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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Oct 04. 2024

시집살이를 하라고요?

4장 저녁 식사(5)





“그래도 들을래요. 저도 이제 어엿한 이 집의 일원이니까.”


“그냥, 성준이 형 결혼할 때 보태라고 모아뒀던 거, 그거 엄마가 큰아버지 빌려주셨어.”


가죽 소파가 스투키를 안심시키려는 듯 대충 둘러댔다.


“아……. 그래요? 그게 얼마였는데요?”


“1억 3천.”


그러나 가족 사진 액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싶은지 있는 그대로 알려줬다.


“힉!”


“성준 오빠 애기 때부터 붓던 적금이랑 어린이 보험금 받은 거랑, 청약 계약할 때 쓸 몫돈이랑 뭐 이거저거 다.”


“어, 어쩌다가요?”


“거 봐. 들으면 속상하다니까.”


성진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 진짜 미쳤구나? 그걸 어떻게, 어떻게, 그것도 아빠도 모르게! 그 말을 믿었어? 성준이 집을 큰아빠가 왜 해 줘? 어? 답답한 속을 터트리며 성진이 끝도 없이 퍼붓자, 성준이 대응했다. 엄마한테 그러지마! 다 나 위해서 그러신 거잖아! 누나가 엄마 마음을 뭘 알아? 그에 스투키 화분이 꿍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이—, 그래두요. 저건 아니잖아요. 그 돈 있었으면, 신혼집 평수가 달라질 텐데에…… 힝.”


“그래도 성준이 형이 능력도 있고, 섬세한대다가, 야무지고 그래서 지금도 사실 부족한 건 아니지 않아?”


소파가 느릿하게 달랬다.


“히잉……, 그래두요. 그래도 아쉽다 이거죠. 오빠 능력 있는 거야, 네. 당연히 알죠. 아니까, 우리 언니가 결혼했겠죠. 근데요……. 그냥, 우리가 더 풍족한 데서 시작하고, 아니면 좀 뒀다가 새로 태어날 아기한테 집중해서 좋은 거 해줄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잖아요. 그 정도 돈이면요.”


“난 화분 너 말이 뭔지는 알겠어. 엄마가 뭐에 넘어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현실 감각이 떨어지셨던 거야. 저건.”


액자가 냉철하게 지적했다.


“그래도 퇴직금을 성준이 형이 가져 가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되실지도 모르는데.”


“자네가 모시랑께. 그름 될 거 아녀. 이참에 합가를 해불면 손주도 봐주실라 허실거고. 겁나게 좋아불지 않것어?”


“이잉, 집도 더 넓은 데로 가불고잉. 허벌나게 좋은 곳으로 가불면 자네가 말한 그 풍족함이 좀 이루어지지 않을랑가?”


청색 홍색 원앙 인형들은, 비록 제상의 영정 사진을 사이에 두고 그 만큼 떨어진 채였지만, 마치 바로 옆에 꼭 붙어 있던 예전처럼 쿵짝에는 무리가 없었다.


“아니, 왜 자꾸 시집살이를 자처하라고 압박을 주세요. 선배님들은?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잖아요. 아니, 어른 모시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아기야, 하나하나 세상에 대해 알려주고 먹이고 입혀 키워 나가면 된다지만, 어른은, 특히 시어른을 모시는 일은, 나도 성인인데, 늘 부족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위치라고요!”


“아야, 너, 너가 이 집 들어와 살어보니 그렇든? 왜 당허지도 않은 일을 가지구 지금 이 하늘 같은 슨배 앞에서 고함을 질러 싸아? 너 나가 우습냐아? 안 그러믄 우리 서방님이 우스워?”


“이잉, 부인, 너무 그러덜 말게. 저 아가가 아직 뭘 몰르니께 저러제. 안즉 으른 무서븐 줄도 몰르는 하룻 강어지랑께. 저런 애들은 얼르구 달래야 허는 거여.”


“힝…… 죄송해요. 근데 두 분이 말씀하시는 합가는 납득할 수가 없어요.”


“오메? 저거시 은그은허게 사람 꼭지 돌게 해부는 구마잉.”


“에이, 빨강아. 너 왜 그래. 애기 한테 너무 그러지마. 쟤가 아무리 우리랑 부대꼈다고 해도, 형수 편인 거야 당연하지이—.”


