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9살 엄마 02화

차에서 잠든 아이

깨울까? 말까?

by 솔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뒷좌석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보면 갈등이 생긴다. 깨울까? 말까?


옛날 어느 연예 프로그램처럼 한 번의 선택이 그날 육아의 질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 프로는 두 개의 선택에 따른 각각의 결과가 있었지만, 아이를 깨우는 일은 보다 더 다양한 결괏값이 나올 수 있다.


아이의 미술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뒷좌석을 봤는데 아이는 자고 있었다. 침까지 흘리고 자는 걸 보니 쉽게 깰 것 같진 않았다. 그럼 일단 오늘 장보기는 포기한다. 세탁소만 갔다 얼른 돌아오기로 계획을 바꿨다.


뒷좌석 문을 조심히 열고 맡길 세탁물을 꺼내는데, 아이가 남긴 뽀로로 음료가 보인다. 버릴까? 깨면 찾을까? 굳이 다 먹이고 싶진 않은데... 불과 10초 사이에 결정을 끝내고 조심히 문을 닫았다. 이제부턴 스피드가 중요하다. 이동거리 5미터. 후다닥 출입문으로 들어가 세탁물을 맡기고, 찾아왔다. 다행히 내 앞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집으로 출발하며 유튜브에서 '비폭력 대화' 강의를 재생하고, 평화로운 하차와 귀가를 기원하며 엑셀을 밟았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부드럽게 주차를 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시동을 끌까? 끄지 말까? 잠깐의 망설임 후에 시동을 끄고 짐을 챙겼다. 그리고 뒷좌석 문을 열고, 세상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나비야~"

"나비야, 일어나 집에 다 왔어~"


"아니!!!!!!~~@@@@@~~ ㅇㅁㅏ@@~~~~~아니~~~~아니!!!!"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날인가 보다. 난리가 났다. 아이가 안전벨트를 풀다 팔이 걸리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 화장시ㄹ@@~~~왜~~~~~~했어!!!!!!"


"응?"


"아니 ~~~ 엄마~~~~~~~@@@~~~~ 화장시ㄹ@@~~간다오~~~~~왜~~~~했냐고!!!!!!"


"흠.."


짜증 방언이 터졌다. 해석을 해보면 '엄마가 미술 학원에서 주차장 가기 전에 화장실 갔다가 가라고 했잖아. 근데 왜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얘기 안 해줬어? 지금 쉬 마렵단 말이야'라는 뜻이었다. 아니 이게 나한테 짜증 내고 화낼 일인가. 이런 황당하고 억울한 마음은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흠.. 그래 급하니까 빨리 차에서 나와서 집으로 올라가자."라고 이야기하며 아이를 재촉했다. 그 순간 아이가 접은 종이칼이 주차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오늘은 비가 내렸고, 주차장 바닥은 젖어 있었고, 아이가 만든 종이칼은 처참히 젖어버렸다.


와우! 대환장 짜증 파티가 시작 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종이칼이 젖어 속상한 것보다 생리적 욕구가 더 급했나 보다 아이는 오만 짜증을 부리면서도 후다닥 엘리베이터 쪽 출입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난리통에도 나비는 마주친 이웃 분들에게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 물론 기분 좋고 하이 텐션일 때에 비교하면 꾸벅 목례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래 너도 사회화가 되긴 됐구나. 유치원과 초등 1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하길 빌었다.


현관문 도어록을 열고 아이가 잽싸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현관 앞에 화장실이 있는 우리나라 아파트 설계에 감사하며 세탁물과 겉 옷을 정리하고 나도 손을 씻었다. 2차전을 준비하는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불편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아이는 소파에 앉아 짜증 섞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까의 짜증 방언과 같은 요지의 얘기였다. '왜 화장실에 가라고 말해주지 않았냐는'


나는 아이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대각선으로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비야 화장실은 누가 알려줘야지만 가는 게 아니야. 그건 네가 필요할 때, 스스로 가는 거야. 집에서는 그냥 가면 되고, 외출해서는 화장실 가겠다고 엄마한테 얘기하고 가면 돼."


"아니!! 그래도 엄마가 다시 얘기했어야지!!"


"나비야, 기저귀 차는 아기들이나 어린이집 다니는 동생들은 엄마나 선생님이 때 되면 기저귀를 갈아주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고 알려줘야 하는 거야. 그런데 나비가 그런 아기나 동생은 아니잖아.


내 얘기를 듣던 나비는 훌쩍이기 시작했고 짜증 방언이 간간이 들렸다. 나는 마음이 답답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우리 둘 다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말하자고 했다.


그러다 차에서 들었던 비폭력 대화 강의가 생각났다. 그래. 관찰. 관찰을 해보자. 아이는 어제 밤늦게까지 놀았고, 11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오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빠와 외출을 했고, 집에 와서는 숙제를 했다. 오후에 미술 학원까지 다녀왔으니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나비야 생각해 보니까 나비가 어제 늦게 자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숙제하고 미술 학원도 가느라 많이 지쳤을 거 같아. 그래서 차에서 내릴 때, 너무 졸렸을 거야. 나비 아까 차에서 내릴 때 많이 힘들었어?"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온몸으로 내뿜던 아이의 짜증과 화는 사그라지고 있었다. 결국 나비는 조용히 흐느끼며 "네.. 힘들었어요."라고 대답하며 나에게 왔다. 우리는 서로를 부드럽게 안았다.


오늘 우리의 감정싸움은 비교적 평화롭게 끝났다. 이렇게 일상을 적다 보니, 새삼 내가 나비와 함께하는 순간순간 참 많은 생각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 걱정, 고민, 잡념 등등. 생각을 좀 덜어 내면 아이 키우기가 좀 덜 버거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너무 생각만 많은 건 아닐까?


어쨌든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