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 말했다시피 이번 <쓰릴 미>를 보면서 수많은 '불호' 포인트를 확인했었는데, 이는 거의 대부분(...) 창작진(연출과 음악감독)으로부터 기인한 것들이었다. 여러 인터뷰에서 연출은 반복적으로 기존 텍스트에 주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연출은 대본을 '성실히' 구현하는 데 아주 '충실'했고, 매우 X2983870 직관적이고 단순한 연출만을 무대에 선보이게 되었다. 이는 뮤지컬에서 아주 중요한 넘버와 넘버의 연주(피아노)에도, 배우들의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뮤지컬 <쓰릴 미> 2019 공식 포스터 (출처 : https://www.dalcompany.co.kr/)
이번 <쓰릴 미>의 연출은 아주, 아주, 일차원적이고 직관적이며 단순하다. 불을 지르는 장면에선 성냥에 불을 붙여 의자 아래 재떨이(?) 같은 곳에다가 붙이도록 하고, 새를 구경하는 장면에선 새소리가 나오고, 대사에서 나오는 '담배 한 갑'을 위해 이전 씬에서 그에게 '나'가 담배를 건네받고 회상씬에서 대사와 함께 꺼내며 쳐다본다.
하지만 관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굳이 성냥 안 써도 빨간색 조명이 나중에 무대를 잔뜩 비추니 불 붙였다는 것쯤은 알 수 있고, '그'가 '멍청하게 새나 보고'라는 대사를 '나'한테 하기 때문에 새를 구경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며, 담배 한 갑을 굳이 받고 그걸 꺼내지 않아도 '나'의 머릿속에서 그려진다는 걸 상상하면 되는 일이다. <쓰릴 미>를 처음 보는 이들에게 친절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연출은 단순해도 너무 단순해서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군더더기가 붙으면서 인물들 간의 팽팽한 기싸움으로 쫀쫀해야 하는 장면들이 늘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지저분해져 버린 무대,
복잡해진 배우의 동선
모든 걸 관객들의 눈앞에 내놓고 보여주려는 연출의 의도는 무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연출은 프레스콜에서 무대가 '나의 기억 속 공간'을 상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쓰릴 미>에서 등장하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다. 공원, 창고, '그'의 방, '나'의 방... 이 모든 걸 '나'가 기억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대에다 소품을 통해 굳이 직관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위에서 말한 공간을 표현하는 소품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무대가 너무 지저분해져 버린 데다 공연의 몰입도를 깨는 데 아주 환상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자면, '방'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무대 양쪽에 문이 달려있는데 그 문을 배우들이 직접 닫아야 한다. 그래서 유치장에 '그'가 들어올 때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문고리를 잡고(...) 직접 닫는다. '경찰들이 그를 내가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라는 대사가 있는 데다가 누가 유치장에 들어갈 때 스스로 문을 닫나.
쓰릴미 2019 프레스콜 '내 안경' 중 일부 캡처. (https://www.youtube.com/watch?v=0EZqIJwxiwQ)
필요 없는 소품들도 꽤 있는데, 전화는 두 사람이 하는데 대체 왜 전화기가 무대 곳곳에 4개나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무대 중앙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대롱대롱 들고 다니면서 전화하는 장면이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솔직히 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또한 긴 직사각형의 네모 박스처럼 '기억 속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데, 네모 박스 안에 피아노+위에 왔다 갔다 할 계단 등이 추가되면서 배우들이 돌아다니게 공간이 좁게 느껴진다.
가장 최악은 나무와 마네킹이다. 무대의 중앙과 사이드에 떡하니 위치한 나무는 가지도 되게 많아서, 배우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부딪히는 데다가 관객들의 시야까지 방해한다. 가뜩이나 단차 안 좋은 공연장에서 공연 보는데 불편해 죽겠는데, 무대에서 소품이 대놓고 방해하다니.
