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메신저로 한 장의 사진이 날아왔다. 월차인 아내가 보내온 사진에는 잠자리채를 설피 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분명히 익숙함에 익숙함이 더한 모습인데 낯설었다. 잠자리채와 아들, 따로따로는 봤지 둘이 함께한 모습은 처음이다. 사진 찍은 엄마 여기에 빠진 건 아빠다. 오늘이 처음 경험하는 잠자리채 체험인데 아쉽게도 아빠는 없다.
오전 10시는 지키는 사람의 시간이다. 출근할 사람과 각자의 일터로 떠 날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주인이 시간. 평소에는 경험하지 못하는 평일 오전을 아내는 아이와 함께하고 있다. 집 밖으로 나선 골목에는, 아이의 표현으로는 나바와 잠자리가 엄청 많았고 잠자리 날개 끝이 노란색으로 된 못 보던 녀석도 있다고 했다. 아내의 표현은 '물 반 고기 반'처럼 빈 허공을 휘휘 휘저으면 채 속으로 담길 만큼 잠자리가 풍성하게 많았다고 했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그 길로 문구점에 가서 잠자리채를 구매했단다. 사진은 잠자리를 좇는 모습, 잠자리를 잡는 모습, 잡고 나서 흥분하며 좋아하는 모습이 연달아서 보내왔다.
6살 사내아이는 빨리 배우거나 스스로 잘한다. 충분하고도 남는 체력을 바탕으로 잠자리를 지치게 따라다녀서 잡았을 모습이 그려지니 엷은 미소가 절로 짓는다. 처음과 끝이 확연히 다른 결과를 만드는 나이다. 무에서 유가 되는 모습이 바로바로 보이는 6살 어린이. 처음엔 허공만 휘젓더니 나중에 목적한 곤충을 잘 낚아 챈다. 기특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잡은 녀석들을 다시 놓아주고 왔다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경험에 푹 빠져있다. 땀이 나고 다리 아프고 여러 가지 힘겨움이 있지만 모두 잊고 오로지 잠자리채와 물아일체의 경험을 한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 아빠도 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소리에 흥이 절로 났다.
오래된 흑백 필름을 되감기 해 보면 나와 아버지는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처럼 아삭한 추억이 있다. 내가 지금의 아이의 나이 무렵 과수원에 사과 따기를 했다. 내 주먹보다 크고 머리보다 작은 씨알이 굵은 사과알을 한 광주리 담아왔다. 당시 보았던 사과나무가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솜털 보송보송한 볼살을 비비며 지나던 바람의 느낌과 향긋한 여름의 청량한 기운에 싸인 젊고 다부진 구릿빛 얼굴을 한 젊은 아빠의 어깨 위에 무등을 타고 있는 내 모습이 어떤 표정과 기분이었는지는 생생하다.
이번 주말에 잠자리채로 잡고 싶은 게 생겼다. 이런저런 핑계로 맹숭맹숭 보냈던 아이와 시간을 다르게 보낼 예정이다.
잠자리채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채 한 가득 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