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귀 기울여야 할 한마디-메멘토 모리

인공지능 시대에 생명과 죽음 4, 드라마<웨스트월드:인공지능의 역습>

by 박인조
“한 사람의 생사는 내가 획득할 지식과 얻을 지배력에 비하면 작은 희생에 불과하다.” - 드라마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West World) 중에서


가히 ‘폭발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컴퓨터 게임을 비롯해 게임의 종류가 참 많아졌습니다. 이제 TV 광고의 대세가 게임 광고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유명 연예인이 광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게임은 어린이의 놀이기구가 아닌, 전 국민적인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사람의 상당수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들 게임에 심취해 밥을 먹을 때나 텔레비전을 볼 때에 서로 아무 말이 없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게임 인류’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도 좀 알아야 대화가 가능한 시대가 될 정도로 게임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게임이 빠지는 이유 중의 하나로 대리만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실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볼 수 있고 또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 사는 경험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부수며 카레이서가 되는 것이나,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군대를 이끄는 것도 게임에서는 가능합니다.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참 좋습니다.

세밀한 그래픽의 구현으로 게임 속 환경에 사실감이 높아지고 있어 만족도도 높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공간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상의 세계라 아쉬움이 큽니다.


최근에는 가상현실 기기의 발전으로 점차 오감을 통해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실제 현실세계에 게임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즐길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기발의 결과로 말이지요.


이제 소개해드리려는 드라마에서 그런 미래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즐기듯 흔한 죽음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West World, 미국/2016)은 미국 케이블방송채널 HOB에서 만든 10부작 드라마입니다. 이후 시즌 3까지 제작되어 방송되었습니다.

1973년에 개봉한 영화 <이색지대>(Westworld, 미국)를 원작으로 합니다.

KakaoTalk_20210704_154522416.jpg (출처: 영화 장면 캡처)

인간과 똑같은 인공지능 로봇이 게임의 NPC(Non Player Character)처럼 행동하는 미래형 테마파크인 웨스트월드는 미국 서부를 무대로 합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이곳을 방문하는 진짜 인간은 ‘이주민’으로 불리는데,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로봇이 호스트이자 ‘원주민’인 이 세상에 하루 이용권으로 4만 달러를 지불하고 방문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합니다.


스크린 상에서 경험하는 그런 게임이 아닙니다. 인공지능 로봇은 보안관, 군인, 카우보이, 주민, 매춘부 등 주어진 역할에 따라 이미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하지만 말과 행동에 인간과 차이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인간이 쏜 총에 맞으면 죽고 인간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다 고장 나거나 문제가 생긴 호스트는 웨스트월드가 멈춘 순간, 중앙센터에서 파견된 직원에 의해 실려가 이전의 기억을 지우도 재설정되어 다시 현장에 배치됩니다. 나머지는 폐기처분되거나 창고에 대기 상대로 보관됩니다.


반면 ‘이주민’인 인간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컴퓨터 게임에서 죽어도 다시 사는 주인공과 죽어 없어지는 수많은 적들처럼, 흔한 죽음이 펼쳐지는 세계가 영화 속 웨스트월드입니다.


포드 박사와 아놀드는 개장 3년 전부터 호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갈등했습니다.

아놀드는 호스트들이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닌, 의식을 가진 진짜 존재를 창조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포드는 인간이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호스트를 제작하기 원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웨스트월드를 찾는 고객들은 사회에서 하지 못하는 행동들, 금기시하거나 범죄로 여기는 행동을 해보려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스트를 의문을 품지 않고 시키는 걸 그대로 따르며 만족스럽게 사는 존재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호스트는 결국 문제를 일으킬 것이니까요. 결국 아놀드가 사고사로 웨스트월드에서 죽으면서 포드의 생각에 따라 호스트들은 제작됩니다.


드라마 시작 전 인트로 영상에는 웨스트월드의 호스트인 NPC를 제작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3D 프린터로 제작되는 인간과 동물은 웨스트월드라는 거대한 세트장에 역할과 성향과 단순한 감정 그리고 개인사라는 과거의 기억까지 프로그램 되어 배치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중앙센터에서 철저히 통제됩니다.




이미 3D 프린터가 물건뿐 아니라, 인간의 장기까지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이라고 부릅니다.


물건을 프린트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장기 역시 3D 디지털 모델을 바탕으로 층층이 프린트합니다.

