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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ul 03. 2020

그건 니가 덜 피곤해서야

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유

지금이야 하루 5잔 이상 마시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커피 입에 대지 않았었다. 이상하게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잠이 안 와서 그랬다.


그러던 내가 지금처럼 커피를  즐기게 된 데에는 호주에서 만난 그 의 역할이 컸으니, 아이스커피의 달콤 쌉싸름한 맛심장 적셔 내 몸에 차가운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 때면 가끔 그 사람 생각이 난다. 오늘처럼...




내 나이 서른 하나, 워킹홀리데이 막차를 타고 호주로 떠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한 긍정 마인드로 무장한 나는, 어학원 3개월이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어학원 등록부터 했다. 3개월 동안 빡시게 영어공부를 하고 나머지 9개월 동안은 오지 잡(호주 현지인들과 일하는 일자리. 시급이 한인 잡에 비해 훨씬 높)을 얻어 돈과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12년의 정규 교육과정 동안 입에 붙지 않던 영어가 3개월 만에 늘 리가 있나? 불과 한 달 만에 언어장벽이란 게 이런 거구나 느끼며, 호주의 살인적인 물가에 좌절하며, 한국인 사장 밑에서 할 수 있는 일자리라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다행히 시급을 받으며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알바가 많았다. 주로 청소, 주방보조, 데모도(공사장)등 3D 업종이지만, 일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급한 김에 어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시작하는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돈이 됐다.


2011년 당시 환율로 시간당 15,000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인 사장이 돈을 몇 퍼센트 떼고 주는지 얼핏 들은 나로서는 (당시 호주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청소를 하면서 시급 15,000원을 벌 수 있다는 게 안드로메다 이야기처럼 다가왔고, 호주와 우리나라의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공부하게 됐다. 결론은 시스템! 그렇게, 자연스레 정치와 사회, 역사에 눈을 뜨 됐다.


이야기가 정치,사회,역사로 빠지면 너무 길어질 거 같아 오늘의 주제로 돌아오자면, 커피 마시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도 청소 알바 덕분이다. 돈 버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주말에 할 수 있는 알바를 구하게 됐고, 운명처럼 '사연 많은 아저씨'를 만다. 워낙 짧은 만남이라 이름을 칭하기도 그렇지만, 일단 주말 학교 청소 사장님(이라 쓰고 아저씨라 부른다)으로 해두자.


아저씨는 전형적인 '사람은 좋으나 일에는 타협이 없는' 타입이셨다. 잠시  때면 자기살아온 한많은 인생사를 얘기하며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가 되셨다가도 일할 때는 바로 욕쟁이 할배로 돌변했다.


지킬 앤 하이드 중 어느 게 진짜 아저씨 모습일까 궁금해하며 눈치 보던 어느 날.

쉬는 시간을 틈타 인자해진 아저씨가 말했다.

"힘들지?믹스 커피나 한잔해. 담배도 한대 피고.."

난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담배는 안 피우고요. 커피는 마시면 잠이 안 와요"


이어아저씨의 명대사가 날 커피 마니아로 만들었으니 인생은 아이러니.


"니가 커피를 마시고 잠이 안 오는 건 말이지...

덜. 피. 곤. 해. 서. 야"


이런 상황후덜덜이라고 하나? 생각의 패러다임을 이렇게 바꾸다니! 아저씨를 믿어보기로 했다.

"하하. 진짜 그런 건가요. 한잔 주세요. 아저씨 말이 맞는지 확인해볼게요"



아저씨 말이 맞았다. 그날, 커피를 마셨는데도 잠이 잘 왔다.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한잔, 두 잔 양을 늘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난 지금도 커피 맛을 모르고 살았겠지?


내가 하고픈 말 이거다.

할까, 말까 하면 일단 해보자는 거다. 그래야 그게 뭔지, 그어떤 느낌인지 안다.


내가 캠핑카에 살까 말까 했을 때, '에이, 뭐 있겠어?' 하고 말았다면 난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단언컨대 지금보다는 재미없는 삶을 살았 것이다.




가능한 다양한 경험을, 가능한 빠른 나이에 해보자. 인생은 한번뿐이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의 끝에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은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것만큼 큰 비극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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