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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결혼식

동네 사람들, 나 결혼 해요.

by 우스갯소리

드디어, 내가, 결혼을?

결혼식을 앞두고 꿈을 꿨다.

신부인 내가 결혼식장에 늦게 가서 이미 예식이 다 끝나 있는 끔찍한 꿈이었다. 축하해 주기 위해 모여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송구했던지.

잠에서 깨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에 절대로 늦지만 말자고 다짐했다.


비장한 각오 탓인지 결혼식 당일 날 일찌감치 일어나 웃는 연습을 하고 간단히 집청소까지 마쳤다. 웨딩홀 내에 있는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드레스를 입을 것이었기에 시간은 넉넉한 편이었다. 웨딩샵에 도착하니 메이크업부터 드레스까지 준비해 주시는대로 몸만 제대로 따라가면 되었고, 식장에서 나의 모든 동선을 함께할 헬퍼 이모님도 배정받았다. 이모님은 신부 대기실에부터 나의 옷매무새며 부케 드는 위치 등을 찬찬히 살피고 바로잡아 주셨다.

나의 얼굴이 '깐 알밤' 같다는 칭찬도 잊지 않으셨다.


신부대기실에 들어서자 셔터 세레가 이어졌다. 우리가 고용한 사진 기사님으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하객들로부터.

"느 읏는거 이사해?(나 웃는거 이상해?)"

찐친들에게는 중간중간 표정 점검도 하면서 나를 보러온 하객들을 맞이하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결혼식에 초대한 사람들은 대개 언제 봐도 좋고 반가운 사람들인데, 한 공간에 모여있을 일이 없는 사람들이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한데 모여 있는 것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신부 입장을 앞두고, 나와 함께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아빠가 어디에도 없어 웨딩 직원들 사이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잠시후 그가 홀연히 나타나 모두가 마음을 쓸어내렸는데, 나는 아빠가 화장실에 숨어서 울고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

"신부, 입장!"

문이 열리고 아빠의 손에 내 손을 포개고 앞으로 나아갔다.

신랑에게 다다랐을 때, 아빠는 내 손을 신랑 손에 얹어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혼인 서약을 마치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섬겨야 한다는 주례 말씀이 끝나고, 대학 동기들의 축가가 이어졌다.


축가를 부르던 그들은 2절 간주에 갑작스레 나에게 마이크를 넘겨 주었다.

"신부야, 같이 부를래?"

전형적인 계획형인 남편은 이 돌발행동에 턱이 빠질듯이 입이 벌어졌으나, 나는 마이크를 넘겨 받아 태연히 2절의 한소절을 불렀다.

"늘 하나라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아픈 마음도 함께 기쁜 맘도 함께 나눠 가졌으면 해~"

남편의 놀라는 모습을 볼 요량으로 미리 준비해둔 작은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양가 어른들께 인사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의 행진. 신랑 신부의 행진곡으로 미리 정해둔 축복의 CCM이 식장에 울려 퍼지면서, 그와 나는 남편과 아내로서 함께 발을 내딛었다. 이후의 사진 촬영이 이어지고, 재빨리 환복을 하고, 피로연을 돌며 인사를 하고, 각종 정산을 했더니 결혼식이 정말로 끝났다. 축의대에 식권을 좀더 빨리 전달했으면 좋았겠다 싶고, 식장에 짐을 좀 덜 가져갔으면 좋았겠다 싶고, 피로연을 좀더 여유있게 돌아봤으면 좋았겠다 싶고... 순간 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했다면 좋았을텐데' 싶은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탈하게 잘 마쳐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결혼식장에서는 식장 직원들이 이끄는대로만 (끌려)다니다가 자유의 몸이 되니 몸과 정신이 다시 합치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방금 결혼이란걸 한건가' 싶게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지인들이 보내주는 싸라운드 각도에서 찍은 우리의 사진을 보니 결혼한게 맞긴 맞았다. 이제, 자타공인 부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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