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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Sep 20. 2024

새콤달콤 티니핑 전사

2장 대청소(5)






그때 희주가 성진을 불렀다. 성진은 대답도 않고 슬리퍼를 벗어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왜? 주변을 보니 희주가 요리할 재료를 모두 손질해 여기저기 올려 둔 것이 보였다. 어어, 나 김치 좀 꺼내 줘라. 작년 김장 김치. 희주는 그제서야 성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곤 자신이 요즘 손목이며 어깨며 안 아픈 곳이 없다는 소리를 덧붙였다. 성진은 그러면서 무슨 음식이야, 음식은. 누가 보면 무슨 잔치라도 여는 줄 알겠네. 하고 투덜거렸다. 성진은 부엌 옆에 딸린 다용도실로 들어가 김치 냉장고 앞에 섰다. 그런 후 소분하는데 쓰려고 들고 온 작은 김치통을 한참 들여다보면서 서 있었다. 반질하게 반투명해야 할 김치통이 누렇게 변해 수세미에 긁힌 흠집이 잔뜩이였다. 성진은 다시 희주에게로 달려갔다. 엄마, 나 이거 말고 다른 거 줘. 희주가 성진을 슥 쳐다봤다. 이거는 이제 좀 버려. 너무 지저분해 보이잖아. 음식 맛 다 떨어지게. 그 순간 희주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야! 그게 지금 얼마나 쓸 데가 많은 통인데, 버리라 마라야! 김치 좀 담아서 오랬더니 쓸 데 없는 소리나 하고 있어! 성진은 지지 않고, 아니, 이 기스며 색깔 누래진 것 좀 봐. 누가 이런 걸 아직까지 써어! 김치통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그가 소리치자, 희주는 성진의 손에서 통을 탁! 하고 빼앗아 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하기 싫으면 하지마! 이렇게 딱 두 포기 맞춤으로 들어가는 김치통 찾는 게 세상 어디 쉬운 줄 알아? 너는 그런 물건 없어? 살림 하다가 손에 익은 물건도 막 그냥 함부로 다 갖다버리고 그러니? 너는? 성진은 그거랑 이건 다른 거라며,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다며, 항변하고서 희주의 손에서 다시 김치통을 빼앗아 들었다. 그는 구시렁대면서도 다시 다용도실로 들어가 김치냉장고 문을 열었다. 익숙한 액젓내가 나는 김장 김치통과 함께 온갖 장아찌 반찬이 군데군데 야무지게 들어 앉아 있었다. 성진은 소분할 통에 미리 있던 비닐 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서 김장 김치통 하나를 열어 보았다. 보기만 해도 아삭하게 익은 김치가 성진이 딱 좋아하는 바로 그 김치였다. 당장에라도 밥 한 숟갈을 떠서 이 김치를 올려 먹었으면 좋겠다. 성진은 군침을 삼켰다. 놀랍게도 희주의 말 그대로 김치 두 포기는 완전히 자리를 맡아 둔 것마냥 딱 알맞게 통에 담겼다. 그러자 성진은 아까 괜히 열을 냈나 싶기도 했다.

 

“거 봐라. 엄마 말이 맞지? 넌 아직 살림하려면 한참 멀었어.”


부엌으로 나온 성진을 보고 도마가 말했다. 성진은 식탁 위에 김치통을 올려두고, 희주가 뭘 만들고 있는지 슬쩍 살폈다. 야, 김치 맛있겠지? 고개를 돌린 희주가 갑자기 살갑게 묻자, 괜히 뻘쭘해진 성진은 응. 하고서 얼른 신발장 앞으로 돌아왔다.


“다시 왔다.”


누군가 다급하게 성진의 컴백을 알렸다.


“개안타. 인쟈, 마, 우리는 이대로 다 죽어도 여한이 읎다.”


“맞아요. 아버지 신발들이랑 다 같이 가요. 우리.”


“그러고 보니 우리 그동안 참 잘 살았다. 그렇지?”


