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림 없는 무명의 시간
“요새 누나 생활 루틴좀 알려줘.”
지난 주말, 업무차 지방에서 올라와 며칠 우리 집에 묵었던 동생이 내 시간표를 보내 달란다.
형체는 거의 아저씨인데 내가 가진 좋은 것은 다 따라 하려는 귀여운, 어쩔 수 없는 내 동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내가 만족한다던 백수 일상 루틴이 부러웠단다. 확실히 내 상태가 생활 루틴 덕에 달라졌다.
자기 전엔 홀가분하고, 아침엔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잠을 이기고 일찍 일어나는 날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전에는 뭔가를 이루려고 하루를 보냈다면, 요즘은 지금 같은 하루를 지속하고 싶어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글자로는 말의 순서만 바꾸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체감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다르다.
자기 전 다음날 계획을 세울 때 설레는 기분은 초등학교 방학을 맞아 세우던 동그란 계획표 그릴 때랑 제일 비슷하다. 원래도 방학은 좋은 거지만, 방학에 대한 설렘은 동그란 시계모양 속에 시간표를 그릴 때부터 생생해졌다. 학원 스케줄을 제일 먼저 표시하고, 그다음 방학 숙제로 선택한 줄넘기하기, 관찰 일기 쓰기 같은 걸 할 시간을 표시한 다음 남은 시간에 자유시간을 써넣는 게 전부였지만. 내가 어떤 시간에 뭘 할지 스스로 그리면서 오는 흥분은 초등학생 때의 일인데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매일의 내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다 어떻게 쓸지 스스로 결정하고 분배하는 건 자라면서 해온 다른 계획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초중고 12년에 당연히 가는 걸로 생각했던 대학교 4년. 거기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갔던 대학원 2년. 곧바로 회사를 다닌 5년. 지금 막 계산해 보니 다 합하면 23년이나 되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표현처럼. 그간의 내 시간과 에너지도 나를 통로처럼 그저 스쳐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빈 시간을 남겨두기라도 하면 내가 다른 길로 샐까 걱정이라도 했던 걸까. 나에게 생긴 시간이란 시간에는 전부 그 시기의 목표를 위한 활동들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놓고, 자는 시간을 더 줄이지 못하는 나를 자주 질책했었다.
학교나 회사처럼 내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들어앉은 게 없는 시기.
입시나 취업, 배포나 마감처럼 내가 고심해서 들인 게 아닌데도 내 삶에 한자리 차지하고선 에너지의 대부분을 빨아들이는 목표가 없는 시기. 그래서일까 요즘의 나는 초등학교 때 방학을 맞이하면 세우던 계획과 닮은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을 느낀다.
백수니까 그런가? 하고 생각해 보면, 퇴사했다고 저절로 만족스러운 일상이 꾸려진 건 아니다.
처음에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나는 또 다른 달리기를 위해 잠깐 숨 고르기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계획을 세워 잘 지키지 않으면 이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봐 더 열심히 촘촘하게 계획했고,
샤워하는 시간에도, 지하철 안에서도 무언가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걸 발견하고 좋아하기도 했었다.
잠도 줄여가며 온 힘을 다해 달리던 나를 멈춰 세우는 일 몇 가지가 나에게 왔고.
다행스럽게도 엄청나게 큰 스파크 없이 나를 멈춰 세웠다.
멈춰 선 후에는 곧바로 다시 내달릴만한 연료가 남질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강렬한 목표나 그걸 향한 계획이랄 것 없이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기분대로 지낸 시간들이 있었다.
그때는 하루를 ‘잘 지내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옷을 챙겨 입고 마장시장에 다녀왔고, 갑자기 날씨가 좋거나 갑자기 기분이 나쁘면 산책을 나갔다. 잠이 오면 그때가 몇 시든 잤고, 드라마만 보고 지내기도 했다. 계획 없이 그날 그날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가고 싶은 곳에 갔다.
대신 그것들을 전부 열심히 기록했다.
그 방향성도 원칙도 디폴트값도 없는, 대신 기록만 하며 지낸 시기. 능력만 된다면 이 시기에 진짜 진짜 멋진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데. 나의 능력부족으로 무명인 이 시간 덕분에 정말 소중한 걸 얻었다. 이미 칸이 정해진 곳을 예쁘게 색칠하는 색칠놀이가 아니라 밑그림부터 시작해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다시 그려보는 것 같은 경험.