마네킹은 가장 논란이 되었던 소품으로 알고 있는데, 극 개막 초반에는 마네킹이 유괴, 살인사건 피해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런 마네킹의 역할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자 피드백되었고, 필자가 보러 갔을 때는 마네킹이 '나'의 재킷을 거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34년 후의 '나'가 재킷을 입지 않고 가석방 심의에 등장하고, 34년 전을 회상하기 시작할 때 마네킹으로 다가가 걸쳐져 있던 재킷을 벗겨 입는다. 근데 그러다 보니 옷 입는 동안 관객들은 그냥, 옷 입는 걸 계속 지켜봐야만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냥 '나'가 옷을 입을 뿐. 피아노도 그 시간 동안 의미 없이 반주를 뚱땅거린다. 그러고 마네킹의 역할은 끝. 그럴 거면 그냥 마네킹 자체를 없애고 재킷을 다른 곳에다 둔다든지 해서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을 없앴어야 했다.(그리 긴 시간 동안 옷을 입는 데에 연출의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뮤지컬 <쓰릴 미> 프레스콜 '계획' 중 일부 캡처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Td4eb0AypPg)
하지만 이번 <쓰릴 미> 무대의 의미 없는 공간 중 1등은 2층이다. 2층에 올라가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기억 속 공간이라면서 2층은 대체 왜 존재하는지, 2층은 기억 외의 공간인지, 아니면 2층도 기억 안의 공간인 건지. 의문 투성이다. 2층에 올라가는 장면들 간의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각 장면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특별한 이유를 확인할 수가 없다. '그'와 '나'가 같은 방에 있는 상황인데도 '그'가 2층으로 올라가 담배 피우고 내려오고(그래서 1층에 있는 '나'와 서로 위아래로 바라보며 대화한다.), 1층에 전화기 3개나 있는데 '그'와 전화할 때 '나'가 전화하러 올라갔다 온다.
차라리 2층에다가 피아노를 배치하고 피아노에 가는 시선을 최대한 줄였어야 했다. 공연이 끝나고 옆을 지나가던 관객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었는데, 그들은 피아니스트가 들어올 때 배우가 피아노를 치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당연히, 관객들 눈에 아주 잘 보이는 1층 무대 오른쪽에 들어와 자리 잡는데 그렇게 느낄 수밖에.
가장 최악의 잘못,
범죄 행위를 부각해버렸다는 것
하지만 여기까지는 뭐, 그래, 하는 마음으로 넘어갈 수라도 있다. 그렇지만 공연 자체의 가장 큰 단점이자 지금까지 그토록 중화시키기 위해 애썼던, 그리고 이 시기에 돌아오면서 무조건 변화해야만 했던 부분을 오히려 부각해버린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쉽게 말하자면 연출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공연에서 '범죄 행위'를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연출은 ''나'가 34년 만에 꺼내놓은 진실의 무게감과 불편한 진실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답변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공연에서 '그'와 ’나‘가 저지른 범죄가 너무 생생히 잘 나타난다. 위에서 말했듯이 공연 초반에 마네킹이 그런 용도로 쓰였었고, 필자가 보러 갔을 때 마네킹은 피드백되었지만 여전히 무대 앞에서 '그'가 피 묻은 쇠막대기를 들고 꽤 오래 돌아다녔다.(필자가 봤던 16,17 <쓰릴 미>에서는 어두운 2층에서 '그'가 들고 있었다. 밝은 1층에서는 짧게 몇 번 관객들에게 노출되었다가 스카프로 감쌌고 곧 가방 안에다가 넣었다.) 하지만 굳이 관객들에게 피 묻은 쇠막대기를 전시하면서까지 불편하게 만들어야 했을까. 심지어 관련 논란도 엄청나게 뜨거웠던 상황에서. 그런 부분을 축소시켜도 모자랄 판에 더 부각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그리고 관객에게 공연을 선보일 때(특히 범죄를 다루는 공연에서) '거부감'을 최소한으로 가지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전략적으로도' 잘못되었다.
<쓰릴 미> 속 제2의 배우, '피아노'
뮤지컬 <쓰릴 미>의 피아니스트를 여러 번 맡았던 오성민 피아니스트. (출처 : http://m.playdb.co.kr/Magazine/Detail?flag=PP&no=1187)
<쓰릴 미>가 가진 매력 중 하나는 피아노다. 피아노가 다른 악기 하나 없이 혼자 넘버를 모두 이끌어가는 동시에, 사실상 제2의 배우의 역할을 한다. 뮤지컬에서 넘버의 역할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데, <쓰릴 미>에서는 피아노 연주가 그 역할을 다른 공연에 비해서 한 10배쯤 넘게 한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인물들의 감정이 격하게 표현되는 가사 하나하나를 강조하며 피아노를 연주했고, 덕분에 음 하나하나에 인물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심지어 가끔은 피아노가 배우를 끌고 간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쓰릴 미>에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극 개막 초만에는 모든 넘버가 지나치게 느려서 지루했다는 평이 속출했고, 필자가 보러 갔을 땐 느린 속도에 대해서 피드백이 된 상태였지만 이번엔 느려야 할 넘버에서까지 빠른 탓에 배우들이 애절하고 슬픈 감정이 담긴 넘버를 과장을 조금 보태 랩 하듯이 부르고 있었다.
