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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pr 22. 2024

살아온 만큼, 더

<독백> - 산울림

누가 말했더라. 어린이의 삶이 생(生)을 배우는 여정이라면 어른의 삶은 죽음을 배우는 여정이라고.


생의 절반 즈음  왔음을 깨달은 다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살아온 만큼 더 살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인생이 참 짧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조차 내가 남은 삶을 기대 수명 대로 살았을 때의 얘기다. 각종 사건사고로 죽음의 비릿한 냄새를 자주 맡았던 나는, 며칠 후에 있을 작은 수술에도 '설마...' 하는 걱정을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렵진 않다. 내게 죽음은 영원히 자는 잠일뿐이다. 꿈 없는 잠, 고통 없는 잠, 깨지 않는 잠.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 지금 죽어도 여한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기에 지금 당장 죽음의 신이 찾아와 날 데려간다 해도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날 자신이 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

나는 헤어짐이 두렵다.


나 혼자 눈 감는 건 두렵지 않으나 헤어짐이, 헤어짐이 서러워

쓸쓸한 비라도 내리게 되면 금방 울어버리겠네

- <독백>, 산울림


매일 아침 두 딸이 손 꼬옥 잡고 등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어진다. '죽는 순간에 웃으며 세상을 떠나겠다'나와약속을. 이 아이들과 헤어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독백>의 마지막 가사처럼,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된다. 


몇 년 전, 내 인생의 OST 목록을 선정했을 때, 당당히 1번 트랙을 차지한 노래 <독백>. 노래방에서 부르면 분위기 다운시키기 딱 좋은 노래라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진 않지만, 헤어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서러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노래방에 데려가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마지막 두줄을 부를 땐 눈물을 참아야 할 것이다.


(가사)

어두운 거리를 나 홀로 걷다가 밤하늘 바라보았소

어제처럼 별이 하얗게 빛나고 달도 밝은데

오늘은 그 어느 누가 태어나고 어느 누가 잠들었소

거리에 나무들 바라보아도 아무 말도 하질 않네


어둠이 개이고 아침이 오면 눈부신 햇살이 머리를 비추고

해맑은 웃음과 활기찬 걸음이 거리를 가득 메우리

하지만 밤이 다시 찾아오면 노을 속에 뿔뿔이 흩어지고

하릴없이 이리저리 헤매다 나 홀로 되어 남으리


야윈 어깨너머로 무슨 소리 들려 돌아다보니 아무도 없고

차가운 바람만 얼굴을 부딪고 밤이슬 두 눈 적시네

나 혼자 눈 감는 건 두렵지 않으나 헤어짐이 헤어짐이 서러워

쓸쓸한 비라도 내리게 되면 금방 울어 버리겠네

- <독백>,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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