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덤으로 얻고싶습니다.
내 몸과 마음에는 '성장'의 태도가 배어 있다.
내가 가진 것들 중 애증이 모두 느껴지는 것을 뽑으라면 이 성장의 태도를 지나칠 수 없다.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이 놈의 '성장'은 직설적으로 표현되지않고, 스리슬쩍 말 밑에 껴있다. "너 성장해야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성장하려면...~" "성장하는 사람은~"처럼 은근슬쩍 오기 때문에 경계심을 품기도 어렵다. 내 삶에도 그렇게 은근슬쩍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기위해 지낸 대부분의 시간동안 '성장한 나','목표를 이룬 나'를 기다리며 지금은 지나쳐가는 단계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의도적인' 성장끝에 어른이 됐다. 이르러야하는 것들에 깃발을 꽤 많이 꽂고 난 뒤에, 그 뒤에 뭔가 나에게 해방감이 생기거나 색다른 행복이 찾아오거나 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면서 성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다보면 되는거지 이제는 좀 지금 현재에 있는 일들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싶다. 성장은 무언가를 즐기고 몰두해있다보면 이루어져 있는 덤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성장이나 성장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그 뒤에 따라오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답을 찾아나가며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느새 성장해있도록. 스스로 몰입하며 현재를 즐겼을 뿐인데, 그 뒤에 성장이 따라왔을 때, 그 맛은 정말 맛있다! 몇 번 맛본게 참 좋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두개씩 다니고, 대학교에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회사를 두 군데 다녔지만, 내가 정작 과정 중심의 성장을 한 곳은 그냥 다닌 문화센터였다.
첫 직장생활에 적응할 무렵 내가 선배들한테 제일 많이했던 질문은 "퇴근하면 뭐해요?"였다. 입시를 위해 달려왔고, 다음엔 취업을 위해 달려왔는데, '이제 뭘 목표로 하고 달려가지?' 하는 헛헛함에 어쩔줄 몰랐던 나. 가만히 있자니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집 주변 문화센터 수업들을 등록했다. 처음에는 나중에 활용될 지도 모르는 기술들을 저렴하게 배우려는 마음이었다. 어떤 수업에 가든 대체로 나는 막내였고 이미 내 시기를 거친 5-60대 언니들의 느긋함이 있었다. 미싱으로 쿠션이나 방석 같은 소품들을 만드는 '여성 홈 패션' 수업에서는 성질급한 내가 드르륵 잘못 박아버린 바느질을 푸는 데 한참 시간을 쓰는걸 보고, 같은 수강생인 한 어머님이 "푸는데 익숙해져야 재밌게 하지. 재밌게 푸는 법이 있어." 하며 잘못 박은 바느질을 재밌게 푸는 법을 알려주셨다. 수영 수업에서는 한참 속도가 느린 아저씨가 웃으면서 "나는 오늘 꼴뜽 할테니 먼저가~" 하셨다. 요가수업에서는 자세를 더 잘해보려는 내게 선생님께서"오늘 내가 편안한 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자세가 그럴듯 한지 자꾸 거울 볼 필요없어요. 거울을 없애야지."하셨다.
시간이 갈수록 미싱을, 수영을, 요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걸 해서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의도도 사라졌다. 그냥 그 시간을 위해 다녔다. 그 치열하지 않은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게 이 동네에서 첫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갈 쯤 나는 내 몸에 만든 옷을 직접 만들어 입을 수 있게됐고, 기력이 있으면 가끔 접영도 할 수 있게 됐고, 개운하게 요가를 하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잘못한 바느질을 푸는법을 배우면서 무언가 배울 때는 빨리 실패하고 다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를 배웠다. 수영 양보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내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다. 요가를 통해 스스로가 편안한 지점을 찾는 감각을 배웠다. 요이 땅 해서 이뤄낸게 아니라 그 순간들을 충실히 즐기며 한 것들은 그만두면 없어지는 직장과는 다르게, 학교때 취업을 위해 했던 공부와는 다르게 오늘의 내 삶에 남았다.
홈패션 수업의 새학기가 시작된 요즘, 새로 들어오시는 분들께 간혹 예전의 내 모습이 보인다.
치열하게, 잘 하고싶어서 애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