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동검은이오름
동검은이오름은 제주도 동쪽 중산간지대인 구좌읍 송당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름이 검은색을 띠고, 조천읍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오름 사면이 거미집을 닮아서 거미오름이라고도 불린다.
동검은이오름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모양이 다르다. 높은오름에서 동검은이오름으로 이어진 산책로에서는 원추모양의 평범한 산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다른 오름에서 바라보면 모습이 많이 달라진다. 백약이오름에서 보면 마치 다리를 세운 거미모양으로 보인다.
문석이오름 둘레길에서는 햇빛이 내리쬐는 나른한 오후 편안히 누워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을 감상하는 목동처럼 보인다. 그 옆에 있는 말들도 풀밭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더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동검은이오름 정상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3개가 있다.
먼저, 백약이오름에서 출발해서 문석이오름 길을 따라가는 방법이 있다. 산책로 주변은 대부분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이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밭담이 길게 이어진다. 참고로, 제주도는 서귀포 하논오름 주변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고, 나머지 대부분은 밭농사이다. 육지에 비해 날씨가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아 연간 3 모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 서쪽은 황토가 많아 감자가 잘된다. 동검은이오름이 속한 동쪽은 검은색 화산토가 많아 당근이 잘 자란다.
두 번째는 구좌읍 공설공원묘지를 출발하여 높은오름 앞을 지나 오름 산책로에 들어서는 길이다. 1~2km 정도 되는 산책로 주변에는 억새풀이 가득하다. 가을에 방문하면 바람에 일렁이는 멋진 억새밭을 만날 수 있다. 세 번째는 성산읍공설공원묘지를 출발하여 월랑지(260.2m) 오름 옆 임도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가지런히 조림한 삼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다.
동검은오름은 산책로가 오솔길처럼 아기자기하다. 분화구 바깥으로 한 바퀴 돌 수 있고, 분화구 내부로 가로지르는 길도 있다. 분화구 내부가 깊지 않고, 산책로 주변은 자그마한 수풀이 자란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언덕길을 걷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분화구 내부의 오솔길을 지나간다. 오솔길을 한 줄로 늘어서 걷는 풍경이 정겹게 보인다. TV에서나 볼듯한 오지마을에서 출발하여 험준한 산과 거센 물결의 강과 길게 뻗은 들판을 건너 많이 사람이 모이는 시장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 행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론 개구쟁이 아이들이 식물이나, 곤충채집을 위해 들판으로 소풍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름 꼭대기에서는 사면의 풍경이 멋지게 다가온다. 동쪽으로는 한라산 모양을 닮은 손지오름과 울크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용눈이오름, 바닷가의 지미봉 등 제주도 동쪽 유명오름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그 시선은 우도에서 멈추게 된다.
서쪽에는 다양한 약초가 자란다는 백약이오름이 오름이 비치고, 그 너머로 중산간지대 오름군과 웅장한 한라산 풍경이 펼쳐진다.
동쪽에는 성산일출봉과 제주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주변오름 중 가장 높아 불린다는 높은오름, 남쪽에는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의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좌보미오름이 각각 눈에 들어온다.
올레길 한 코스를 걷는다는 생각으로 한라산 동쪽 중산간지대의 대표오름 몇 개를 묶어서 다녀보는 걷도 좋다. 주차장이 상대적으로 넓은 백약이오름에 주차한 후 높은오름, 동검은이오름, 문석이오름, 좌보미오름, 백약이오름 코스를 걷고 나면 멋진 하루를 보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현무암을 옹기종기 쌓은 밭담, 그 안에 자라고 있는 당근, 호밀 등 농작물,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월동무 꽃,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 등 제주도 시골의 풍경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