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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온 Apr 01. 2024

항불안제를 줄여보도록 하죠

봄이 왔더라

날씨가 제법 따뜻하다. 낮에는 덥기까지 한 것 같더라. 살금 봄이 다가왔을 때, 선생님께서는 오늘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4월 동안 천천히 항불안제를 줄여보도록 하죠"


그래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과 나도 드디어 약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희망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최근 ADHD약 중 대표적인 약으로 콘서타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우울과 불안보다 ADHD증상이 더 심하다는 선생님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시간 가까이 되는 대학원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잡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주의 산만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행동이 나의 공부를 방해했다. 다른 사람과 집중해서 대화하는 것이 어렵고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렸을 때는 그리고 최근까지 난 내가 끈기가 없고 집중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꼭 끈기가 있어야 하냐고 반문하셨다.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이며 주변을 잘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비록 집중이 어렵더라도 남들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무엇인가를 꼭 끝까지 해낼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어떤 일을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이뤄내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이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상력이 좋고 창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일 뿐이라고.


최근 들어 나라는 사람의 색이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예전에는 발이 땅에 닿지 못한 채 둥둥 떠 있는 사람 같다면 지금은 땅에 발을 잘 딛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 모습으로 인해 항불안제의 용량을 천천히 줄여 결국에는 약을 먹지 않도록 하는 계획을 설명해 주셨다.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몸에 피가 도는 대신 약이 돌고 있을 것 같을 만큼 한 움큼씩 약을 먹었던 시간들이 있었지. 언제쯤 약을 그만 먹을 수 있을까 하면서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약을 삼켰던 시간들이 있었지. 온몸을 떨면서 비상약 통에 있는 약들을 물도 없이 삼켜야 했던 억척같은 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지. 


그렇게 나를 지배할 것 같았던 약들이 이제는 몇 알 남지 않은 채 봉투에 담겨 나에게 안겨 있다. 약봉투를 안고 병원 계단을 내려와 보니 해가 쨍하니 비추고 바람이 따뜻하게 불더라. 


처음 병원을 내원했을 때 길면 5년 정도 먹어야 한다던 약을 10년이 넘도록 먹고 있다. 10년이 넘어서야 약을 줄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날이 어느 순간 봄과 함께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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