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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xs Oct 19. 2020

한글 배우기

- 다시 오지 않는 기회

6살 남자아이가 한글 배우기를 시작했다. 개인의 역사로 보면 달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걸음만큼이나 위대한 첫걸음이다. 이 순간의 뿌리는 씨앗이 어떤 열매가 될지 누구도 확답하지 못하겠지만 '시작'했다는 점 자체가 고무적이고 감동적이다. 만 4살, 친구들이나 동생들도 다 하는(다 한다고 느껴지는) 한글을 이제야 혹은 이제라도 시작한다는 게 답답했던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된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직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프로스트의 시 속에 사람처럼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나서는 사람의 마음은 비장하고 비장하다. 진공 된 세상에서 공기의 세계로 노출돼 듯 이, 글을 읽고 의미를 되새기는 일을 하지 않던 세상에서 이제는 자유로울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 세계와 다음 세계를 확연히 구분 짓는 '무엇'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언어의 습득은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확장하는 도구 중에 으뜸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기능 중에 하나라서 이것이 몸에 채득 되기 이전의 삶을 기억할 수 없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대게는 생애주기의 초반에 습득한 기능이라서 소중함과 고마움을 다시금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아이를 키우면서 새삼 가치를 다시 느끼게 된다.


또래 아이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은 조급함을 불러왔다. 취학 전 아이를 둔 부모 모두의 필수 과업인데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안달이 났다. 비교는 마음의 불안감을 확장시키는 확성기다. 주변에 누구는 벌써 한글을 읽고 쓰고, 회사 동료의 아이는 한자와 영어까지 척척 하고 심지어는 TV 속에 나오는 아이까지도 비교의 대상이 된다. 나중에 다 한다는 어른들의 말을 그저 말일뿐이고 내 자식은 안된다가 현실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를 성장시키는 방식의 또 다른 면이다. 이제까지 나의 의지와 실행으로 나오는 결과에 익숙하던 삶에서 투입과 결과의 불일치나 큰 간극을 그걸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배운다. 단순한 공식을 대입해서 답을 찾는 얄팍한 기술로 얻는 건 오래가지 않고 소중한 것이 아니다. 조금씩 알아가는 건 시간을 바탕에 둔 적절한 인내(耐)와 인정(認定)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리고 작은 생명체에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해시키고 설득할 때 가장 많은 소비하는 건 인내심이다. 평소 배터리가 1칸 남으면 불안 초초한 것처럼 아이와 대화할 때도 마음속에 인내심은 완충하고 대해야 한다. 1칸 남은 인내심으로 섣불리 접근하면 금세 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바닥난 인내심은 울화로 화학적 변이를 일으킨다. 열 번이면, 백 번이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은 어른인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다. 어둠에서 출구를 모르거 걷는 일이 어디 재촉과 단순한 반복 몇 번으로 가능할까. 줄탁동시(啐啄同時)는 병아리만의 힘도 어미 닭만의 노력으로도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합심하여야 이루어진다. 나는 그렇게 못하면서 아이는 왜 당연히 해야 하는가? 그리고 시도에 대한 인정은 아이가 힘든 과정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잘했고 제대로 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시도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다 큰 어른인 나도 매일 하는 일에서 누군가 인정 비슷한 표현을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너를 믿는다는 신로의 눈 빛, 소소한 격려의 메시지 한 문장에도 에너지를 얻는데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한 발 한 발 딛고 있는 아이에게 넘어졌다고 길이 잘 못 들었다고 혹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더라도 모든 '시도'에는 의미가 있다. 인정하자. 인정받아 마땅한 일이다.  


내가 처음 ㄱ, ㄴ, ㄷ을 쓰던 당시의 내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가'에서 '강'으로 또 '엄'에서 '마'로 영토 확장을 위해서 무수히 많은 성공과 실패의 시간에 함께한 부모의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아이도 지금의 나처럼 어느 순간이 되면 태어날 때부터 한글을 잘했던 사람인양 지내게 될 것이다. 괜찮다. 부모는 원래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니까. 다만 어느 순간 한 번은 지금의 나처럼 부모를 생각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회상하는 것으로 족하다. 


"잘했네, 우리 아기"   

"사랑해요 엄마 아빠" 말이라도 해주면 더 좋고    



#hanxs #한글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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