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이해, 그리고 사랑
나는 나의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나는 나의 부모님을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나에게는 아프고 힘든 부모님이었지만,
한편으론 애쓰셨던 모습도 떠오른다.
그래서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나의 마음이 죄스럽고, 무겁게 느껴진다.
억지로 마음을 움직이고 싶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게,
부모님을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부모님은 모든 것이었고,
절대적이며 전능한 존재라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는 ‘안전하지 않은 품’이었다.
내 안에 남은 기억은 사랑의 기억보다는,
아픔, 외면, 두려움, 불안함, 슬픔, 외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나는,
어린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이해, 인정, 관심, 사랑을 받고 싶어 애쓰고 또 애썼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또 다른 상처였고,
나는 마음의 문을 더 깊이 걸어 잠그게 되었다.
이제 나도 성인이 되었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
나에게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처 자라지 못한 내 안의 아이가
감정을 다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법을 몰라
아이보다 더 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고,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사랑하는 법도 서툴렀던 것이다.
아이를 이해하기보다는
나의 마음이 더 앞선 행동으로
아이를 대할 때면
내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그렇게 나는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아이와 같은 내 모습을 마주하며,
그래도 부모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조금씩, 그렇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다시, 나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부모님도 그러셨으리라.
사랑받지 못했지만,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서,
아팠지만, 그 아픔을 존중받지 못해서,
그저 ‘이해하려고만’ 애써야 했기에.
사랑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부모님을 사랑하려 애써야 했고,
그 결핍된 사랑이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나의 부모님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픔을 안고,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애쓰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무조건적인 부모님에 대한 사랑보다는
저 자신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제 마음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일 것입니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도
이제는 제 마음이 원하는 만큼,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진심을 담아 전하려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그 누구보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저는,
부모님을 절대적이고 전능한 존재가 아닌
아팠고, 힘들었고, 상처받았지만
자신의 아픔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안아주지 못했던 ‘한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어떻게든 자식을 키워내려 애썼던,
서툴고 미성숙했지만,
그래도 애쓰며 살아냈던 한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나는 부모님의 자녀이지만,
자녀로서가 아닌,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입장으로서,
내 마음속 품 안에서
미처 다 자라지 못한
그 시절, 부모님 안의 그 아이를
‘그래도 애썼다’며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