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온 Oct 16. 2024

잘 살아있습니다.

벌써 가을이네요.

글을 쓰면서 먹고 있는 꼬깔콘이 맛있는 계절이 왔네요.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선선한 바람과 어쩌면 아직은 조금 따가운 햇살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지나가는 대학생들의 대화 속에서는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의 설렘이 가득합니다. 언제 지나갈지 몰라서일까요. 집을 나설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높아져버린 하늘을 보면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곤 해요. 


"우울삽화가 다시 심해진 것 같습니다"


참,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했을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그동안의 증상들과 생각과 생활들이 병이 악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음에도 병원에서 선생님에게 듣는 얘기는 왜 이렇게 새삼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예전보다 심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 봤을 때 우울삽화가 다시 심해진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자해와 자살시도를 반복하던 증상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냥 그럴 의지와 힘도 없는 상태랄까. 자해와 자살시도도 그럴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그때는 그럴 힘이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하는 일들을 겨우 겨우 해내면서 살면 삶의 패턴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겨우 겨우 해낸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습니다. 진짜 겨우 겨우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삶의 패턴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고 낮에는 너무 피곤하고 졸렸습니다. 밥때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다른 이상한 시간에 밥을 먹곤 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신체리듬을 지키는 것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임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이야기죠. 


선생님은 단호하게 얘기하셨습니다.

"잘 때 자야 하고 먹을 때 먹어야 합니다"


요즘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잘 시간에 눈을 감는 연습, 밥시간 때에 밥을 조금이라도 먹는 연습을 말이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아지고 있다는 자만이 짓밟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쉬운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자정 전에 안 감기는 눈을 감아봅니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이 정상 궤도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짧은 가을 동안은 그저 나로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것들을 다시 세워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남들도 어쩌면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집을 나서는 일이 많이 힘들 수도 있겠죠. 사실, 저는 아직도 그런 보통의 삶을 살아갈 의지가 없습니다. 책임지고 있는 것들이 없었다면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그런 삶들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오늘도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걸어가 씻고 집을 나서야 한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을은 안녕하신가요. 비록 점점 짧아지는 가을이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의 가을이 이토록 찬란하기를 바라봅니다. 

이전 21화 안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