 날 거야! 으휴우!”
싱크대 가까이로 와서 썼던 주걱을 물에 닦아 밥솥 앞으로 가 앉은 희주는 그제서야 휴——,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압력 밥솥에 있는 버튼을 눌러 뚜껑을 열었다. 그 순간, 성진이 의자를 끌어 당겨 앉다가 성준의 발을 건드렸다. 아이씨…….
“야들아, 이거이 지금 데프콘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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