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은 죄(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고-책리뷰)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김영훈의 과학 산책이라는 칼럼에서 수학자 러셀과 관련된 글을 읽었다. 그는 인생에서 첫 3분의 1을 수학자로, 다시 3분의 1을 철학자로, 나머지 3분의 1은 평화운동가로 지냈던 분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다 가신 분이다.
수학과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바로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을 구입했다. 러셀이 아주 옛날 사람인 줄 알았는데 1970년까지 생존하셨던 분이다.
이 책은 행복을 철학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다.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어떻게 노력하면 되는지 나와 있다. 그러나 노력해도 행복할 수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가난하여 먹고살기도 힘들다면 말이다. 아마 러셀은 그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라고 할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걸까?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자기 잘못이란 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행복은 적극적으로 노력해서 가져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 같다. 물론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느껴라는 도덕적인 이야기로 설득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것이 너무나 뻔하게 드러나는 시대다. 그래도 비슷한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다.
러셀은 원하는 것들 중 일부가 부족한 상태가 행복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변화에서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 50점을 맞은 아이는 80점에도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80점을 계속 맞는 아이는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돈이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지만 모두 행복하지는 않다. 자신의 부가 늘어난다면 풍족하지는 않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원히 부족함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행복하기는 힘들다. 슬프게도 요즘은 이런 부류도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그리고 권태는 불행하다고 이야기한다.(이건 우리가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지겨운 것은 불행하다. 힘든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을 권태라고 한다. 열심히 일을 한다면 힘이 들긴 하지만 권태롭지는 않다. 단, 매일 반복적인 일만 한다면 권태로울 수 있겠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단순 반복은 권태롭고 불행하다.
육아가 힘든 이유가 권태롭기 때문이다.
권태의 반대는 즐거움이 아니라 자극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경험으로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자극은 위험하다. 금방 한계에 도달하고 다시 권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물과, 술과 같은 것들로 자극을 채우는 것도 위험하다.
그러나 권태를 벗어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어느 정도는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매일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힘이 든다. 권태는 편안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책을 읽어 보든지 댓글을 남기길 바란다.
행복해 지기 위한 방법중에서 몇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