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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고 정의로운, '여신님이 보고 계셔'

보고 있나, 여전히 과거의 빻은 것을 고집하는 공연 관계자들아!

by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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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이 보고 계셔(이하 여보셔)가 돌아왔다! 인민군과 국군이 무인도에 갇히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는 이 공연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을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이런 주제와 아름다운 넘버들이 합쳐져 여보셔는 초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는 여보셔가 스테디셀러가 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 글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변한 것에 대한 칭찬을 하고 싶어서다. 최근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페미니즘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연극, 뮤지컬계도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연극에서 미투가 두 번이나 터졌다는 점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는지도 모른다. 젠더 프리 공연이 이런 변화의 가장 대표적인 예고, 여성 혐오적인 내용을 바꾸는 경우도 늘어났다. 특히 내용 변화에 있어서는 관객들의 요구가 거셌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는 여보셔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된 대표적 대사는 다음과 같았다.


'엄청 예쁘고, 엄청 착하고... 아무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시지.'

(*2014년 프레스콜 영상 기준, 2017년 봤던 공연에도 이러한 내용의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슴은 크시려나...'


두 대사 모두, 순호를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인 여신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온다. 전자는 여신님을 순호에게 묘사할 때, 그리고 후자는 동현(인민군)이 여신님에 대해서 상상하며 혼잣말을 할 때. 두 대사 모두 아주아주 전형적인,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이다. 예쁘고, 착하며, 가슴도 큰. 그런데 이번에 올라온 공연에선 대사가 달랐다! 전자의 대사는 '엄청 정의롭고, 엄청 똑똑하고...'로 바뀌었고, 후자의 대사는 아예 사라졌다. 특히 후자는, 재미를 더욱 배가할 수 있는 대사 + 장면으로 바뀌면서 공연이 더욱 유쾌해졌다.

아주 아주, 긍정적인 변화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분명히 좋은 공연이지만, 여캐를 다룸에 있어서는 한계가 늘 지적되어왔다. 군인들이 그리워하는 이, 다시 말해 딸, 어머니, 여동생, 짝사랑하는 누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가 과거 여성들의 서사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공연의 시대적 배경이 한국전쟁 때고 주인공이 군인들인 만큼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다뤄지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점이 있는 공연에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주아주, 정말! 기뻐할 일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의 변화를 쌍수 들고 반기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빻은' 부분이 있는 공연들(그리고 아무리 관객들이 요구해도 고집을 피우며 바뀌지 않는 공연들)이 서서히 변화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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