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스름한 털머위. 털머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고사리과 식물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숲 속으로 향했다. 깊은 숲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조망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고개를 숙여 낮게 자란 식물들을 천천히 둘러본 하루.
같은 식물들이더라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생김새가 다르다. 몇몇 식물들의 잎사귀에는 벌레가 먹은 듯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고요한 공간 속 짙게 깔린 녹음. 인적이 드문 한산한 숲길을 터덜터덜 거닐다, 숨을 들이쉬면 폐부에 진한 초록이 느껴진다. 마음속도 점차 숲의 빛깔로 물들어간다.
풀잎들 사이에 피어난 작은 꽃. 초록색 잎사귀들 사이에 핀 노란 꽃이 유독 두드러졌다. 그래서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들고, 노란색 꽃을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나중에 찾아본 꽃의 이름은 바로 좀씀바귀였다.
좀씀바귀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산과 들의 양지바른 곳이나 숲에서 자라난다. 좀씀바귀의 높이는 8~15cm 정도이다. 줄기가 갈라지면서 땅 위를 기듯이 뻗어 나가고, 각 마디에서 긴 수염뿌리를 내린다. 어쩌면 이름 모를 들꽃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좀씀바귀. 이번 글을 통하여 운이 좋게 꽃의 이름을 새겨본다.
숲에서 종종 마주친 작은 꽃. 별사탕 모양의 흰색 꽃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몸을 굽혀 투박한 풍경 사이에 피어 있는 꽃을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나중에 알게 된 꽃의 이름은 서양등골나물이었다. 서양등골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국 토착종은 아니며 북아메리카 남부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키는 30 ~130cm까지 자라며 윗부분에만 털이 약간 있고, 줄기는 여러 가닥이 모인 형태로 자란다.
아기자기한 생김새와 달리 서양등골나물은 생태계교란 야생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 번 정착하면 뿌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바람에 날리는 씨앗과 강한 발아력으로 급속도로 주변 지역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양지를 비롯한 음지에서도 잘 자라 숲의 내부까지 침투해 자생 식물의 생육 공간을 차지하면서 종 다양성을 현저히 저하시킨다.
서양등골나물은 강력한 확산력과 군집 형성 능력 때문에 토종 식물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한다. 위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제거 작업이 쉽지 않고, 생물다양성 감소 및 생태계 불균형을 초래하여 숲이 보기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러한 실태를 알게 되니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다시 사진을 보니, 찍었을 때의 인상과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채도를 낮추고, 탁한 분위기로 사진을 편집하여 서양등골나물을 조망해 보았다.
탁 트인 능선 위에서 바라본 능선 자락. 구불구불 이어지는 숲의 모습. 이제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이미 귓가에는 사그락사그락 낙엽 밟는 소리가 맴도는 듯하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숲의 모습. 흐르는 계절 따라 변화하는 삶의 모습과도 닮았다.
숲 속에서 보았던 작은 풍경들을 벗어나 큰 형태의 숲을 마주한다. 인적이 드문 고요한 숲에서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때로는 빈 마음을 채워 넣는다. 숲이 선사하는 고요함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오늘도 발걸음을 옮긴다.
오화.
2025년 11월 13일
한 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