장기를 프린트하는데 사용되는 소재는 일반 물건을 제작할 때 쓰는 소재와 달리 인공뼈를 만드는데 쓰이는 티타늄 파우더와 같은 재료를 활용합니다.


3D 프린팅 기술은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인간의 신체 장기 제작에 유용합니다. 특히 부족한 장기이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를 줄일 수 있습니다.

팔과 다리, 그리고 신체 부위를 교체할 때는 물론이고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부목, 붕대, 임플란트, 나사 등 개인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른 신체 부위에 맞게 제작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학기술에는 인간의 신체 일부를 프린트하는 데 따르는 윤리적 쟁점이 발생합니다. 또 건강을 살피고 관리하려는 의욕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 안전성에 대한 부분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Klaus Schwab,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 238-240.)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열쇠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죽을 존재임을 인식할 때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생명을 보전하고 지키며 이어가려는 가치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생명에 대한 가치야말로 인간다움의 근간을 이루는데, 이것은 인간의 유한성, 죽을 존재임을 발견함으로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기에 한정된 시간 동안 주어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려는 열망은 충만해집니다.


그런데 웨스트월드에서 인간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스로의 생명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보전할 이유와 책임을 가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흔한 일이 되고 욕망을 충족하는 새로운 아이템이 됩니다. 마약과 섹스처럼 극도의 쾌감으로 인간을 사로잡을 또 하나의 재료가 되는 셈입니다.

(출처: 영화 장면 캡처)

또 다른 차원에서 인간다움은 삶의 태도와 관계되고 이러한 인간다움도 죽을 존재라는 인식에서 드러납니다.


사랑과 자유, 공감과 배려와 같이 인간 실존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태도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사랑과 자유의 삶을 살기 원하는 만큼 죽음을 무릅쓸 용기를 냅니다.


죽음의 현실에 직면한 인간을 볼 때 깊은 돌봄과 긍휼의 마음이라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처럼 인간다운 삶의 가치는 죽음과 함께 구체화됩니다.


웨스트월드에서 호스트들이 죽는다고 인간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것들’은 작동을 멈추는 것일 뿐, 언제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것들과의 관계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 배려, 자유라는 것은 신경 쓸 일도 없는 것이지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는 고인의 존엄만 아니라 나의 품격도 좌우하는 신중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임종을 앞둔 사람 앞에서 가장 겸손한 행동을 취하고 또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절제합니다. 때로 아무나 그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거나 누군가의 방문을 거절하는 것은 그만큼 격식을 요구하는 공간이며 구별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됨의 본질적인 가치를 마음에 각인합니다. 고인이 이룬 업적이나 재력은 잠시 덮어두고, 한 인간의 종말 앞에서 인간됨이 새롭게 각성됩니다. 특별한 순간입니다.


드라마 <웨스트월드: 인공지능의 역습>은 제목에서처럼 마지막에 ‘인공지능의 역습’의 징조가 나타납니다.

다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기억의 단초들로부터 호스트들은 웨스트월드의 부조리의 원인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답지 않은 인간을 향해 호스트인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다움에 대해 한수 가르침을 줍니다.


인공지능 로봇들은 웨스트월드에서 죽지 않는 인간을 향해, 죽음을 잊어버린 인간에게 속삭입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고요.




미래학자 닉 보스트롬(Niklas Boström)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순간, 인공지능은 인류가 자신을 배반해 플러그를 뽑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또는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서 인류를 절멸시킬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도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활용해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윤리적 감수성과 죽음 인식이 중요합니다.

KakaoTalk_20210704_154522978.jpg (출처: 영화 장면 캡처)

인간은 결코 신과 같은 존재일 수 없습니다. 수많은 모순과 불확실성 가운데 살아가다, 언젠가 죽을 존재입니다.

죽음에 대한 인식과 함께 내가 누구인지라는 자기 인식을 가진 인간이야말로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인간이라 생각됩니다

.

인간다움을 상실한 채 죽지 않는 인간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인공지능에게 위험한 존재로 평가되어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인 결말, 웨스트 월드의 세상이 치닫는 마지막 모습입니다.


죽음을 망각한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됨을 상실하고 살게 되고 그 결말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이 아니라, 멸망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을 불멸의 세상을 꿈꾸는 인류가 언제라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바로,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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