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건넨 손끝, 긴 어둠을 깨우다

by 돛이 없는 돛단배


엄마가 해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글을 남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안개처럼 희미하지만, 그날의 상황들은 어쩐지 모르게 마음 깊숙이 박혀 희미하게나마 떠오른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윤곽은 흐릿하지만 그 순간의 분위기만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골집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기울기 시작하면, 흙벽돌로 지어진 작은 방 안은 순식간에 짙은 어둠에 잠겼다. 창호지를 바른 낡은 나무 문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닫히고, 그 틈새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귓가를 스쳤다. 방 안은 깊은 침묵과 함께 묵직한 어둠에 갇히곤 했다.


두 살 무렵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또래 아이들처럼 가볍게 뛰어다니는 대신, 오른발 뒤꿈치를 간신히 들어 올린 채 힘겹게 걸었다. 넓은 마당에서 다른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놀 때, 나는 늘 혼자였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구석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축축한 흙을 장난감 삼아 작은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 작은 흙덩이만이 나의 유일한 말동무였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내게는 그 어떤 변화도 찾아오지 않았다. 가끔씩 우리 집 앞을 지나던 동네 이웃들은 나의 불편한 걸음걸이와 굳게 다문 입술을 보며 "쯧쯧, 우짜면 좋노"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짧은 탄식 속에는 연민과 함께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이 배어 있었다.


부모님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길고 어두운 시간을 힘겹게 견뎌내셨다. 보릿고개가 드리웠던 그 시절,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먹기 버거운 날들이 많았다. 낡은 기와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모습이었고, 가난은 끈덕지게 우리 가족을 짓눌렀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부모님은 어린 나를 혹시나 더 나은 환경의 고아원에라도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생각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두 분의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엄마는 어린 내가 왜 말을 못 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지, 혹시나 치료할 방법은 없는지 절박한 심정으로 병원에 가보기로 결심하셨다. 떨리는 손으로 어린 나를 업고 낯선 먼 길을 나섰다. 낡은 좌석버스는 덜컹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달렸다. 좁은 좌석에 앉아,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등에 깊숙이 기대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숨어 있었다. 버스가 구불구불한 험한 산길을 힘겹게 오를 때마다, 어머니의 몸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작은 떨림조차 고스란히 느껴졌다.


집에서 합천 보건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2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낯선 곳으로 향하는 불안감과 혹시나 하는 희망이 뒤섞인 그 시간은 어머니에게 끝없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낡은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낯선 풍경들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어떤 간절한 기도를 속으로 되뇌셨을까.


합천 보건소의 허름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싸늘하고 매캐한 소독약 냄새가 어린 나의 코끝을 강하게 찔렀다. 낡고 어두운 형광등 아래, 지친 표정의 의사는 초라한 모습의 우리 가족을 그저 무심히 힐끔 바라보더니, 굳게 다문 입술을 열지도 않은 채 어린 나의 가느다란 팔다리를 몇 번 쥐었다 펴는 것으로 짧은 진찰을 끝냈다. 그의 손길은 너무나 간결했고, 그 어떤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치 정해진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짧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뇌성마비인 것 같습니다. 이건... 못 고치는 병입니다."


