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 시간을 건너 쓰는 편지

14화. 비에 실린 얼굴들

by 하오빛

실비가 내리고 있다.

한여름 한낮, 폭염이 대지를 달구는 시간.

갈증에 지친 듯 활짝 핀 꽃들이 하늘을 향해 목을 빼고 입을 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취해,

머리가 흠뻑 젖어가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이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방 작은 창가에 올라앉곤 했다.

떨어지는 빗줄기에 마음을 실어 노래를 부르던 기억.

이제는 그 노래 대신, 노트 위를 적시는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맡긴다.


오늘 내려지는 이 가느다란 비는

푸석푸석했던 내 마음도 촉촉하게 적셔준다.

힘을 잃었던 가지에 물이 오르듯,

나도 다시금 힘을 얻는다.


하늘을 향해 올린 얼굴에

빗줄기가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그 물방울은 나의 두 볼을 타고 흐르다가,

파랗게 열린 화단 위로 흩어진다.


오늘 내리는 이 비에

그리운 얼굴 하나둘 실어 보내련다.

대지가 품어줄 수 있도록,

길 위에 동반자처럼 언제나 곁에 머물게 하고 싶어진다.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그 빛을 잃고

짙은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오늘은 많은 비가 올 것만 같다.


나는 그 빗속에,

수없이 많은 얼굴을 그리게 될 것 같다.


지금의 나, 그때의 너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때의 너야,


세찬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하늘을 향해 입을 열던 꽃들을 바라보던 너의 맑은 눈을 기억해.

머리카락이 젖고, 옷자락이 무거워지는 것도 잊을 만큼,

그 순간에 빠져 있었던 너였지.


비 오는 날 작은 창가에 올라

빗방울에 마음을 실어 노래를 부르던 너는,

참 따뜻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구나.


메마른 마음도, 지친 몸도

이 작은 실비 하나에 다시 힘을 얻었던 너.

그 감수성과 여린 마음은 지금도 참 소중해.


오늘도 나는 너를 닮고 싶어.

비를 맞으며 그리운 얼굴을 마음에 품고,

세상에 부드럽게 흩뿌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 내리는 이 비 속에서,

우리 함께 많은 얼굴을 그리고,

많은 마음을 품어보자.


고맙고, 사랑스러웠던 그때의 나.


하오빛 라디오 청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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