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치원과 독일 유치원 아이들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첫 번째 테스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이나 토끼와 호랑이와 같은 동물 이름 등을 적게 했다. 두 번째 테스트는 기초적인 연산 문제를 내주었다. 실험 결과가 어땠을까? 우리나라 유치원 아이들은 몇 문제를 빼고는 답을 척척 써 내려갔다. 반면, 독일 아이들의 답안지는 거의 빈칸이었다.
이어서 한 가지 테스트를 더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네 장의 그림을 나누어주고 이야기의 순서대로 배치해보라는 주문을 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연결된 그림으로, 아이들의 상황 파악 능력과 이해력을 알아볼 수 있는 테스트였다.) 결과가 어땠을까? 우리나라 아이들의 정답률은 30%였고, 독일 아이들은 75%가 정답을 맞혔다.
이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아이들의 학습능력은 독일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떨어졌다. 글자를 쓰고 읽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유치원 정도 되면 학습지를 풀고, 글자와 수를 익히는 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부모가 기본이 안된 것으로 간주된다. 맘껏 놀게 하면 우리 아이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뭐라도 좀 더 가르치고 배우게 해 줘야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를 똑똑하고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 한다.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아이의 인지와 신체, 정서와 사회성 발달을 위해 최대한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높은 교육열이 아이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이가 다양한 교구를 가지고 놀고, 문제를 하나 더 풀고,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으면 똑똑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랑 눈을 맞추며 놀이하기보다는 값비싼 교구와 교재를 안겨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과연 우리는 효과적인 교육을 하고 있을까?
놀이야말로 뇌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독일, 프랑스, 핀란드, 이스라엘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 학습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유치원까지는 어떤 문자 교육과 숫자 교육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초등 입학 전 일체의 학습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알파벳과 수의 개념을 배우기 시작한다. 간혹 한국의 부모가 문자나 숫자를 가정에서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유치원에서 바로 전화가 온다고 한다. 가정에서 학습을 시키지 말라는 권고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할까? 아이들을 훌륭하고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이 없어서일까? 우리나라에 비해 교육열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우리나라만큼 아이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발달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접근한다. 철저하게 뇌 발달에 근거해서 유아교육을 실시한다.
그들은 학습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며, 그것은 바로 '놀이'라고 말한다. 유아시기에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놀이에 있다고 믿는다. 독일 유아교육의 목표는 놀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생각과 호기심을 지지해주고, 아이가 놀이를 통해 흥미를 키워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전문가들은 놀이야말로 뇌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한편, 조기교육이 뇌 발달을 저해하는 주요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학습 뇌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의 (정서가 발달해야 할 시기에) 학습은 득 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조기학습으로 인해 소아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장애, 감정조절의 어려움, 또래와 관계 맺기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정서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이와 학습을 분리하자.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과 진정으로 잘 놀기를 원한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하고, 소통을 잘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하고 잘 못 놀아서 점점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마음을 다잡고 놀아보려고 하지만 아이들과의 놀이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아이들과 논다는 것은 결코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놀이와 아이의 심리에 대한 약간의 이해와 기술이 필요하고, 또한 체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과 놀면서 무언가를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실수했었고, 반성했던 부분이다. 교육을 하는 게 직업이었던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꾸 선생님이 되곤 했다. 미술놀이 활동, 요리활동, 체험활동 등등을 하면서 놀이를 가장한 학습을 하곤 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적 없는가? 공룡 놀이를 하다가 티라노사우르스가 나오면 육식 공룡을 이야기해주고, 초식공룡과 육식 공룡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인형놀이를 하다가 아이가 동생을 때리면, 언니가 동생을 때리면 안 되는 거라고 이야기해준다. 레고를 만들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더 멋진 방법을 설명해준다. 의욕에 가득 차서 기똥찬 놀이를 준비하고 짠~ 하고 시작했건만 아이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거나 되려 짜증을 낸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와 놀이할 때 자꾸 가르치거나 기대감이 너무 높을 때 아이의 발달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은 모든 활동을 잘 수행해야 하는 과제로 생각하고 놀이 상황에서도 잘 수행해내야 한다고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놀이가 잘 안되면 울고 떼쓰거나, 방해하거나 물러서는 행동을 보인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에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놀이의 본질에 충실한 놀이를 하자.
아이와 놀이를 할 때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부모가 놀이를 주도하거나 뭔가를 가르치려들 때 아이의 흥미를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놀이를 가장한 학습을 할 때, 부모가 놀이를 주도할 때 아이들은 지루해지고, 김이 새고, 짜증이 난다. 놀이의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놀이의 본질은 무목적성에 있다. 아무런 목적이 없이 즐거움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 바로 놀이다. 학습은 놀이가 될 수 없고, 수행 목적이 있는 활동은 진정한 놀이가 될 수 없다. 놀이에 학습이 가미되는 순간 놀이의 본질은 사라져 버린다. 아이들은 놀이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목적이 없이 놀았을 때 아이들은 엄마가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놀이가 주는 선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풍성하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탐구하며, 자신을 표현한다. 놀이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고, 정서를 순화한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르며,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아이의 놀이를 즐기며 존중해줄 때, 아이는 자신을 인정받았다고 느끼며 자존감을 갖게 된다. 신체와 정서, 인지가 골고루 발달할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인드셋을 배운다. 놀이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지 않을 때 아이는 배우고 성장한다. 반대로 놀이를 통해 가르치려고 할 때 아이는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뇌가 발달한다. 학습의 목적이 아닌 놀이 자체가 주가 되는 무목적인 활동일 때 놀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아이가 진정한 놀이를 통해 성장하길 원한다면, 가르치는 대신 아이의 놀이에 동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