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이 가득 찬 곳에서 자못 유쾌한 기분이 퍼진다. 우리라 부르는 사람들은 각자의 우리 속에 서로를 가두고자 혈안이 나있다. 삭막한 공간 안에 이따금씩 사무적인 웃음이 번진다. 콘크리트 사람들은 얼굴에 무거운 가면을 두르고 있다. '삶의 무게'와 같은 거추장한 낱말들을 덧붙이며 마지못해 건네는 손.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힌 거친 손은 이미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그런 의미에서 각진 회색 공간은 대합실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대합실. 저마다 다른 행선지를 지니고 잠시 머물고 있는 곳. 우리는 우리를 모두어 우리가 되려 하지만 언제나 우리 안에 남아있는 건 항상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열차가 떠나고 난 뒤 대합실 창가에 비친 홀로 남은 모습. 우리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러나 이미 떠난 기차는 다시 잡을 수 없는 법. 그렇게 점차 작아지는 경적 소리와 함께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각기 멀어지고 있다.
사진: 한 율(코레아트 Coreart)
예의를 갖춘 공손한 경어체. 뚝뚝 끊어지는 낱말들 사이로 알게 모르게 모멸의 기운이 감돈다. 냉기가 버무려진 소음 속에서 각자 추려야 할 소리들을 신중하게 고른다. 분명 같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벼락같은 호통이 면전에 쏟아진다. 매일마다 반복되는 일사불란한 움직임. 갈색 믹스커피 위로 진한 회의감이 번진다. 처음부터 기계와도 같은 삶을 바라고 태어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살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깎였을 뿐이다. 그래서 제값을 받고 살기 위해 황금과도 같은 귀중한 시간을 갈아 돈과 바꾸곤 한다.
시간을 쪼개다 보면 결국 '나'라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다. 자신을 잃게 됨에 따라 함께 소멸할 것들을 가끔 헤아려 본다. '자신감', '자존감', '자기애' 등등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진다. 주말마다 꾸역꾸역 자기개발서를 섭취하며 이를 보충해 본다. 그러나 곰팡이가 슨 현실의 벽을 넘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직사각형의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빛이 쾌쾌한 벽을 절반가량 채우는 시간. 쿰쿰한 공간 속에서 웅크린 몸을 비틀며 희미한 경적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