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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ul 01. 2020

어차피 너나 나나

출근길, 달팽이를 만나다

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날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등하굣길 주변 마실 나온 달팽이  지켜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징그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달팽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날씨가 좋으면 여행 가고 싶은 날이라며 밖으로 나가는데 달팽이들은 햇볕 쨍쨍한 날에는 보이지도 않다가 비 오는 날만 되면 여행을 가네? 의아해하면서 달팽이 옆에 앉아 그들을 관찰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비 오는 날에도 달팽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난개발 때문인지, 그즈음부터 갑자기 많아진 차 때문인지,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알 길 없으나, 비 오는 날의 기쁨이 하나 사라졌다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그러고 보니 그땐 여름이 되면 매미 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매미 소리도 안 들린다.

 출근길 우연히 길에서 만난 달팽이


비 오는 날의 출근길, 우연히 발견한 달팽이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얼마 만에 보는 달팽이인가! 그때랑 달라진 게 있다면 달팽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어렸을 땐, 달팽이를 보면 마냥 신기했다. 몸을 움츠렸다 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눈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제 앞길을 찾던 모습도, 잠시 쉴 땐 등 위에 얹은 집 안으로 들어가 쉬던 여유도.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아마도 나도 내 소유의 집을 갖고 싶다고 느꼈던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집 한 채 가져보겠다고 평생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 녀석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살 집은 갖고 태어났으니.'


오늘은 요즘의 내 삶이 달팽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내 집은 탈착이 가능하지만, 달팽이는 집이 태어날 때부터 장착되는 기본 옵션이라 탈착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




아스팔트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달팽이를 수풀로 옮겨주려다 말았다. 달팽이에게서 '자유'를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달팽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달팽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테니. 패닉의 [달팽이]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가는 길인 줄 누가 알겠는가.

 

최소한 이 곳은 사람도 많지 않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니 네 갈 길 네 마음대로 가려무나.

어차피 너나 나나, 지구라는 별 여행하다 가려고 여기 온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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