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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Oct 07. 2024

이렇게 가는구나 다

4장 저녁 식사(8)





“야들아, 이거이 지금 데프콘 3이다.”


스텐리스 들통이 짝 잃은 원앙 인형이 빽빽 울다 뚝 그치는 모양새를 보더니 공포를 감지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서늘한 목소리로 되묻는 성진의 기세가 참으로 날카로웠다. 뭐가, 밥이나 먹어. 성준이 성가신 투로 응했다. 그러자 성진은 그 건방진 바이브에 눈깔이 돌아가고야 말았다. 야! 저 단전 아래 깊은 곳에서 응집 돼 나온 외마디 외침에 성준이 고개를 들었다. 왜? 하는 그의 눈빛에서 그렇게 부르면 어쩔 건데? 하는 도발이 섞여 있었다. 이내 이들 둘은 잠깐 코드를 꽂아 겨우 몇 퍼 올린 폰 배터리와 같이, 몇 술 뜨지도 않은 밥심을 양껏 소비하며 듣도 보도 못한 비아냥과 막말을 쏟아냈다.


“아이, 쟤들이 왜 저럴까? 그만들 해! 어? 얘들아. 얘들아!”


“소용 없어요. 그리고 저쪽이 문제가 아냐. 쩌어어기 저쪽이 더 문제지.”


과도의 말을 따라 시선을 돌린 부엌 물건들은 이젠 밥상을 사이에 놓고 삿대질까지 하는 남매를 두고 여전히 밥솥 앞에 쭈그려 앉아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희주를 발견했다. 미친듯이 몰아 쉬어지는 숨, 벌겋게 달아올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위험을 느낄 정도로 맹렬해진 눈동자, 한 치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혀와 그 혀가 나불거리도록 만드는 입술, 오로지 남매의 것들로만 뿜어져 나오는 것들 사이에서, 희주의 존재가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강원도야, 나 무서워, 무서워서 더는 못 보겠어.”


그때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아… 어떡해 망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지만 알 수가 없었다. 희주가 즉시 일어나서, 이것들아아! 밥 똑바로 안 먹어어!? 하고는 밥상에 밥그릇을 탕! 올려놨으니 말이다. 이제 막 멱살을 잡으려던 남매는 엄마의 포효에 놀라 엉거주춤하게 섰고, 희주는 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입술을 인중으로 한데 모아 다시금 사자후를 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때,


“어? 아니, 아니야. 지금은 으으, 안돼.”


거실 쪽에서 누군가가 자꾸 낑낑거렸다.


“울리면 안돼!”


누가 앓는지도 모르는 희주가 마지막으로 폐부를 활짝 열어 숨을 들이 쉬었을 때, 돼지토끼 알람 시계가 이상한 반주를 깔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돼! 아아! 안돼애! 뛰용뛰용뛰용뛰용 돼지야아 일어나요. 꾸잉꾸잉꾸잉꾸잉 토끼야아 학교가요. 늦잠 꾸러기 싫어. 지각쟁이 더 싫어. 어서어서어서어서 우리 모두 일어나요. 안 그러면 말이지 모두 다 돼지토끼 된다앙! 푱!”


“시방 저것은 또 뭐잉가……?”


넋 나간 빨강이의 말에 알람 시계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동작 설정을 해 둬서 몇 년을 안 울리던 알람이 지금 이 시점에 울려버리는 이유는 뭘까? 저녁 7시 50분인 척 하지만, 실은 정확히 저녁 7시 48분 12초인 채로. 뜬금 없이.


“흑…… 두 번이나 더 남았는데, 나…… 2초 후에 또 울리는데에, 나…….”


그의 우려와 같이 반주는 또 다시 흘러나왔다. 이전 알람까지는 영문을 몰라 얼어 있던 이들도 이제서야 조금씩 상황 판단이 되는지 한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아까 리모컨이 날아가면서 살짝 스친 거 아니야?”


“에이, 그랬으면 스투키도 부딪혀서 상처났지. 리모컨 쟤 아주 정확하게 파랑이만 노렸어.”


“아니, 진짜 이게 다 뭐예요. 저 진짜 여기서 더 하면 선인장 몸통 다 터져버릴 거 같아요. 아아—. 스트레스.”


꾸잉꾸잉. 그게 한 번 나왔나, 두 번 나와서 이번에는 알람 시계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인가. 정확히 어떤지 떠오르지 않을 때 쯤, 발뒷꿈치와 방바닥 구들장이 닿아 내는 진동이 거실 가까이, 아니, 정확히는 돼지토끼 알람 시계가 있는 자리 가까이로 다가왔다. 엄마아! 참으세요! 엄마! 성준의 비명과 같은 말림과 함께 알람 시계의 몸이 번쩍 들렸다. 노래를 해야 하는 시계는 막상 비명을 지를 수가 없었다. 다만 그를 대신해 거실에 살아남은 물건들과 부엌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주었다.


“이렇게 가는구나 다.”


스투키 화분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선인장 몸통을 느끼며 그 순간을 평했다. 생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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