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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Sep 21. 2024

엄친딸을 만든 건 나야

2장 대청소(6)






“성진이가 고생이 많네. 안 되는 게 없던 앤데.”


계속 분을 풀지 못해 입술을 꾹 앙다물고 있는 그를 향해 나이키가 말했다.


“그래요? 우린 언니 결혼 후에야 이 집에 들어와서 그런 건 잘 몰랐네요.”


홈쇼핑에서 산 신발이 조심스럽게 묻자, 잠시 침묵하던 나이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진인 어릴 적부터 완벽에 가까운 결과를 얻어내야 직성에 풀리는 아이였어. 한번 정한 목표치에는 아주 칼 같아서 가끔 어른들도 어렵게 여겼지. 그래서 뭘 해도 잘했어. 하다못해 방청소 같은 사소한 일에서도 그 나이 또래와는 확실히 달랐지. 특히 나랑 학교 다닐 땐, 공부도 잘 하는데 교우관계까지 완벽한, 운동, 미술, 음악 할 거 없이 전부 다재다능한, 그야말로 엄친딸이였어. 실제로 동네 아줌마들이 엄마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런 딸을 낳고 키웠냐고 비법 좀 알려달라고 성화할 정도였지. 마침내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도, 거기서도 매 학기 수석에 장학금을 받는 수재로 불릴 때도, 그 어렵다는 임용고시에 한 번에 합격을 하고 곧바로 교사가 됐을 때도, 정말로 원하는 건 다 이루는 최고였는데……, 지금은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지금이 왜요?”


“사소한 거 하나도 뜻대로 안 되잖아. 남편이라는 사람이 멋대로 사주지 말라는 장난감을 또 사줬어. 옆에서 그렇게 도움 안 되게 굴면 얼마나 스트레슨 줄 알어?”


“아…….”


“그러니까. 너희는 나처럼은 못한다 쳐도 괜히 울고 짜지 좀 마. 그냥 성진이가 하자는대로 순순히 좀 따라. 그게 맞으니까.”


나이키가 말을 마치자 성진이 다용도실에서 걸레 한 장을 들고 나왔다.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그는 제상의 신발이 있었던 빈자리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그 위 칸에 있는 희주의 신발도 정리할 모양새를 보였다. 걸레질을 하는 동시에 희주가 신기 힘들다고 여긴 신발들만 골라낸 성진은 그것들을 거칠게 타일 바닥으로 툭툭 밀어 떨어뜨렸다. 그러다가 앞 코가 제법 예쁘게 뚫린 까만 스틸레토 구두와 같이 쓸 만한 신발이 있으면 할머니 신발들이 모여 있는 네 번째 칸으로 이동시켰다. 할머니 신발들은 갑작스러운 합가에 얼떨떨한 기색을 보이다가도, 이내 희주의 신발들을 반갑게 맞아주기로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성진은 겨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목소리로, 어라? 했다. 모두가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때 사건이 바로 일어났다. 성진이 갑자기 네 번째 칸에 있던 모든 신발들을 뒷쪽 벽으로 밀어붙여버리더니 앞으로 흘러내려온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기며 신발들을 고누어 보기 시작했다.


“이 백 사십.”


기능성 단화가 자신의 사이즈를 나지막히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성진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이제서야 알아냈다는 듯이, 뭐야? 엄마 발이 할머니 발보다 작잖아? 하고서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할머니 신발들은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그의 기세에 놀라 완전히 굳었다. 두 사람의 발 사이즈는 다르다. 그 사실인 즉, 굳이 할머니가 신던 신발을 여기 이 자리에 둘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엄마가 신겠다고 직접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성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필요하다면 새로 사드리면 된다는 계산까지 끝낸 그는 바로 가차 없이 손을 뻗기 시작했다. 맹렬하게 들이닥치는 그의 손을 피할 길 없던 신발들 중 기능성 단화가 첫 타자로 붙잡혔다.


“아, 아우들아! 나 먼저 갈 테니, 조심해서 잘 따라오너라!”


단화가 다급하게 마지막을 전했다. 단 몇 초 내로 무섭게 내쳐진 그를 보며 성진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는 이제 초반에 가졌던 일말의 여지 따윈 훌훌 던져버리고, 모든 것을 깨끗하고 완벽하게 처분해야 할 것 같다는 완전한 확신을 얻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던 나이키가 매우 환호했다.  


“그래! 성진아! 넌 그래야 해! 그래야 너 답지! 잘한다! 잘 해!”


그는 과거의 성진에게서 느끼던 어떠한 쾌감을 다시 전해 받고 있었다.


“저게 미칫나? 남이 죽는 게 글쿠로 재밌나?! 니는!”


흰 샌들이 크게 분개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순번은 필히 자신이 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단단히 각오했다.


“그래! 성지이 니 지금 내도 빨리 죽이삐라. 내 우리 아덜이랑 성님 곁으로 지금 바로 갈끼다! 니……, 으앗!”


대찬 포부가 마저 다 끝나기도 전에 흰 샌들은 성진의 손을 거쳐서 파란 상자 속으로 완전히 꼬라박혔다. 홈쇼핑에서 구입한 단화까지 전부 내던진 성진은 개운하게 손을 털었다. 그리고 다시 걸레 자락을 들고 신발 밑창에 끼어있다가 떨어진 흙먼지, 나뭇잎, 지푸라기 등을 닦았다. 티니핑 4기 주제곡을 가볍게 흥얼거리는 그의 뒷모습이 어린 아이처럼 명랑해보일 지경이였다.  


신발장에 있는 모든 칸을 깨끗히 다 닦아낸 성진은 이제 장 한쪽에 난 우산꽂이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뒤집혀 꽂힌 빗자루 한자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진은 그것을 꺼내 들고 마무리를 위한 비질을 시작했다. 현관문 앞 틈에 낀 먼지까지 꼼꼼하게 쓸어 모은 그는 이제 쓰레받이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내려 신발장의 가장 맨 아래 칸, 빨간 플라스틱 쓰레받이 옆에 가만히 놓여 있는 나이키를 다시 본 순간, 그는 단 0.4초의 망설임을 끝으로 결심했다.


그것이 나이키 에어포스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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