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이 차곡차곡 쌓이자, 이야기만 나누고 끝내기엔 뭔가 아쉬웠다. 우리가 나눈 생각들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혹시 나만 그런가?’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같은 생각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는 말이 나왔고,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가족캠프, 독서모임 산악회, 그리고 독서모임 플랫폼으로의 확장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했던 꽃꽂이, 명상, 요가, 다도, 수공예, 심리상담 같은 일회성 활동도 좋았지만, 비슷한 뜻을 가진 몇 사람이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가니 그 깊이와 울림이 달랐다. 오늘은 그중, 책을 읽다 산까지 타고 있는 엄마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스토리는 곧 잡지에도 실리고, 방송에도 나갈 예정이다.
나는 둘째를 낳고 몸이 회복되지 않은 채 일을 시작했다가 건강에 적신호가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지치고 무기력한 채로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출근은 잠시 멈췄고, 육아휴직의 첫날, 따뜻한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들고 혼자 뒷산에 올랐다.
산 정상에 앉아 마신 커피 한 모금. 그 순간이 내 안에서 무언가를 바꿔놓았다. 바람이 좋았고, 햇살은 따뜻했고, 오랜만에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갑자기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어디선가 솟아올랐다. 마침 독서모임에서도 생각의 변화가 많은 시기였는데, 자연 속에 들어가 몸을 움직이는 등산을 하니 시너지가 폭발해 생각이 선명해졌다. 가족을 위해 나를 돌보지 않는 삶은 결국 누구에게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 건강하게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내 마음의 목소리를 더 자주 듣기 시작했다. 독서모임에서는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상과 생각을 나누게 되는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엄마들이 있어 같이 산에 오르게 됐다. 그렇게 책과 등산을 합친 ‘독서모임 산악회’가 만들어졌다.
2024년 신년산행이 기억에 남는다. 1년 넘게 독서모임을 함께한 대전에 사는 회원과 월악산에 올랐다. 환경과 건강을 주제로 같이 책을 읽은 뒤라,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으로 등산을 준비했다. 쓰레기가 될 만한 것들은 하나도 들고 가지 않았고, 손수 도시락도 준비했다. 나는 비건 김밥을 쌌고 회원님은 지인에게 빌린 무겁고 큰 보온병에 따뜻한 야채스프를 담았다. 그 정성 덕분에 추운 겨울 산 정상에서 먹은 야채스프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린 독서모임을 통해 명상도 접했기에 풍경이 탁 트인 절경 앞에서 명상도 함께 했다. 각자 조금 떨어져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했다. 미리 배웠던 명상 방법대로 내 몸과 마음에 5분 정도 집중한 뒤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찬란하게 맑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차분하게 한 장면, 장면, 찬찬히 느꼈고 마음속 깊이 담았다. 오랫동안 함께 책을 읽으며 마음의 결이 닮아진 사이여서 가능한 경험이었다.
2025년부터는 운영진이 한 명 더 늘었다. 격월 산행을 계획했고, 1월 신년산행 이후로 3월, 5월 등산도 이어졌다. 인원이 적을 때는 둘이서, 5월엔 다섯 명이 함께했다. 회원이 5명이나 모인 것이 신나서 등산 중에 소소한 프로그램도 진행했고, 하산 후엔 계곡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작은 독서모임도 열었다. 날씨도, 자연도, 사람도, 책도 완벽했던 하루. SNS에 사진을 올렸더니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고, 산악 전문 방송 채널에서도 촬영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사실 우리는 전문 산악회가 아니라고, 엄마끼리 독서모임을 하다가 마음이 맞아 산에 오르게 되었다고, 인원도 많지 않다고 해명했으나, ‘엄마’와 ‘책’을 키워드로 한 산악회가 매력적이라며 꼭 다루고 싶어했다.
잡지 인터뷰는 마쳤고, 방송 촬영은 다음 달 예정이다. 나는 독서모임을 했을 뿐인데, 재미있는 경험들로 연결되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