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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Nov 20. 2023

시시하고 하찮은 하루가 감사한 이유

드라마 <연인>에서 시작된 전쟁에 관한 짧은 고찰

요새 가장 핫한 드라마는 지난 주말에 종한 <연인>일 듯싶다. 17세기 조선에서 벌어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정통 시대극에 로맨스가 버무려진 사극이다.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 펼쳐지는 절절한 사랑이야기와 그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백성들, 청나라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가장 큰 시청 묘미는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도대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를 지켜보는 사랑의 서사가 아닐 듯싶다.


여주인공 길 채가 청나라 침략으로 피난길에서 죽을 뻔했을 때 구해준 것도, 청나라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목숨 걸고 지켜준 것도 남주인공 장현이었다. 둘의 인연이 엇갈리며 결국 길채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청나라에서 여자의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버림을 당한다. 정절을 잃었지만 여전히 사랑해 준 것도 장현이었다.


17화에서 나의 드라마 팬심도 폭발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만난 길채와 장현은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진심의 말을 건넨다. 장현은 길채에게 힘겹게 조선에 돌아왔으면서 왜 이혼을 한 건지 물어보며 본인은 어떠한 모습의 길채도 좋다고 말한다. 그저 길채면 된다는 장현의 말에 길채는 묻는다.


"좋아요. 그럼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


드라마 전체 중 이렇게 마음이 시큰거리는 대사는 없었던 것 같다. 이 대사로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이 들썩거렸다고 한다. 둘의 애절한 사랑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장면이어서 그럴까. 장현의 저 대사는 비단 사랑하는 길채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 시절 고통과 괴로움에 힘들었을 모든 환향녀(병자호란 때 오랑캐(청나라) 포로로 끌려간 후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여인)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위로로 느껴졌다.   




 <연인> 폐인이 되어갈 즈음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둘의 사랑이야기가 애잔하고 시큰거림을 주었지만 병자호란 당시 처참했던 시대상을 드라마에서 보게 되어 새삼 전쟁에 대한 생각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포로로 끌려가 발뒷꿈치를 잘리고, 힘겹게 속환되어 조선으로 겨우 돌아온 여인들은 오랑캐에게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이런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고 있자니 내가 태어난 이 시대는 얼마나 평화로운 것인가.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외국인들의 시선에서는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나라로 비치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내가 난민이 되어 피난길에 오른 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인 것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평화의 시기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시선을 조금 틀어보니 지구 반대편에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매우 잔혹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군사력을 갖춘 군인들끼리의 전쟁이라기보다 무고한 일반 시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매일 뉴스란에 보이는 전쟁 피해인명 숫자가 점차 무덤덤해질 정도로 그 숫자가 커지고 있다. 전쟁 시작 후 한 달 만에 일반 시민 1만 명이 사망했고 게다가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이라니 마음이 아프다.  


6살 아들이 전쟁장면을 접하면 왜 전쟁을 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나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전쟁은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만 여기며 살아왔던지라 배경지식이 전무한 나는 종교라는 것을 들먹이며 대충 둘러댔다. 부끄러운 마음이 찾아왔다. 대답을 해주려니 그제야 '왜'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어린아이들까지 잔혹하게 죽여가며 왜 이렇게까지 싸우는 걸까.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들은 왜 이렇게 잔혹한 전쟁을 하는 걸까. 이렇게 하도록 국제사회는 가만 놔두는 걸까. 그렇게 나는 이 두나라에 관심을 가져보자고 마음먹고 쌤킴님이 하시는 세계사 완전정복을 듣고 때아닌 역사 삼매경에 빠지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쌤킴님은 친절하고 훌륭한 역사 스토리텔러이심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으로 유대교를 믿는다. 팔레스타인은 아랍인으로 이슬람교를 믿는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뿌리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그 종교적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본처인 사라와 후손을 낳지 못하게 되자, 여종인 하갈과의 관계에서 아들(이즈마엘)을 낳는다. 헌데 그 후에 사라도 아들(이삭)을 하나 낳게 되면서 아들들 간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형제간 싸움인 셈이다.


아브라함은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신의 계시며 결국 서자인 이즈마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으로 내려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아랍민족을 이루고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그들끼리 잘 살아온 뿌리 깊은 민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인은 기원 후 약 2000년 동안 본래 살던 땅에서 잘 살고 있었다.  


