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나는 아직 스마트폰 전쟁에 참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비의 친구들 중 다수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나비도 스마트폰이 갖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면 네가 스스로 스마트폰을 조절해서 쓸 수 있을 때, 정해진 규칙을 지킬 수 있을 때, 그런 자격을 갖추면 사주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래. 지금 내가 9살 나비에게 원하는 것은 자제력과 자기 조절력이다. 매일매일 해야 할 숙제와 공부를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계획표대로 하는 것. TV나 유튜브는 정해진 프로만 정해진 시간만큼 보고 더 보겠다고 조르지 않고 깔끔하게 끄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나비의 모습이다. 그리고 나비에게 말한다.
"엄마도 너 스마트폰 사줄 거야. 단지 네가 정해진 규칙을 기꺼이 스스로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말이야."
이 말은 정말 진심이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유지해 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스마트폰을 사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나비의 생활 모습을 보면 스마트폰 구매는 요원한 일일 뿐이다. 어쩌면 20살이되어도 나비는 스마트폰이 없을지도 모르다.
자기 조절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나비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공부 계획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요일별 방과 후 학습과 학원 스케줄을 표시하고 매일매일 해야 하는 숙제와 공부를 틈나는 시간에 채워 넣었다. 물론 책 읽기, 놀이 시간 등도 들어있긴 했다.
계획표를 짤 때, 나비를 옆에 앉히고 이날은 무슨 방과 후 수업과 학원을 가야 하는지, 숙제와 공부는 얼마큼 언제 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계획대로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질문은 나비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이대로 하라는 명령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학습량에 대한 기준이 너무나 달랐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치와 나비가 생각하는 최대치를 비교해도 접점이 없었다. 내 기준에서 나비가 원하는 학습량은 터무니없는 것이었고 아마 이는 나비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우린 참 달랐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학습량에 있어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하루 3쪽 풀던 연산 문제집은 1쪽만, 영단어 공부는 하루 1개, 원서 3권은 엄마랑 같이 읽기 등등 정말 내 기준에서 많이 줄였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나비는 책상 앞에 앉아서 10초도 바른 자세로 앉지 않고 몸을 베베 꼬고 있다. 온몸으로 하기 싫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아 보인다. 이런 나비의 모습을 보면 헛웃음이 난다.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애를 붙잡고 이러고 있을까. 그럼 시키지 말까? TV 보고 싶은 대로 보게 하고 놀고 싶은 대로 놀게 하고 게임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면 그러면 우리는 평화로울까? 그러데 그럼 결국 내가 얘를 포기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상황에 스마트폰까지 더해진다면 나는 tv, 유튜브, 게임에 이어 가장 강력한 적군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참 유혹이 많고 해야 할 공부는 더 많아진 세상이다.
내가 나비 나이였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교 2학년 때는 학교 다녀와서 숙제만 하면 저녁때까지 골목에서 동네 친구, 언니 오빠들과 놀았다. 시험이 있었지만 학교 수업 잘 듣고 숙제 잘하고 시험 보기 전에 잠깐 공부하면 올백을 맞기도 했었다. 전과라는 참고서가 있어 스스로 공부하기에도 충분했다. 기억이 미화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그렇게 평화로웠다.
지금 나비의 생활은 어떨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참 갈팡질팡하는 엄마다. 대치맘처럼 학습을 강요하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어릴 때는 무조건 놀려야지 하는 쪽도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모르겠다. 뭐가 맞는 건지.
스마트폰에서 학습 얘기로 주제가 넘어간 것 같은데. 어쨌든 결론적으로 내가 아들에게 원하는 모습은 나비가 자기 조절력을 키워서 바른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일상생활 전반과 학습 습관까지 나비 스스로 알아서 척척 잘했으면 좋겠다. 정말 진심으로.
참 이상적인 자녀상이다.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엄친아, 엄친딸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나는 어떤 어른이지?
그럼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는 이상적인 자녀상에 가까운 좋은 생활 습관을 가졌을까? 아니요!
그날 그날 해야 할 집안일을 착착 잘 해내고 있나?
아니죠!
심지어 나는 매일매일 무계획으로 사는데 과연 이런 내가 아들을 채근할 자격이 있을까?
글쎄요..
TV, 게임, 스마트폰 그리고 쇼핑 등의 유혹으로부터 나는 굳건히 자제력을 발휘하나?
아닙니다!
세상에!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를 숨 막히게 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