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다시 피어나는 우리
세상에 잊힌 줄만 알았던 이름이 있다.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기억조차 흐릿해질 무렵.
마치 오월의 대지에서 조용히 피어 나는 새싹처럼, 그 이름은 어느 날 불쑥 내 앞에 찾아왔다.
푸른빛 비에 젖은 긴 머리칼,
세상 모든 따스함을 담은 듯한 커다란 눈동자.
그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우리라는 풍경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몰랐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이 시선 속에서 오갔고,
걷고 또 걸었던 어둠의 길 위에서
여리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그리움은 연민으로, 연민은 다시 핑크빛으로 물들어갔다.
시간은 우리를 겉돌게 했지만,
마음은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허물과 가식이 걷힌 그 빈터 위에 선다.
먼지처럼 쌓인 오래된 감정들을 오늘 내리는 봄비에 씻어내고,
오롯이 진실만을 담을 수 있는 자리에 너와 마주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서로의 빈 가슴을 조용히 껴안으며,
아주 천천히, 그러나 진심으로
다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때의 너야,
너 참 애썼다.
그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채,
그렇게 긴 세월을 마음속에 담아두다니.
그 눈빛, 그 발걸음,
그 고요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시절의 너는 아직 미숙했지만,
진실했고 용감했어.
무심코 흘려보내야 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너는 마음 하나를 지켜냈구나.
나는 너의 그 여린 발걸음을 사랑하고,
말 대신 바라보는 그 시선을 자랑스러워해.
그리고 너는 결국,
언젠가 사랑을 온전히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
그 마음을 간직해 줘서,
나 또한 가족을 지키며 여태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맙고 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