반면 이삭으로 시작되어 뿌리내린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로부터 예수를 죽였다는 이유로 중세시대부터 온갖 박해를 받으며 나라 없이 유랑 생활을 해야만 했다. 성(first name)도 가질 수 없었고, 직업의 제한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과 구분 지을 수 있게 표식을 몸에 붙이고 다녀야만 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서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유대인 대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학살당한 수만 해도 600만 명에 육박했다.  




나라 없이 전 세계 뿔뿔이 흩어져 고단한 삶을 살던 유대인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곳에) 이스라엘을 건국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영국의 2중 분양사기사건이 개입되어 있었다. 즉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중 계약을 한 것인데,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과 대립국이었던 오스만제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오스만제국 지배를 받고 있던 팔레스타인에게 군사력을 지원해줘! 독립국가 만들어줄게! 하고 그들과 협정을 맺었다. 한편 뒤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전쟁 자금이 없다며 '로스차일드'라고 하는 대자본 유대인 가문으로부터 막대한 전쟁자금을 지원받으며 전쟁 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국가 건국을 약속하고 만 것이다.   


전쟁 후 영국은 자본력에 굴복하며 결국 이스라엘 손을 들어주었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 영국의 양아치 짓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이스라엘 건국을 해주는 건 아니고 도와주긴 할게, 근데 팔레스타인과의 문제는 UN(2차 대전 이후 설립된 평화기구) 너희들이 알아서 좀 해봐." 하며 그때부터 발을 쏙 빼버린 것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어디로 간걸까.  


어쨌든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난민이 되어버린 해괴망측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이는 마치 상암동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는 나에게 고구려 주몽 후예가 찾아와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니 당장 나가라며 내쫓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한다. 말이 난민이지 일방적으로 땅을 빼앗긴 것이다. (물론 팔레스타인 조상이 그 당시 헐값에 이스라엘인들에게 땅 일부분을 넘기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서안지구도 그 당시 UN이 개입하여 땅을 반으로 나누라고 한 결과물인 것인데, 그 지역 인구의 5%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절반의 땅을 내어준 매우 불평등한 처사였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난민촌에서 몇 세대가 살아가고 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그야말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들을 감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지중해 바다와 육지 모두 이동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도록 막아두었다. 평화라는 것을 누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하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살아온 그들은 사람답지 못하게 살바엔 뭐라도 해보고 죽어보자는 마음이 있지는 않았을는지.


팔레스타인에 외국인이 오면 궁핍한 살림에도 제일 좋은 차를 내어주며 대접을 한다고 한다. 제발 그들의 비참한 삶을 널리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전쟁의 불씨였던 하마스는 테러단체이지만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독립을 꿈꾸는 절박한 임시정부기구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쟁 속에서 살아진 사람들은 전쟁 후유증을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또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을 두려워하며 살아내야 할 그 마음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루빨리 전쟁이 종결되고 그들에게도 느긋한 일상이 찾아오기를. 어린 아이들이  희망를 품어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이제 아이에게 이들 전쟁에 관한 이유에 대해 조금은 설명해 줄 수 있게 된 듯하다. 시간이 흘러 잊혀지는 기억이 아닌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사실로 남을 수 있도록 알게 된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기록해 놓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뼈아픈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함을, 평화로운 세상에 태어난 감사함에 대한 것도 함께 일러줄 것이다.


<연인> 후반부에 온갖 전쟁의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장현이 길채에게 처음 사랑을 싹틔웠던 능군리로 가자며 읊는 대사가 있다.  


"능군리로 갑시다. 이제 우리 거기서 돌덩이 풀떼기처럼 삽시다. 하찮게 시시하게, 우리 둘이."


전쟁을 겪은 고단한 민초들은 돌덩이 풀데기처럼 사는 게 최고의 행복일 테다.

하찮게 시시하게 하루를 보낼 수만 있다면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일 테다.


드라마를 통해 마음 시린 사랑이야기를 재미나게 보고, 우리 조상들이 겪은 전쟁의 아픔도 짐작해 보고 더 나아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어 나름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하찮고 시시한 연속된 매일이지만,

하찮고 시시해도 되는 커다란 이유를 찾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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