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아름다운 장소가 많다.
한강변, 남산, 경복궁, 북촌 한옥마을.
누구나 한 번쯤 가봤을 법한 곳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중 극히 일부만 가보았을 뿐이다.
대부분은 텔레비전 속 장면으로,
혹은 유튜브 영상 속에서 남들이 걸으며 보여주는 화면으로만 접했다.
나는 다리가 불편하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오래 걷는 것은 무리다.
고작 출퇴근길 몇 분을 걸었을 뿐인데도
발가락에는 티눈이 생기고, 발톱이 빠지고, 신발은 쉽게 닳는다.
30분 정도만 걸어도 발바닥에 통증이 밀려오고,
입술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혈색이 가신다.
그 이상은 도전 자체가 어렵다.
걸음은 곧 통증이고, 이동은 곧 소모다.
그래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울의 많은 장소들은 나와는 먼 세계처럼 느껴진다.
마음속에는 그런 곳들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다.
남들이 일상처럼 누리는 풍경들—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직접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는 금방 꺾인다.
내 다리는 언제나 그 욕망을 조용히 가로막는다.
그래서 나는 대신,
유튜브에서 다른 이들이 걸으며 담아낸 영상을 찾아본다.
외국인들이 서울의 거리나 명소를 방문해 감탄하는 모습,
사람들이 산책하며 나누는 평범한 대화들,
그 모든 장면을 나도 모르게 따라 걷듯 바라본다.
영상 속 장면 하나하나를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다.
서울의 밤하늘 아래서 흐르는 한강의 불빛,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인사동의 골목길,
창덕궁 후원의 고요한 연못과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까지.
나는 직접 가지 못하는 그 장소들을 눈으로라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감상은 늘 한계가 뚜렷하다.
아무리 선명한 영상이라도,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시선’을 통해 본 세상일 뿐이다.
현실의 나는, 그곳에 없다.
손에 잡히지 않고, 발로 디딜 수 없고,
심지어 주변 공기의 냄새조차 느낄 수 없는 세계.
그저 바라만 보는 일은, 때로는 더 큰 괴리감을 만든다.
나는 그저 투명한 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을 안고 살아간다.
모든 것이 분명히 보이지만,
그 경계는 단단하고 멀다.
눈앞에 있으면서도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은
언제나 무력감과 함께 찾아온다.
아름다운 것들은 늘 내 주변에 있지만,
그 곁에는 ‘접근할 수 없음’이라는 차가운 문장이 따라붙는다.
그 거리감은 이제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나는 오늘도 익숙한 좌절 속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