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란 존재
우스갯소리로 남편을 남의 편의 줄임말이라 한다는데 우리 집 남편은 결이 좀 다르다. 물론 시댁 식구들과 내가 마찰이 있으면 시댁 식구들 편이니 남의 편이란 큰 범주에는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서 언급했듯 시댁 식구 편을 드는 이유가 참 가관인데 그 이유가 자기가 내편을 들면 정말 큰 싸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시댁 식구들 성격을 알기에 내가 좀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서 자기가 나서면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커질 거라 참는다고 이게 무슨 참담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정말 금상첨화인데 네가 착하고 별말 안 하니 너만 참으면 조용히 넘어가기 때문이란다. 내가 이런 남자랑 결혼했다. 물론 연애할 땐 몰랐다.
말이 거칠어지는데 지금 흥분해서 그렇다. 역시 내 분노 발작 버튼은 남편이다.
우리 집은 남편의 가사 기여도 5%, 육아 참여도 5% 정도인 집이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자 선언했다. 자기는 돈을 벌어오겠노라고. 그러니 살림이나 육아는 네 몫이라고. 그래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가끔 빨래도 돌리고 화장실 청소도 아주 가끔 하긴 했는데 애가 태어나자 손을 놨다. 가장의 무게가 느껴진다며 바깥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정말 바깥일에 최선을 다하는지 집에 오면 거의 방전 상태이다. 남편의 루틴이 집에 오면 씻고 소파에 누워 아들과 같이 tv를 보고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잔다. 스트레스가 많은 거 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은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일단 남편이 퇴근 후, 약속이 있는데 저녁은 집에 와서 먹는다고 했다. 남편이 저녁 운동을 할 때도 그렇지만 보통 이런 상황이면 나는 저녁 밥상을 두 번 차리게 된다. 아이와 내가 먼저 먹고 남편 저녁을 따로 또 챙긴다. 그렇다고 뭐 칠첩반상 차리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대단한 밥상은 아니지만 주부라면 알 거다. 밥상을 두 번 차리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게다가 요 며칠 우리 아들이 저녁 8시~9시쯤 격하게 졸려하다 이때를 놓치면 자정을 넘겨 자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오늘도 후다닥 밥 먹이고 8시 반쯤 졸려하는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30분 정도 뒤 남편이 왔다.
아이는 기회만 보면서 거실로 나가 아빠와 놀려고 했다. 아니 아빠와 놀려고 했는지 아빠가 있으니 tv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지 아니면 거실에 아빠가 있어 무섭지 않으니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이 상황이 짜증이 났고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잠들었을 아이가 괜히 나한테 혼나고 있다 생각이 드니 남편한테 화가 났다. 그러다 화장실 다녀오겠다던 아이가 해맑게 들어오면서 "엄마! 아빠가 나 소파에서 자면 침대로 옮겨준대, 나 소파에서 자도 돼?"라고 이야기했다.
툭!
내 인내심 한 자락이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20대의 나여. 찬란한 가능성의 나여.
너는 어찌 이리 어리석었을까. 편안함과 익숙함을 애정이라 착각했을까. 함께 밥 먹으며 휴대폰만 보는 남자를 왜 이해해 줬을까. 시어머니에게 험한 말을 하는 시아버지를 옛날 분이니 그러실 수 있지라고 왜 애써 눈을 감았을까. 돌이켜 보면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후회되는 순간순간을 왜 안일하게 넘겼을까?
잠깐만 후회하자. 여기서만 후회하자. 되돌릴 수 없는 후회는 현재의 나를 초라하게 만드니까. 후회를 접고 남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제발 내일은 오늘보다 안녕하길.