짧고 차가운 그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부모님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예상치 못한 절망적인 진단에, 두 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굳어진 채로,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그 순간, 두 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그날 이후, 우리 집 안에는 짙은 절망감이 드리운 채 깊은 어둠에 영원히 잠긴 듯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작고 낡은 방 안은 숨소리조차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앙상한 무릎에 불편하게 누워 젖을 빨고 있었다. 낡은 문틈으로 스며든 싸늘한 바람이 방 안을 조용히 서성였고, 희미한 햇빛조차 감돌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때, 어머니는 나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젖을 빨던 어린 나는 어머니의 얼굴 위로 흐르는 따뜻한 눈물을 느꼈다. 어쩌면 엄마의 슬픔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걸까. 나도 그 순간, 작은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라 소리 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작은 손을 뻗어 어머니의 축축한 뺨을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작은 손길에 순간 숨을 멈추셨다.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듯,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작고 여린 아이의 모습에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따뜻했던 아이의 손끝에 닿은 눈물은 금세 식어 차갑게 느껴졌지만, 그 작은 행동은 어머니의 가슴에 깊은 파동을 일으켰다. 어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날, 어머니의 깊은 슬픔과 절망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가 그저 겉모습만 불편할 뿐,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셨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작은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던 그 순간, 엄마는 내 안에 살아있는 또렷한 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엄마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기로,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나를 손수 키우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그 작은 눈물의 교감은,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드리웠던 긴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동네 친구들은 나의 어색하고 더딘 몸짓을 아무렇지 않게 봐주었고, 스스럼없이 같이 어울려 놀아주었다. 세 살, 네 살이 되면서 비록 남들처럼 빠르게 뛰어다니지는 못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냇가나 야트막한 산속을 따라다니며 노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친구들이 축구를 하거나, 오징어 게임을 하고, 구슬치기를 할 때면, 나는 한쪽 볕이 잘 드는 흙바닥에 앉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만화 영화에 나오는 로봇이나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흉내 내어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학교까지 2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엄마는 1학년 내내 매일 나를 업어서 등하교를 시키셨다. 매번 엄마의 등에 업혀 학교를 오가는 것이 죄송했던 나는, 어느 날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겠다고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고, 그렇게 나는 느리지만 조금씩, 한 걸음씩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나의 나이는 겨우 세 살이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두 살 때 어머니가 나를 업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고, 그때 나 역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희미하지만 강렬했던 감각만은 지금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울지 말라고 가만히 내밀었던 작고 따뜻한 나의 손이, 길고 어두웠던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밀어주었던 작은 용기의 시작이었음을, 이제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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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때의 일이지만, 그날의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축축하고 어두웠던 그 방의 공기, 엄마의 품에 안겨 느꼈던 따뜻함, 그리고 뺨에 닿았던 부드러운 손의 감촉까지. 그 모든 것이 마치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돌이 지나고, 또 반년이 훌쩍 넘도록 나는 혼자서는 앉지도, 걷지도 못했다. 옹알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엄마 아빠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마치 무거운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처럼,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절망이 가득했을 것이다. 이웃들의 걱정 섞인 말들은 때로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부모님의 가슴에 꽂혔을 테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얼굴에는 더욱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결국, 부모님은 나를 안고 합천 보건소로 향했다. 스무 킬로미터나 되는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엄마의 숨소리는 얼마나 거칠었을까. 혹시나 하는 마지막 희망을 품었지만, 동시에 깊은 불안감에 휩싸였을 그날의 엄마 마음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보건소 의사의 차가운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생김새는 문제가 없지만,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는 엄마 아빠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는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엄마는 밤마다 나를 안고 흐느꼈고, 그 눈물은 고스란히 나의 작은 몸에 스며들었다.


어느 날, 엄마는 평소처럼 나를 무릎에 눕히고 젖을 물렸다. 엄마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젖을 먹는 내 뺨에도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젖을 빨던 나는 문득 손을 들어 엄마의 눈가를 더듬었다. 작고 여린 나의 손가락이 엄마의 뺨에 닿았을 때, 엄마는 숨을 멈춘 듯했다. 나는 그때, 엄마의 슬픔을 어렴풋이 느꼈다. 비록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엄마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위로하고 싶었다는 것을.


그 순간, 엄마의 어두웠던 눈빛에 아주 작은 불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엄마의 마음에 한 줄기 희망이 찾아온 것이다. 그날 저녁,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그날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여전한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아빠는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바보는 아닌 것 같아. 아니, 오히려 똑똑한 아이일지도 몰라.” 아빠의 그 한마디는 엄마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우리 가족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밤, 부모님은 밤늦도록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느린 성장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고 지지하겠다는 굳은 다짐까지. 그들의 목소리에는 헌신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엄마 아빠의 헌신과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조금씩 세상을 배워나갔다. 동네 친구들은 나의 불편한 몸짓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늘 함께 어울려 놀았다. 뛰어다니는 대신 흙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신기해했고, 내가 그린 로봇 그림은 늘 인기 만점이었다.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뒷산으로 뛰어놀러 갈 때도 친구들은 항상 나를 챙겨주었다. 그들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나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즐길 수 있었다.


힘들게 한 걸음씩 내딛고, 어눌한 발음으로 엄마 아빠를 불렀을 때, 그들의 눈에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의 작은 성취들은 부모님에게 큰 행복이었고, 나에게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


세 살, 아직 세상의 모든 것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 순간의 따뜻함과 엄마의 놀란 표정, 그리고 그때 내 마음속에 피어났던 작고 뭉클한 감정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것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둡고 불안했던 그 시절, 그 작은 손길은 우리 가족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했고, 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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