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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율 Jan 29. 2022

휴대폰

한 율 단편선

골동품 속에서 (2020), 사진: 한 율

 어느 날, 그는 휴대폰 대리점 문 앞에 걸린 광고문을 눈으로 쓸어내렸다. '최신형 휴대폰 파격 할인!' 그때 그는 잠시 '나는 최신형인가?'라고 스스로 되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늙는 것이 아니라 점차 낡고 있다고 그는 확신하였다. 가늠하기조차 힘든 새로운 것들의 홍수에 휩쓸려 그는 어느새 구형이 되었다. 매일같이 사람들의 파도 속에 섞여 시간이 마모될 건물숲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그의 손에 쥐어지는 건 항상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예전에는 분명 남들과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적당히 복잡한 부품들 중 하나로 세상 속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낡으면 골동품이라도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니, 적적한 기분과 함께 마음속에서 공허함이 꾸물꾸물 일렁거렸다.


 '허무하다... 허무해서 허무하건대, 왜 허무하냐고 묻는다면 애초에 비어있기 때문이리라.' 그러한 빈 공간을 스스로 꺼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자코 입을 닫고 있자니, 좁은 방 안에서 시계가 내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러 퍼졌다. 그 역시도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무언가의 요구에 맞물려 (실은 그러한 요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간을 할애하는 무언가에 몰두해야 했다. 왜냐하면 비어있는 상태와도 같은 순간에 심히 낯선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종종 스마트폰을 켜 시간을 죽일만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가끔 어중간한 복잡함 속에 친구들과 자신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나고 보면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 사람들도 저마다의 흐름 속에 뒤섞여 더욱 빠르게 다가오는 듯하였으나, 어느 순간 말도 없이 떠밀려 사라져 버렸다. 항상 얽매이는 것은 감정이었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말이었다. 까맣게 잊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별안간 친밀하게 다가올 때, 그는 반가움보다 두려움의 감정이 크게 몰려왔다.  그렇게 반복된 밀물과  썰물들 사이에서 그는 문득 자기 손에 쥔 네모난 것과 자신의 삶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도 한때는 최신형이었으나 결국에는 교체될 휴대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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