그때는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깼다. 모든 알람은 삭제해 버리고 잘 시간과 일어날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막 잤다. 일찍도 자보고 늦게도 자보니 같은 시간을 자도 11시쯤 잤을 때 하루의 피로도가 훨씬 덜했다. 11시에 자서 7시간 정도 자면 알람 없이도 개운하게 일어나 졌고, 기분 나쁘게 잠들어도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의 내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다시 잘 시작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일어나는 감각.. 맛있는 디저트보다 훨씬 좋았다.
잠을 잘 못 잔 날 아침에는 허겁지겁 머리 감고 옷 챙겨 입고 뛰어나가는 대신 가만히 한두 시간 누워서 어젯밤에는 왜 잘 못 잤는지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진정한 플렉스란 이런 것일까. 시간을 마음껏 의도한 대로 쓰는 것. 침대 속에서 부비적, 가만히 생각해 보니 꿈에 나온 외계생명체가 사람을 먹는 장면은 어젯밤 자기 전에 본 영화 때문인 게 틀림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자기 전에 본 거나 대화하고 생각한 것들이 꿈에 정말 자주 나왔다.
그걸 알고는 잠자리에 들기 한 시간 전부터는 핸드폰을 방해금지모드로 놓고 어떤 매체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면 바로 내일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짝꿍도 협조하고 있다. 그 시간에는 심오한 얘기를 하지 않기로 해서 대화가 진지해지면 서로의 볼록한 배를 쓰다듬어주며 킬킬댈 수 있는 정도의 얘기를 한다.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이슈가 나와도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려고 하네~~ 내일 의논해 보자고 ^0^”라고 말한다던가. 새벽에 나쁜 꿈을 꾸거나 깨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었고, 아침까지 개운하게 잘 자게 됐다.
여러 날의 대기 끝에 갔던 큰 빌딩의 발병원에서도 못 고친 뻣뻣한 발목이 매일 아침 스트레칭으로 점점 나아졌다. 하다 보니 시원하고 아침에 고요할 때 몸을 움직이며 느끼는 감각이 좋아서 아침 요가를 등록했다. 요가도 이 수업 저 수업 가보다가 아침엔 좀 피가 도는 느낌이 나는 힘쓰는 요가를 했을 때 기분이 더 좋아서 아침에는 아쉬탕가 요가를 하고 있다.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려할 때, 나도 모르게 아침에 뉴스레터에서 본 내용과 연관된 내용을 떠올렸다. 아침에 본 것들을 기억했다가 그것들이 연결되는 일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내고는 요즘 아침시간엔 관심 분야와 관련된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갖고 있다.
출근할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더니 불편하고 점심 입맛이 없어서 아침엔 라떼 한잔으로 여유롭고 가볍게 보낸다. 배고픔도 가시고 기분도 좋아져서 나는 매일 아침 따뜻한 모닝라떼를 마시게 됐다.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할 때 한 번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두 시간은 짧고, 네 시간은 늘어져서 세 시간을 기본으로 한다. 점심 한번, 4시쯤 한번 스위칭하며 산책해 주면 몸이 훨씬 편안했다. 저녁을 4-5시 사이에 먹으니 저녁과 아침이 훨씬 편안했다. 집안일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한 가지씩만 하니 죄책감도 없어지고 집이 깨끗해서 기분이 좋았다. 하루에 30분이면 되었다.
계획 없이 기록만 하고 지낸 시간은 나에게 편안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방식이 뭔지, 내가 보내고 싶은 일상이 뭔지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리 놓인 틀 없이 온전한 상태에서 나에게 좋은 게 뭔지 살피며 만들어진 계획 덕분에 나는 좀 더 큰 자유를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내가 달성했던 목표를 이루면서, 이룬 뒤에 나는 지금처럼 만족했던 적이 있었나?
내가 그간 이루려 했던 목표, 꿈. 그것들을 위한 계획을 다 이루면 지금보다 좋을까?
이 시간 덕분에 이제는 좀 더 이유 있는 의도적인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 지금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변하고, 어쩌면 시간과 에너지의 제약들이 생길 수도 있을 테지만.
영문도 모른 채 내 삶에 그려져 있는 칸. 그 칸을 지우고, 밑그림부터 그리는 감각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밑그림을 가지고 조금씩 수정해 나가면 될 일이다.
✍️ 일상의 루틴을 갖고있나요? 그 루틴은 어디로부터 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