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 동안 속 시끄러운 일이 많았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업무량은 갑자기 배 이상이 되고, 별일 아니던 일이 눈덩이가 되어 꼭대기서부터 시속 200Km로 굴러내려 오는 형상이다. 털어내려고 노력하지만 걱정거리들은 직장부터 졸졸졸 따라와 집 안까지 들어와서는 저녁 준비할 때도, 청소할 때도 계속 내 주위를 맴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퇴근하는 순간 그곳에 두고 나오려고 노력하는데 왜 이리 어려운지. 또한 남들은 내가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는 줄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감정표현을 쉽게 하지는 않지만 실소를 하는 나에게 웃어넘길 줄 아는 대인배라고 단단히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긴, 10년 이상 같이 산 남편도 엄청 투덜거리다가도 3초 만에 잠드는 나를 보고는 걱정은커녕 세상 참 편하게 산다 한다.
어디선가 꿈을 총천연색으로 꾼다면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과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들었다. 이 세상 모든 꿈은 컬러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팥으로 두부를 만든다는 이야기급으로 놀라웠다. 잠자는 시간의 총합은 어딜 가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항상 일어나도 찌뿌둥한 것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3시간짜리 고화질 영화 3편은 찍고 일어난 느낌이다. 쫓기고, 다치고, 구르고, 파헤치는 꿈속 시리즈물 속에서 긴 밤을 지내고 나면 더 머리가 아프다.
이 정도쯤은 괜찮다고 생각한 일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여 기어이 2-3일간을 꼭 아프다. 두통에 시달리며, 속까지 울렁대니 젊어서도 이 정도니 나의 노년은 얼마나 아프려나 또 걱정이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잘 받다 보니 몸도 아프고, 몸도 아프니 일처리도 힘들고, 산 넘어 산이다.
몇 주간 이러다 보니 사랑해마지 않던 매주 2회가는 테니스도 가기 싫었다. 일도 마무리 안되었는데 부리나케 운동하러 가는 것도 즐거움이 아니라 족쇄 같달까. 그런데 지난주까지 지쳐서 겨우 가던 테니스장이 너무 가고 싶은 것이 아닌가.
뭔가 공을 잘 때리고 싶은 느낌이랄까.
속 시끄러운 일들도 공과 함께 날려버리고 싶어 마음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퇴근을 하자마자 발걸음을 재촉해 테니스장에 들어갔다.
테니스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공을 받아치는데 라켓에 어색한 반동이 전혀 안 느껴지고 팔에 무리도 없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공이 뻗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게 바로 나이스 샷이구나.
"띡, 땍, 푸억"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뻥"
오늘은 이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
잡생각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라도 테니스를 치면 집중하게 된다. 집중해야만 한다. 생각할 것이 9999가지다. 테니스 공과 라켓의 거리, 라켓과 나의 거리, 스텝, 몸의 중심 이동, 공을 치는 방법에 따른 그립, 공이 바운드되는 방향과 속도, 무릎이 펴지는 속도, 몸의 방향 등 생각할 게 정말 많다. 하나를 고치면 다른 것이 안돼서 처음에는 엄청난 좌절을 했지만 선수가 아니기에 고치고 싶은 부분을 하나씩 읊어가며 집중을 해본다.
'부장님은 왜 일을 어렵게 만드시나, 옆으로'(스윙)
'아니 계획서대로 하면 되지, 왼발을 앞으로'(스윙)
'지금 뭐라 할 거면 계획, 일어서지 말고'(스윙)
'처음부, 하나, 둘, 밀면서'(스윙)
'공 끝까지 보고, 앞으로'(스윙)
잡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테니스에 집중하게 된다.
"뻥"
드디어 나왔다.
제대로 때렸다.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스트레스받아 짜증이 가득 찬 테린이가 어쩌다 공을 잘 때려 막혔던 마음까지 뚫리게 한 것으로 상가 건물 8층 실내테니스장에서 가끔씩 들리는 소리입니다.
막혔던 마음도 뻥 뚫린다.
이것이 잘 때리는 기쁨이구나.
그 옛날 어머니들이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빨래터에서 방망이로 빨래를 힘껏 때리던 이유가 이것인가 보다.
다행히 나는 공을 때리니 핫하고 트렌디한 운동을 즐기는 사람으로 봐주기도 하니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