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어떠세요?"
"기분이 조금 다운된 것 같아요"
"며칠 동안 들뜬 적은 없고요?"
"네"
예전에 비하면 우울이라고 할 만큼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밤새 이유 모를 분노나 슬픔에 잠식되어 소리 없이 우는 밤도 없고
새벽마다 면도칼을 들고 고뇌하지 않는다.
비상약을 한 움큼씩 물 없이 들이키지 않아도 되고
미친 듯이 울면서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대신, 없을 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 말고
내 마음이 힘든 건지, 슬픈 건지, 기쁜 건지
잘 모르겠다.
남들처럼 웃고, 먹고, 생활하는 게 조금은 벅차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죽을 만큼 힘들어도
성실하게 수업 듣고 할 일을 하는 게 어려워도
그래도 예전보다는 괜찮지 하면서 산다.
무감각한 것도 병이라면 병이겠다.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도 너무 무심해서 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당연하게 먹고, 당연하게 씻고, 가꾸고 하는 것들을 하지 않는다.
살은 당연히 찌고 얼굴도 엉망이 되고 수업 성적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의지. 그래,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죽을 생각은 없어졌어도 삶을 살아갈 의지는 아직 생기지 않은 탓일까.
선생님께서는 자주 기다려지는 날이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딱히, 기다려지는 날 같은 건 없으니까.
또 하루가 흘렀다. 물 엎어지듯.
한창 우울증이 심할 땐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삶이 간절한 자에게 내 목숨을 주고 싶다고.
나처럼 이런 삶을 살아갈 바에 더 간절한 이에게 내 시간을 주고 싶다고.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일을 간절히 바라는 삶에게 나의 내일을 줄 수 있다면..
어쩌면 난 기꺼이 내어주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