“아니, 테레비 너도 허구 헌 날 너가 틀어서 다 봤잖여. 나 진짜 요즘 것들 허는 꼴이 우스버서 그래. 아아주 어릴 쩍부터 학원이며, 학교며, 뭐며, 돈 먹는 귀신으로 자라다가 취업해가꼬 몇 년 있다가 결혼헌다고 또 돈 달래, 집 해달라고 또 돈 달래, 야. 너 그 1억 3천 그거. 그거 너들이 엄마헌테 맡겨 놨냐? 야. 그 돈이 줄라고 만든 돈이기로서니 너들이 그 돈 한 푼이라도 보태라도 봐써? 이건 뭐 순 날강도 도둑놈들도 아니고, 자식 가진 죄인이라고 암만 허드래도 정도와 경우가 있어부러야지. 너 아까 엄마 신발 버려지는 거 봤냐? 안 봤냐? 밑창 다 떨쳐분 거 봤어? 안 봤어? 그렇게 해가꼬 돈 다 모아서 좋은 곳 들어가라고 투자 좀 해본다고 어째 저째 하다 날린 것을 가지고. 야. 고렇게 밖에 말을 못허것냐. 어?”


“힝…… 근데 그걸 왜 자식도 아닌 며느리가 떠안아야 하냐고요! 억울하게! 왜애!”


마침 성진이 성준을 향해 쏟아부었다. 앞으로 아버지 제사도 맡아야 할 거고, 엄마도 나이 들어 결국 이래저래 봉양의 위치에 있을 거고, 자식이 몇이든 계속 커 갈 텐데 너 그거 다 감당 가능해? 너 잘 생각해. 지금 네가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서 올케가 너랑 살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수도 있으니까. 그랬더니 성준이 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 지연이 그런 애 아니야! 하고 버럭 소릴 질러버렸다.


“그르제. 그른 사람이 아니어불제. 그 쩌번에 봤을 적에 형수 차암 괜찮트만. 울 엄마만 합가혀서 모시고 살믄 되것소. 아니 그릉가? 동상.”


스투키 화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성준은 자존심이 상해 불같이 화를 냈다. 성진은 그런 그에게 별 얘기한 것도 없으니 발작하지 말라며 의도치 않게 더 도발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동안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손에 들기에 약간 무게감 있는 길쭉한 몸통을 가진, 빨간색 고무 전원 버튼이 흉측하게 빠진, 까만색 TV 전용 리모컨이 그를 아는 모두가 한참동안 벙찔 수 밖에 없는 파괴적인 행동을 해버렸다.


“야! 너 미쳤어? 그만 안 둬?”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LED TV, 그 였다.


“야, 하지마. 하지마! 그만 돌려! 그만 돌리라고! 미친, 그만해! 가족들 다 놀라잖아! 야! 너 진짜 이러지마. 어? 그만하라고오! 쫌!”


그리고 그가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리모컨은 그 파괴적인 행위를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돌았나봐. 진짜.”


스투키 화분이 얼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댔다. 리모컨은 아무런 말 없이 스스로 전원 버튼을 작동시키고, 있는 힘껏 채널 움직임 버튼을 눌러대며, 가족들은 물론, 거실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당황시키고 있었다. 그러자 화분이 중얼거린 것처럼, TV채널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화면이 어지럽게 뒤바꼈다.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성진이었다. 그는 잽싸게 일어나 리모컨의 행방을 찾아 그것을 잡아 들었다. 그러나 리모컨은 그런 것까지 염두한 채로 이런 일을 감행한 것인지 성진이 아무리 전원 버튼을 눌러 TV를 멈춰 보려고 해도 꿋꿋하게 전원을 끄지 않았다. 그러자 성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LED TV의 뒤쪽을 살피며 뭐라도 찾아 전원을 꺼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야, 리모컨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그동안 너무 깝쳤어. 어?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다시는 저 원앙 새끼들이 너 까는 거 말리는 척, 중간에 껴들어서 안 긁을게. 어? 한 번만, 아니 이번만 좀 봐주라. 이러다가 나 죽겠어! 진짜! 야, 이러다 나 죽는다고! 살려주라. 어? 제발. 제발! 아악! 형님, 안 돼요. 거기 그거 빼시면 안 된다, 으아악!”


피웅! 하고 새카맣게 꺼진 화면으로 성진 성준 두 남매와 희주의 진 빠진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심각한 표정이던 성준의 입에서 끝내 이런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집에…… 성한 게 하나도 없네……. 엄마. 나 지연이랑 엄마 모실 수 있는지 한 번 진지하게 얘기 좀 해볼게요. 합가 생각해봐요. 우리. 하는 소리였다. 그러자 리모컨이 킥킥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합가 하면, 우린 다 죽을 거야. 그치?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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