마침 성진도 할머니가 신던 신발들에게로 시선을 뒀다.


“자, 이제 우릴 얼른 꺼내서, 저 파란 상자로 집어 넣어.”


왼쪽 벽에 붙어 있던 기능성 단화가 강단있게 말했다. 성진은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손을 들었다. 할머니 신발 모두가 그 순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과연, 과연! 우리 할머니들 중 누가 먼저 작별 인사를 할 것인가? 그러나 이번에도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성진의 손은 희주의 신발이 있는 곳으로 뻗어 닿았다.


“왜 또 우리가 아니라…….”


“아, 혹시 우린 엄마가 아까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엄마가 원래 신던 신발들은 오히려 아무 말도 없으셔서, 그러니까 성진이 언니는 우릴 두고 쟤들을 먼저 처분하려는 게 아닐까요?”


“그네. 긍가부네. 니 가만 보이 참 똑띠하다. 참말로 일리가 있네.”


그들이 한 대화처럼 성진은 발목 끈 한쪽이 너덜거리는 희주의 샌들 한 켤레를 신발장에서 빼냈다. 그런 다음, 그는 러닝화에게 그랬던 거처럼 입구를 둥글게 말아 펴 열어 둔 종량제 봉투 안으로 샌들을 여지없이 집어 던져버렸다.


“맞네.”


“아이, 이래뿌면, 우리는 또 기냥 이래 사는 기가?”


“그러게. 이건 또 이거대로 아쉽네.”


“마음의 준비를 꽤 단단히 했는데. 김이 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좀.”


할머니 신발들은 파란 박스에 시선을 오래 두며 괜히 아쉬운 듯 굴었다. 그 틈에 성진의 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가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누르자, 곧바로 엄마! 하는 귀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진은 폰을 조금 더 멀리 해서 잘 쥐어 잡고 자신의 얼굴이 화면에 잘 나오도록 조정했다. 어어—. 로희야. 아빠랑 재밌게 잘 지내고 있어?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 로희는 한껏 들뜬 말투로 웅! 압빠가 오늘 이거 사쥬따! 하고 자랑을 시작했다. 뭔데? 성진의 웃음기 담긴 말투에 로희가 새로 산 핑크색 무언가를 카메라 가까이로 들이밀며 소리쳤다. 새콤달콤 하츄핑! 옙뿌지? 성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빠가? 하는 되물음 속에서 상당한 냉기가 스며나오자, 로희는 기가 막히게 그 분위기를 감지해내고 부엌으로 달려가 우영에게로 폰을 넘겨주었다. 어어— 자기야, 정리는 잘 돼 가고 있어? 성진은 말간 얼굴로 자신의 안부를 묻는 눈치 없는 우영에게 짜증이 돋았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그러자 우영은 나 지금 애기 간식 준비하지. 하고서 입고 있는 연보라색 앞치마를 애교스럽게 비췄다. 성진은 그의 장난스러움에 더 열이 올라 미간을 팍 찌푸리며, 아니. 당신 왜 또 애한테 티니핑 사줬냐고. 내가 전에 집에 티니핑은 진짜 많고 사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고 그거 사주는 거 더는 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하며 따졌다. 우영은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성진을 보고도 아니, 뭐, 저건 조그맣잖아. 로희는 되게 좋아해. 하고는 어물쩡 웃어넘기기 시작했다. 하……. 아니, 당신 지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 모르겠어? 도대체 집에 티니핑 인형이랑 장난감이 몇 개니? 족히 오십 개는 더 되는 거 같은데……, 오늘 그걸 또 사 와? 그제서야 우영의 얼굴도 굳기 시작했다. 아니, 애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어차피 지금 한 때 잖아. 그동안 애 원하는 거 좀 들어주겠다는 게,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성진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양손을 허리에 올려두고서 한참을 씩씩거렸다.


“성진이가 고생이 많네. 안 되는 게 없던 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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