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 좋은 쿠로이에 아쉬운 2가지

불편한 처녀귀신과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옥희의 엔딩 서사

by 한성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 공식 포스터. (출처 : 랑 공식 트위터 계정)

1편에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이하 쿠로이)를 보라고 했지만, 사실 쿠로이를 보고 나면 개인에 따라 찝찌-입함을 안고 나올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늘 그렇듯이 후자에 속해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처녀귀신’ 때문이다.

(※글의 특성상 쿠로이의 내용 스포일러가 아주 가득합니다! 주의!※)


남자가 여장하기+처녀귀신 설정.

불편하다, 불편해


처녀귀신은 쿠로이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점이다. 코미디 뮤지컬인 쿠로이에서 웃음 포인트로 넣어놓은 것 중에 가장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고 가장 불편한 지점이다. 처녀귀신을 연기하는 배우는 김남호/김지훈 배우로, 남자 배우다. 즉, 남성이 연기하는 여성. 쿠로이는 이걸 이용해서 웃긴다.

쿠로이에서 요시다와 처녀귀신 역할을 맡은 김지훈배우와 김남호배우. (출처 : 예매페이지 캡처)

남자 배우가 긴 머리 가발을 쓰고 높은 목소리를 낸다. 꽤나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모습과 목소리, 행동 때문에 남자들이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온다. 주인공 해웅도 처녀귀신을 보고 계속 기절한다(...) 아기귀신도 처녀귀신이 막 춤을 촤르르르 추면 아기귀신이 ‘아, 꼴 보기 싫어’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이 공연에서 설정상 9살인 옥희가 귀신들 중 서열 1위라 처녀귀신이 옥희에게 ‘언니’라고 부른다. 옥희가 진짜 귀여운 이미지에 키가 작은 배우인데 그런 배우한테 남자 배우가 언니라고 부르니 모두가 빵! 터진다. 대놓고 넣은 웃음 포인트다.

왼쪽 사진의 서있는 귀신 중 가장 왼쪽이 처녀귀신(김지훈). 오른쪽 사진은 옥희(홍나현)

(왼쪽 사진 출처 : 랑 트위터 공식 계정, 오른쪽 사진 출처 : https://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61838)


처녀귀신의 존재는 관객들한테 작정하고 웃으라고 넣어놓 것이다. 그리고 원래 처녀귀신의 설정이 남자를 만나 성불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계속 살아있는 남자인 해웅에게 달라붙으려고 한다. 급기야(...) 옥희가 해웅과의 대화를 시도하려고 해웅의 물건을 훔치는데, 처녀귀신은 벨트를 풀고 옷을 벗긴다(...) 선관 할아버지가 그걸 보고 말리면서 ‘중요한 걸 훔쳐야지?’ 이러니까, ‘옷이 제일 중요한 거 아냐?’ 하면서 옷을...(말잇못) 근데 이제 이런 행동들을 남자 배우가 남자 배우에게 하니까, 아주 ‘전형적인’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여성스러운 남성, 혹은 여성스러움을 연기하는 남성이 유머 코드로 쓰인 지는 오래됐다. 우리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을 머릿속에 내재하고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딱, 머릿속에만 여장을 하고 비음을 내며 과장된 행동을 했던 남성 개그맨들이 우수수 떠오르지 않는가.

물론 쿠로이에서 처녀귀신을 진짜 여자배우가 했어도 문제가 됐을 수 있다. 여자배우가 남자 배우한테 저 위의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럼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빼자. 뭐 그렇게 엄~청 나게 중요한 인물도 아니지 않은가. 처녀귀신이 전달하는 복선이 있긴 한데 그건 다른 인물들한테 맡기든가. 장군귀신도 있고. 아기귀신도 있고. 안 그래도 너무 길어서 늘어진다는 평도 있지 않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옥희의 엔딩 서사

그래서 옥희는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 바로 마지막, 옥희의 엔딩 서사. 쿠로이의 이야기는 차곡차곡 잘 쌓여서 달려간다. 해웅이와 옥희의 이야기이자 독립군들의 이야기와 귀신들의 이야기가 서로 크로스 되어서 짜잔~하고 극의 마지막에 빰! 하고 해결되는데. 어라? 그래서 옥희는 어떻게 됐어?라는 질문이 관객들에게 남는다.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의 옥희(홍나현). (출처 : 랑 공식 트위터 계정)

쿠로이 저택이 폭발하고 나서, 그 이후로 옥희가 사실상 '제대로' 등장하지를 않는다. 옥희가 어디 간 거지? 질문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서 아, 성불했나? 생각했다. 왜냐면 '오늘이 날이네' 넘버 전까지 옥희의 목소리랑 해웅이 대화를 하는데, 마치 성불해버린 옥희랑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이 날이네' 넘버에서는 성불한 귀신들이랑 옥희가 같이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넘버 가사를 잘 들어보니 옥희가 '오늘 나는 성불할 거야~'라고 한다. 아니, 방금 증서 찾아서 옥희 방금 성불한 거 아니었어???? 그리고 머릿속에 물음표 100개. 파파팍.

여러 번 보고 나서야, 내용과 결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근데 사실 아직도 확신이 없다...) 옥희는 쿠로이 저택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성불은 못한 상태. 성불을 하려면 상해로 가서 해웅이가 증서를 잘 전달해야 한다. 해웅이가 가네코에게 약속을 해서 상해로 가야 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쿠로이 저택이 빵! 하고 폭발한 뒤에, 옥희가 해웅이의 몸속에 빙의되어있다가(이 때는 목도리를 하고 있음) '오늘이 날이네' 넘버를 부르면서 빙의를 푼 뒤(목도리를 이때 푼다!) 증서를 건네러 상해로 같이 건너가는(옥희야, 가자!) 내용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의 옥희(송나영). (출처 : 랑 공식 트위터 계정)

근데 나처럼 여러 번 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면 사실 바람직한 경우는 아니다. 열린 결말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든 경우도 있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제대로 전달에 실패한 상황이다. 나만 이랬다면 차라리 다행인 일이지만 쿠로이의 첫공 이후에 옥희가 어떻게 됐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공연이 본 공연이 아니라 시험삼아 해보는 트라이아웃 공연이라는 거다. 본공 때는 옥희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관객들이 빠르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잘 정리해오자.

여기서는 쿠로이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필자는 쿠로이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 1편에서 말한 대로 쿠로이는 재미도 감동도 서사도 다 잡은 공연이다! 하지만 완벽한 공연이 존재할 수는 없고, 트라이아웃이니까. 곧 돌아온다고 하는 본 공연 때는 잘 수정해서 돌아와 주길 바란다. 가지고 있는 장점이 계속 반짝반짝 빛나려면 불편함을 주는 설정과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엔딩 서사를 꼭꼭 해결해와야 한다.



keyword
이전 22화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쿠로이 저택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