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점을 찍는 1시간, 점심 혼자 먹는 남자 (13)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점심, 마음의 점을 찍는 시간이라는 뜻을 되새긴다. 나의 마음에 여러 점을 찍는 그 순간은, 진수성찬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 그 순간들은 곧 점심을 먹은 것과 같다. 공복이 점심이다.
그 순간이 언제일까? 아마 서로에게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던 옛 시간들은 아니었을까. 배고픔과 결핍이 온몸을 적시던 순간들의 끼니들은 달았다. 한여름에 축구를 하고 나서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 운동장 구석에서 수돗물 꼭지에 물을 받아먹고 있던 아이를 발견한 여자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나. 엄마를 보고 쫄래쫄래 뛰어갔던 그 녀석은 그때 그 부채질의 의미를 알지 못했었다.
나의 마지막 부채질은 언제였던가. 이제는 선풍기에서 벽걸이 에어컨, 그리고 스탠딩 양문형 AI 에어컨을 쓰다 보니, 방 한구석에 부채 하나 없고 부채표를 찾는 게 일상. 까스활명수라는 녀석을 아침과 저녁에 사이에 끼워둔다. 그 전날 먹었던 치킨이 뱃속에서 착하게 굴지 않고 겁쟁이처럼 굴 때면 복잡했던 머릿속도 단순해진다. 경고 신호에만 집중한다.
해우소에서는 두 가지 부채가 아른거른다. 하나는 대한민국의 부채. 정부 부채와 가계 부채. 부채가 쌓여간다는 뉴스의 연속. 이놈의 민생지원금은 흙수저 대기업 직장인의 울화통을 터지게 만든다. 가장 화나는 건, 그 15만 원이라도 받기 위해서 언제부터 신청해야 하는지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손가락이 밉다. 누군가는 손가락혁명군을 조직하여 약 20조를 상회하는 국가 예산을 자기 돈 쓰듯 하는데, 내 손가락이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궁핍하다.
주먹을 쥔다. 다른 한 손으로 손가락을 감싼다. 두 번째 손가락부터 누르려다가 멈칫. 손가락 관절을 꺾어 소리를 내는 대신 핸드크림을 도포한다. "뚝뚝" 거리는 건 눈물 하나로 충분하니까. 대신 잊고 있었던 나의 손가락의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브런치 작가로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4,8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받으며 평화롭게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건전한 부채의식'을 생각한다.
우리 선조와 공동체를 향한 '건전한 부채 의식'. 과연 '나'라는 존재는 오롯이 내 능력만으로 제 몸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성인이 된 것일까. 얼마 전 읽었던 김지수 작가의 인터스텔라 인터뷰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라도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 하지만 이러한 강박 관념이 요즘은 자칫 잘못 해석되어 우리가 마치 처음부터 아무에게도 빚진 것 없는 "부채 없는 존재" 로 스스로를 여기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사회란 동시에 자신의 존재가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회' 라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공동체에 무언가를 갚으려고 하는 건전한 '부채의식' 만이 사회 곳곳에 살만한 통로를 만들 수 있다고. <지카우치 유타 -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점심 혼자 먹는 녀석에게는 도끼처럼 다가온 문장도 있었다. 사람들과 같이 먹지 않는 이유, 누군가 흔쾌히 밥을 사준다고 해도 꼭 커피를 사거나,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서 작은 금액이라도 갚으려고 하는 나의 태도는 교환적인 인간관계를 쌓아온 사람의 전형이기도 했다.
(질문 / 김지수 작가) "교환적인 인간관계만 쌓아온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주위에 증여하는 사람이 없고
자기 자신 역시 증여의 주체가 아닌 경우,
그 사람은 매우 간단히 고독해집니다"
(지카우치 유타)
건전한 부채 의식과 의도적 공복 상태의 예찬을 위해 쓰기 시작했던 글. 고독한 미식가가 되겠다며 혼자 먹는 점심에 부쩍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던 요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까지는 아니지만 놓친듯한 느낌. 상황이 이끄는 대로 살아지는 감각. 이런 "살아짐"이 무언가의 사라짐이 될까 두렵기도 했다.
이때 필요한 간헐적 16:8의 마인드셋. 16시간의 공복과 8시간 동안의 식사,16시간의 생각과 8시간 동안의 행동.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한 16:8의 황금 비율. 비울 때 채울 수 있다는 믿음. 지금 내가 빛날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위해, 우리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라는 감각. 건전한 부채 의식에는 타인의 부재를 인식하는 능력과 그들의 희생이 나의 현존재와 연결되었음을 깨닫는 것.
시간을 초월한 생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간이 필요하다. 비울 수 있는 만큼 채울 수 있다. 내 몸의 공간을 확장하는 가장 쉬운 방법. 가끔 끼니를 거르는 일. 누군가 점심 먹었냐고 물어보면, 먹지 않았는데 먹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가끔은 공복이 점심일 때가 있다.
https://biz.chosun.com/topics/kjs_interstellar/2025/06/14/DEBISUNWC5BQHFD5WYSXT7X5A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