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물이다
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몸에 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암 환자라는 단어 역시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 때문입니다.
저는 암이 다 나았습니다. 제 몸에는 암이 없습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저는 완벽하게 완치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쓸 수밖에 없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제게 준 최고의 선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의 저자 고명환 님은 교통사고로 죽음을 인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삶이 변하였습니다.
저 역시 암이라는 병에 걸리고 나서 죽음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결코 길지 않구나.. 누구나 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결코 길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두 죽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대통령이든 위대한 업적을 남기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죽음 앞에 예외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꼭 죽음이 저~기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나는 매일 카운트다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곁으로 매일 다가가고 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일이 카운트다운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암은 내게 '죽음을 인지하는 삶'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인지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거립니다.
오늘은 자꾸 울컥거립니다.
오늘 새벽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 울컥거렸습니다.
아이가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저는 책 속의 여운으로 울컥거림과 현실을 자꾸 오갔습니다.
지독히도 감사한 아침입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오늘이 선물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매일 선물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선물을 받았습니다.
내 인생은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오늘은 온몸으로 감사함을 느껴 보렵니다.
할 수 없게 되어야 소중함을 느낍니다.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팔을 편하게 쓸 수 있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운동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했습니다. 당연한 듯이 주어지는 '할 수 있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은 선물이었습니다.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라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암은 내가 살아감에 있어 '감사하기'라는 강력한 도구를 선물했습니다.
힘들일 이 있을 때마다 이 도구는 나를 더욱 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을 믿습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은 사실 모두 감사할 일 덩어리였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고맙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죽음은 생의 절정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그 절정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절정이었습니다.
그 절정을 위해 나는 오늘도 잘 살아야겠습니다.
그 절정을 위해 매일 잘 살아야겠습니다.
그것이 선물에 대한 예의임을 압니다.
<죽음이란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
"우리가 살고자 한다면 죽음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와야 한다네. 눈동자의 빛이 꺼지고, 입이 벌어지고, 썩고 시체 냄새가 나고..... 그게 죽음이야.
....
죽음의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져."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내가 오늘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죽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감사하기 위해서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았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오늘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선물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