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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Oct 23. 2023

내 선택을 옳게 만들기

불만의 언어는 중독된다. 이상하게 불만의 말을 배설하면 속이 시원해진다. 또다시 불만할 거리는 없는지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속이 시원해짐을 여러 번 느낀 이들은 도통 불만을 끊기가 어렵다. 불만은 곧 뒷담화로 이어진다. 누군가가 나의 불만에 맞장구 쳐주거나 함께 불만을 쏟아내면 어색했던 사이였을지라도 일순간 아군이 되어 정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 중독된 불만은 힘이 커진다.


7만 년 전, 뒷담화하는 능력을 갖춘 사피엔스 덕분에 우리는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뒷담화로 작은 무리에서 큰 무리로의 발전은 물론이고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관계를 발달시키기도 했다. 유발하라리『사피엔스』에 나오는 뒷담화이론이다.


나도 불만을 쏟아내던 때가 있었다. 이건 요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고, 싫은 이유도 어쩜 이리도 다채로울꼬. 그냥 싫은 건데 합리적인 불만의 이유를 찾기도 했다. 불만을 토해내며 회사동료와 대동단결했다. 매일 사직서를 날리고 싶은 마음이 꾹꾹 눌러 담아지는 기이한 힘을 얻기도 했으니 꽤나 불만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불만의 말을 좀 참아보자고 생각한 건 마음에 와닿는 책들을 읽으며 말의 힘과 그 영향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말은 곧 나이고, 내뱉는 말들이 모여 내 인생을 구성한다. 말을 내뱉는 순간 최초의 청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불만을 토로하면 1차적으로 내 귀가 부정적인 언어를 듣게 되고, 2차적으로 뇌에서는 부정적인 생각프로세스가 장착이 된다. 안타까운 건 한번 세팅된 부정적인 생각프로세스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러 노력하여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쭉 가게 된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라는 마음이 들면서 애써 긍정의 말을 찾아보지만 잘 되지 않을 땐 이미 부정적 사고방식이 고착화되어버린 것이다.   


중독성 있는 불만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꽤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의식적으로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가짐과 실천, 그리고 불만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너무 자주 어울리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에게는 그러한 습성을 가진 이들이 자석같이 찰싹 달라붙는다.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불만이 올라 오려할 때는 짧고 가볍게 하거나 침묵의 방법으로 부단히 내 귀와 뇌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함께 맞장구쳐주며 불만하는 사람보다 긍정의 생각과 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이들을 곁에 두려 하고 있다.




얼마 전 단체 캠핑을 다녀왔다. 아이 친구네 가족에게 초대받아 간 여행이었다. 90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함께 하는 캠핑이어서 단톡방이 개설된 후로 쉴 새 없이 매일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 여행 관련 의견과 공지사항 설문 등을 읽고 대응하는 것이 꽤나 버거웠다. 불만이 스멀스멀 목구멍까지 차오르며 여행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돈을 모두 지불한 상태이고, 갯벌체험을 위해 옷이며 도구를 준비해 놓았음은 물론 아이 친구네와 함께 가기로 한 약속이기에 쉽사리 깰 수는 없었다.


비 오는 날씨로 인해 전체 스케줄이 변경되어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제공된 스케줄에 맞게 미리 든든히 먹어 두둑해진 배가 무색해졌다. 내내 기다린 갯벌에서는 천둥번개가 치는 바람에 더 오랜 시간 대기해야 했다. 막상 비가 잦아들어 들어간 갯벌은 소라하나 잡히지 않고, 아이몸이 다 젖어서 나가야만 했다. 젖은 신발과 옷을 입고 식사를 해야했다. 숙소는 6인실이라고만 설명 들었다. 당연히 방문이 따로 있는 줄 알았지만 복층 원룸형이었다. 아이 친구네와 같이 숙소를 사용하기로 했기에 코골이가 걱정되는 나와 신랑은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단체 스케줄 때문에 계속 단톡방을 주시해야 했다. 여유로운 캠핑이 아닌 수학여행 같았다.  


마음에 드는 구석은 하나도 없고 내가 추구하는 여행도 아니었지만 불만의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함께 간 아이친구 엄마 J는 뾰족해진 얼굴로 불만을 슬슬 내뱉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나까지 합세하면 불만의 말에 힘이 붙으면서 최악의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말을 아꼈다.


숙소 한편에 널찍한 테라스가 있고 이국적인 벤치가 있길래 J에게 "어머 여기 벤치 너무 예쁘다. 이거 봐봐."라고 애써 기분을 풀어보려 했지만 반응이 영 좋지 않았다. 농담하듯 양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이거라도 좋아하라고!!" 하며 그렇게라도 우린 애써 웃었다. J로부터 온종일 불만의 냄새가 폴폴 풍겼지만 켤코 흔들리지않았다.


출근하는 데 한 시간이 걸렸으니, 누군가라면 불평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그건 아무 상관없었어요. 물리적인 거리감이 심리적 거리감을 확보해 줬으니까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일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돼 온전히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러다 이번에는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출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니 아침에 좀 더 일을 빨리 정리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또 국립 도서관 정원이 내 앞마당이 되고, 그 정원에 새들이 와서 아침을 깨워요. 여기는 여기대로 또 좋아요. 행복해요. 다음에 다른 곳에 가더라도 저는 행복할 거예요. 이게 제 삶의 태도입니다.

박웅현『책은 도끼다』中


불만을 덜 토해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은 내가 한 선택을 무조건 옳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 우리가 이런 날씨에 갯벌에 들어가 보겠어!", "이렇게 고생하는 여행이 평생 기억에 남는 거야." "엄마는 칠게 좀 더 잡고 싶었는데 옷이 다 젖는 바람에 나가야 돼서 그건 좀 아쉬웠어." 라며 나와 가족들을 다독였다. 아이들에게도 고된 여행이었을지라도 비 맞으며 갯벌에서 게를 잡아봤던 잊지 못할 기억을 훗날 꺼내어 볼 수 있고, 스케줄에 맞추어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여행도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그리 나쁜 여행만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갯벌에서 뻘짓하며 몸을 움직인터라 뜨끈한 칼국수가 아주 꿀맛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함께 불만의 말을 쏟아내지 않으려 애쓴 것이다. 불만을 쏟아냈다면 여행을 주최한 이들의 뒷담화로도 이어졌을게 분명하다. 어찌 됐든 내가 선택한 여행이라면 기분 좋게, 그리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시간을 모두 낭비하는 것인데 낭비되는 인생을 살고 싶진 않다.


이제는 '이건 요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마인드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이 늘 정답이라고. 더 나아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은 나의 정답이 아니니 눈독 들이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꾸준히 일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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