이는 연출과 음악감독 모두의 잘못인데, 두 사람 다 극 개막 이전부터 한국에서 공연되었던 <쓰릴 미>를 본 적이 없으며 잘 모른다고 밝힌 바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음악감독은 오리지널 <쓰릴 미> 악보를 참고해 한국 관객들에게는 모든 넘버가 느리게 느껴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 쓰릴 미가 공연되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관객들에게 익숙한 쓰릴 미의 넘버 속도가 있는 데다가 속도는 차치하더라도 인물의 감정을 피아노가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건 유지해야 <쓰릴 미의 매력>이 살지 않겠는가. 그리고 피드백하는 건 좋지만, 관객들이 말했던 건 넘버의 속도가 느리니 무조건 빨리해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이야기 전개에 맞춰서 속도를 조절하는 건 뮤지컬 넘버의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인물의 감정 표현을 방해하고 있다.
결국 고생하는 건 배우들, 하지만...
연출과 음감이 포인트를 잘못 맞춰 공연을 만들어갈 때, 고생하는 건 결국 배우들이다. 의미 없이 텅 비어버린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밋밋해져 버린 넘버에 감정을 불어넣어야 하니까. 게다가 애초에 <쓰릴 미> 자체가 배우들에게 절대 쉬운 공연이 아니다. 코어 팬들도 아주 두껍고 탄탄하게 있는 데다가 넘버 자체도 어렵고(가사가 무척 헷갈리고 복잡하다.) '그'와 '나' 자체를 연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등장인물들의 생각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범주에 있다.) 그래서인지 여러 인터뷰에서 이번 <쓰릴 미>에 참여한 배우들이 함께 인물과 내용에 대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고, 공연에서도 그런 부분이 느껴지긴 했다.(극 개막 초반에는 배우들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배우들만의 노선이나 해석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노래가 '로딩'이 안되었다거나. 관대 이후 연출이 군더더기를 좀 쳐내고 배우들의 해석을 열어주어서 그런지 필자가 갔을 때는 배우들만의 노선은 보이는 상태였다.)
뮤지컬 <쓰릴 미> 2019 연출, 음악감독, 배우들 (출처 : http://naver.me/FV9C5qfO)
하지만 연출이 전반적으로 공연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바가 단순해서였을까 아니면 연차가 많지 않은 배우들이 주인 탓이었을까, (음, 둘 다 인 것 같다.) 배우들이 '그'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일차원적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A를 표현하고자 할 때 하는 행위나 표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그'가 우월함을 표현하기 위해 팔을 양쪽으로 쫘악 펼치고 고개를 치켜들고 깔보는 눈빛을 보낸다거나 '나'가 '그'를 속이고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그'가 보지 않는 틈에 관객 쪽을 바라보며 사악한 웃음을 짓는다거나. 적당한 선에서 이런 연기가 이어졌다면 괜찮았겠지만 90분 내내 이러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가 도식적으로 느껴져 이 상황에선 저런 표정을 짓겠지, 하면 정말 그런 표정을 짓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배우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연기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공연을 이끌어가는 연기라기보다는 관객들에게 '노선'을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 식'의 연기로 느껴지기도 했다.
(참고. <쓰릴 미>는 배우의 해석에 따라 표현되는 '그'와 '나'가 아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필자가 봤던 배우들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필자가 느낀 아쉬운 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연출도, 넘버도, 배우 때문도 아니다
이번 <쓰릴 미>를 보면서 공연에서 연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에 지나치게 충실하고자 했던 덕분에, 연출도 무대도 넘버도 다 너무 유치하고 단순해져 버렸다. 게다가 연차가 많지 않은 배우들에게 연출의 디렉션 하나하나가 영향을 끼칠 텐데, 과장된 부분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일차원적인 연출이 악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까지는 다음 <쓰릴 미>에서 이번에 나타났던 문제점을 개선하면 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면 필자가 다시 <쓰릴 미>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나 공연을 보는 내내,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나온 뒤 든 생각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쓰릴 미>가 너무도 불편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