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날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등하굣길주변에 마실 나온 달팽이 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징그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달팽이가 많았다. 사람들은 날씨가 좋으면 여행 가고 싶은 날이라며 밖으로 나가는데 달팽이들은 햇볕 쨍쨍한 날에는 보이지도 않다가 비 오는 날만 되면 여행을 가네? 의아해하면서 달팽이 옆에 앉아 그들을 관찰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비 오는 날에도 달팽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난개발 때문인지, 그즈음부터 갑자기 많아진 차 때문인지,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알 길 없으나, 비 오는 날의 기쁨이 하나 사라졌다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그러고 보니 그땐 여름이 되면 매미 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매미 소리도 안 들린다.
출근길 우연히 길에서 만난 달팽이
비 오는 날의 출근길, 우연히 발견한 달팽이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갔다. 얼마 만에 보는 달팽이인가! 그때랑 달라진 게 있다면 달팽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어렸을 땐, 달팽이를 보면 마냥 신기했다. 몸을 움츠렸다 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눈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제 앞길을 찾던 모습도, 잠시 쉴 땐 등 위에 얹은 집 안으로 들어가 쉬던 여유도.
한 때는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아마도 나도 내 소유의 집을 갖고 싶다고 느꼈던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집 한 채 가져보겠다고 평생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이 녀석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살 집은 갖고 태어났으니.'
오늘은 요즘의 내 삶이 달팽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내 집은 탈착이 가능하지만, 달팽이는 집이 태어날 때부터 장착되는 기본 옵션이라 탈착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
아스팔트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달팽이를 수풀로 옮겨주려다 말았다. 달팽이에게서 '자유'를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달팽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달팽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 테니. 패닉의 [달팽이] 노래 가사처럼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가는 길인 줄 누가 알겠는가.
최소한 이 곳은 사람도 많지 않고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니 네 갈 길 네 마음대로 가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