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솔직한 이야기.
접혀있는 상자, 쌀자루 같은 포대가 들어있는 낡은 박스.
검은색의 전선, 그 옆에 아름다운 선율처럼 엉겨있는 훌라후프,
플라스틱과 캔, 고철의 꾸러미,
언뜻 보면 난장판 같지만, 어딘가 나름의 질서가 있는 공간
누군가 마시다 만 커피
기분 좋을 때 마신 걸까. 아니면 씁쓸한 마음을 삼기 켜 마신 걸까.
저 줄넘기는 쓸모를 다했을까. 키가 커서 버려진 것일까.
네모난 고무액자 같은 것. 그 안에 담긴 비닐봉지조차 같은 색이 하나 없는데
'나는 왜 모든 것이 똑같아지길 바랐을까'
그렇게 혼란스럽게 흩어진 물건들 사이에 구석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같이 가"
지극히 솔직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여기는 좋게 말하면 아빠의 작업공간.
솔직히 말하면 친정집, 우리 집이다. 주택이라서 다행인 건가.
언젠가 하나둘 박스를 모아 오시더니, 이제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득해졌다.
고물상도 아닌데.
이른 아침 아빠의 전화소리.
아빠는 취미이자 삶의 기쁨인 주식에 푹 빠져있다.
(치매에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인가)
"어디니? 학교 데려다주는 길이니? 인증서가 안돼! 이따가 와야겠어"
"인증서가 왜요? " (짜증을 삼키며 최대한 부드럽게)
"아니, 그 비밀번호를 잘못 적어서 안돼"
"알겠어요, 이따가 알려드릴 테니 혼자 해보세요"
주식을 못하면 큰일이라도 난 듯 화를 내는 아빠.
그 성화가 싫어서 친정에 가려는 발길을 돌렸다가 결국 다시 핸들을 틀어 친정으로 향한다.
'그래도 가야겠지, 가야겠지 가야겠지..'
도착하니 , 문안 쪽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는 아빠.
새까맣게 변한 손으로 뚝딱뚝딱 캔을 눌러서 펴고 계신다. 왠지 안 어울리는 털모자를 쓰고서는.
내가 들어가자 자리를 비켜주신다. 계단을 올라가야 하니까.
방에 들어서자, 책상 한가득 종이쪽지, 껌종이 같은 조각들,
플라스틱 병의 뚜껑들까지
'이건 도대체 왜'
"아빠, 나도 아빠 닮아서 정리를 잘 못하지만, 이건 좀 심해요,
다음에도 이렇게 되어있으면 왔다가 그냥 갈 거예요. 안 해줄 거야"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인증서를 갱신한 후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하며 집을 나섰다.
'하, 언제까지일까, 차라리,...
문득 뒤돌아보니
잔뜩 쌓인 물건들.
그 속에서, 눈물이 또르르. 가득 고여 흐르다가 이내 툭툭 떨어졌다.
아픔을 버리지 못했다. 버리지 못한 아픔들.
벌써.
32년이 지났네, 벌써.
아빠 가슴 깊숙한 곳에 살고 있는 동생을 이제는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한참을 바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허공에 외쳤다.
"미안해, 이제 그만 가줘"
마치 들으라는 듯이,
울며
기도하며
그렇게 돌아섰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